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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 나그네 Jul 10. 2020

특권화된 금메달,대한민국은 태릉선수촌을 버릴 수 있는가

엘리트 체육을 벗어나 모두를 위한 스포츠를 바라며

   “또” 터졌다. 각종 가혹행위와 폭행을 견디지 못한 경주 시청 소속 트라이애슬론 선수 최숙현 선수가 끝내 자살하고 말았다. 사건이 터진 이후 체육계 폭행 사건으로 세상이 떠들썩하다. 1년 전에는 심석희 선수, 또 그 이전에는 현재 러시아로 귀화한 안현수 선수가 폭행사건을 당했다. 잊혀질만하면 체육계 폭행 사건은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그 때문에 글쓴이를 비롯한 대중들은 그 사건을 보면 아마 또 터질 것이 터졌다고 생각할 것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밝혀지지 않은 사건이 더 많을 것 같다는 추측과 이 사건이 계속해서 언젠가 다시 터질 것 같다는 불안감이다. 



이런 사건이 터지면 반복되는 레퍼토리가 있다. 가해자 신상 공개, 그리고 피해자가 당한 가혹 행위의 종류가 상세히 전파를 타고 대중들에게 공개된다. 그런 이후 언론에서는 체육계가 문제라는 식으로 보도를 하고, 그 때서야 국회와 정부에서는 폭행 근절을 위한 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식으로 논의된다. 그렇지만 가해자에 대한 제대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고, 입법된 법과 개선된 제도가 실효성이 없는지, 대중들에게 잊혀질 것 같으면 이런 사건이 다시 한 번 뉴스 속에 등장하게 된다. 

 

 체육계의 폭행이 제대로 근절되지 않기 때문에 이 같은 사건이 반복된다고 본다. 그렇다면 체육계 폭행의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언론 보도에 나온 것처럼 도제식 훈련, 합숙 훈련, 감독과 선수의 불공정한 계약 관계 등과 같은 이유를 들고 있다. 보도에 나오는 분석 모두 동의하지만, 더욱 근본적으로는 대한민국의 뿌리 깊이 박혀있는 금메달 지상주의와 엘리트 체육 시스템이 이 같은 폭행을 만드는 근본적인 원인이 되었다고 본다. 


 국제 스포츠 대회에서 국가별 순위를 집계하는 방식은 두 가지가 있다. 금메달 개수의 순위로 집계 하는 방법이 하나이고, 또 다른 하는 메달의 총합으로 순위를 매기는 방식이 있다. 대한민국의 경우 지금까지 늘 전자의 방법을 선택해 왔고, 어쩌면 후자의 방법으로 순위를 집계하는 방식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 때문인지 금메달이 늘 우선시 되고, 아쉽게 금메달을 획득하지 못한 은메달리스트는 으레 국민들에게 죄송하다는 표현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엘리트 체육인을 양성하는 시스템에서 그들은 선택 받은 선수들이기 때문에 금메달에 대한 무게감이 더욱 무거울 것이다. 더불어 훈련 내내 금메달이라는 목표는 특권화 되고, 그 목표를 위해서라면 폭행은 어쩌면 당연시되었을 지도 모르겠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인터뷰를 들어보면 폭행은 더 나은 성적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됐던 경우도 적지 않았다. 


 동시에 이 엘리트 체육 시스템은 선택 받은 선수들이 체육이 아니면 다른 길을 모색할 수 없도록 체육 활동에만 전념하게 하는 문제도 있다. 요즘에 와서 엘리트 체육인들에게 최저 학력이나 최소 수업 이수 같은 요건을 도입하여 엘리트 체육인들의 학습권을 점점 보장하려는 추세이지만, 이것마저도 추세이기 때문에 완벽히 정착되지는 않았다. 이런 문제로 “선택받은 엘리트 체육인" 들은 “선택할 수 없는" 감독과 코치에게 그들의 미래를 맡겨야 하는 상황이 불가피하게 발생하고, 그들의 운동 능력이 아닌 다른 부분까지도 예속되어 버리는 환경이 조성되어 왔다. 체력은 국력이 될 수도 있겠지만 금메달이 국격이나 국력의 요소로 평가되지는 않는다. 또, 대한민국은 더 이상 금메달이 아니어도 국가의 위상을 높이도 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요소가 많이 있다. 쉽지 않은 결정이 될 수 있겠지만 이 같은 체육계 폭행 사건을 근절하고, 많은 체육인들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엘리트 체육 시스템을 이제는 바꿔야 할 때는 아닌가.


 지난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개막식 당시 대한민국의 기수는 스피드 스케이팅 종목의 이규혁 선수였고, 폐막식 역시 이규혁 선수가 대한민국의 기수가 되어 입장했다. 이규혁 선수는 94년부터 동계 올림픽에 출전했지만, 올림픽과 인연이 없었는지 그의 마지막 올림픽이었던 소치 올림픽까지 메달은 그의 몫이 아니었다. 메달 그 자체보다는 20년 동안 꾸준히 올림픽에 출전하며 나 자신과의 외로운 싸움을 이겨내는 그 스포츠 정신을 더 높이 평가하는 의미를 전달하기에 충분했다. 대한민국도 이제는 어느 정도 스포츠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다는 지점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Sports for all이라는 슬로건이 있다. 그 슬로건은 1975년 브뤼셀에서 개최된 회의에서 등장한 국제적인 표어로 모두를 위한 스포츠, 즉 생활 체육의 지향점을 드러내고 있다. 대한민국도 이제는 특권화 되어 버린 금메달에 거리를 두며, 엘리트 체육 시스템에서 생활 체육으로 그 지향점을 바꿔가야 할 때는 아닐까. 물론, 엘리트 체육 시스템이 장점을 부정할 수 없고, 당장에는 대한민국의 금메달 수는 분명 줄어들 것이다. 그렇지만 현재의 엘리트 체육 시스템은 한 평생 체육만을 위해 살아온 선수들이 그 길이 아닌 다른 것을 찾을 수 없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거대한 폭력에 굴복하는 구조 속에서는 체육계 폭행이나 각종 비리가 근절되기 어려울 것만 같다. 국민의 행복이 금메달 보다 소중하다고 믿는다. 반세기 넘게 유지해온 엘리트 체육 시스템을 이제는 지양하고 생활체육 시스템을 도입해 체육계 폭행 사건도 근절할 수 있는 초석으로 삼을 수 있길 염원하며, “또 터졌다”는 말이 또 “터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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