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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 나그네 Aug 15. 2020

조선시대 최고의 막장 드라마 <심청전>

막장드라마도 대중들이 시청할 권리가 있다.

출처 : https://namu.wiki/w/%EA%B5%AC%EC%9D%80%EC%9E%AC?from=%EA%B5%AC%EB%8A%90%EB%8B%98

  구은재가 점을 찍고 민소희가 됐다. 대중들은 이를 폭소하면서도 이에 열광했다. 지난 2009년 방영된 드라마 <아내의 유혹>에서 극중 주인공인 구은재가 남편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외양적으로는 얼굴에 점을 찍어 다른 사람으로 변신했다. 대중들과 기자들은 말도 안 된다는 설정에 비난 일색이었지만 시청률은 나날이 고공행진이었다. 막장이 난무하고 말도 안 되는 전개라는 비난과는 다른 행보였다. 드라마 인기를 반영하듯 각종 개그 프로그램에서 점을 찍고 이를 패러디하는 장면도 많았다.


 ‘막장’이라고 비난 받았지만 조선 시대에도 이러한 소설이 있었고, 현대에는 이를 고전으로 배우고 있다. <현씨양웅쌍린기>는 현씨네 가족 이야기를 다룬 대하 가문소설이다. 극중 인물이 남자 주인공과 결혼하기 위해 남자 주인공이 좋아하는 인물로 변신할 수 있는 개용단(改容丹)이라는 약을 먹는다. 그런 이후 남자 주인공이 좋아하는 인물로 똑같이 변신한 후 혼인에 성공하는 장면이 나온다. 현대 드라마를 평가하는 잣대를 들이대면 이는 분명 막장이라 할 수 있지만, 개용단이라는 요소는 미혼단(迷魂丹/*사람의 정신을 혼미하게 하여 자신의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약)과 더불어 우리 고전소설사의 중요한 요약(妖藥) 모티프로 평가받고 있다.  동시에 해당 소설은 우리 고전소설사의 중요한 대하 가정 소설의 하나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601450

 들어보기 쉽지 않은  <현씨양웅쌍린기>라는 작품이 극단적인 사례라고 할 수 도 있겠지만, 널리 알려진 <심청전>역시 막장 요소가 다분하다. 시주승은 공양미 300석이라는 엄청난 거금이 있어야만 눈을 뜰 수 있게 해주겠다며 심봉사를 유혹한다. 조선 시대라고 해도 이를 믿었을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굉장한 희대의 사기꾼이라고 할 수 있다. 대놓고 인신매매를 하던 상인들은 어떤가. 말이 좋아 인당수를 구하는 것이었을 뿐, 심청이 물에 빠지도록 권유한 장본인으로 살인 방관죄까지 있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계모의 전형인 뺑덕어멈, 연꽃 속에서 환생한 뒤에는 신데렐라 스토리가 착착 전개된다. 요즘 막장 드라마에 견주어도 모자라지 않을 정도이지만, ‘효’라는 가치로 포장되어 대표적인 고전 소설로 읽히고 학습되고 있다. <심청전>은 <춘향전> 다음으로 판본이 많은 고전 소설인데, 판본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인기가 많았다는 뜻이다. 지금으로 따지자면 시청률이 높았다는 뜻으로, 조선 시대에도 막장은 흥행 보증 수표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출처 : http://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2629950&CMPT_CD=P0010&utm_sour

 막장의 여부는 평론가와 대중문화 기자들에게 좋은 드라마 여부를 판단하는 중요한 잣대의 하나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2020년 상반기 종영된 드라마 <부부의 세계>는 내용 그 자체는 막장이다. 불륜이 난무하는가 하며, 살인교사, 스토킹 등 온갖 자극적인 소재가 등장한다. 드라마 전개를 위해 필요했던 요소였고 그 자체가 주요한 콘텐츠가 아니었기 때문에 막장 논란은 많이 없었다. 그럼에도 친절하게 <부부의 세계>가 막장이 아닌 이유에 대해 설명하는 기사가 등장하기도 했다.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때로는 막장 여부를 따지거나 또는 막장으로 분류할 수 있는 드라마를 비난하는 기사나 평론들이 진부함을 넘어 막장스럽게 여겨질 때가 있다.


 드라마는 재미와 감동을 추구한다. 두 가지 가치를 동시에 충족하기 어려울 때는 재미를 더 우선한 가치로 극이 전개되고, 재미만을 지나치게 추구하면 욕을 먹어야만 한다. 드라마를 시청하고 남는게 있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속에 드라마가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어야만 바람직하고 그것만이 제대로된 드라마로 인정받는 것만 같다. 직장과 가정 그리고 개인적인 문제로도 충분히 치열한데 굳이 드라마를 시청하면서도 치열하게 무엇인가 고민해야만 그것이 바람직한 것일까. 때로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시청하는 그 자체로도 가치가 있을 수 있다. 갑갑한 일상에서 벗어나 드라마의 세계관을 욕하면서도 또 재미를 느끼면서 말이다. 대중문화를 바라보는 기자들과 평론가들은 지나치게 교훈적인 것만 추구해야 하는 것처럼 논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다. 자극적인 것을 시청하며 일상에서 지친 심신을 위로받을 권리도 대중들에게 있다.


출처 : http://www.newdaily.co.kr/site/data/html/2011/07/11/2011071100076.html

 극중 주인공이 눈에서 레이저를 쏘았다. 레이저 같은 눈빛이 아니라 실제로 레이저를 쏘았고, 해당 드라마는 지금까지도 “까이고”있다. 지난 2011년 종영한 임성한 작가의 드라마 <신기생뎐>에 나왔던 장면이다. 매우 신선한 충격이기는 했지만, 그 장면이 방영된 회차 이후 어쨌든 방송국이 원했던 대로 시청률이 올랐다. 100년 뒤에 이 드라마는 문제적 드라마로 교과서나 수능 지문에 등장할 것 같다. 시청률 지상주의를 엿볼 수 있는 장면이자, 작가의 자존심보다는 방송국의 권리를 우선해야 하는 방송 시스템 같은 2011년의 방송 환경을 평가할 수 있는 자료로도 활용될지도 모를 일이다. 소위 막장이라 불리는 드라마가 모두 나쁘고 지양해야만 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는 것이고, 마치 <심청전>처럼 후대에는 새롭게 재평가 받을 수 있는 명작이 될 지도 모를 일이다. 드라마는 일단 재미있으면 반 이상 성공한 것이지, 드라마를 보면서까지 공부를 하고 인생의 의미까지 되새기고 싶은 대중들이 아주 많지만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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