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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 나그네 Sep 30. 2020

행복할 수 있는 방법, 제대로 배워본 적 있나요?

- 문제풀이에 특화된 교육에서 벗어나길 바라면서-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DxcXiQJqxN0

  박태원의 <천변풍경>은 설명하지 않고 넘어가겠다고 했고, 모두가 놀라워했지만 한 편으로 그 점을 높이 평가했다. 작년 수능 기출 문제로 나왔기 때문에 시간이 부족한 고3 수험생에게 그것을 설명하는 것은 교사나 학생에게 모두 시간적으로 낭비라는 판단이었기 때문이다. 드라마 <블랙독>에서 극중 고하늘(서현진 배우)이 사립학교 기간제 교사 채용을 앞두고 했던 시범 강의에 나왔던 부분이다. 대입 수학 능력 시험을 앞두고 있는 고3 학생들에게 이 같은 수업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고 대한민국의 교육 현실에서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지만, 이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또 암묵적인 사회 구성원들의 동의가 있다는 사실은 씁쓸하게 느껴졌다.


  대입 수능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야만 원하는 대학으로 진학하는데 더욱 수월하고, 또 원하는 대학의 졸업장은 개개인이 하고자 일에도 도움이 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고, 또 바라던 직장에 취업하거나 개개인이 원했던 사업을 한다고 해서 과연 행복할 것인가. 대체적으로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는 더 행복할 가능성이 있겠지만, 그것은 대학 간판이나 직업에 따른 보상과 만족에서 비롯되는 즐거움에 한정된다. 그런가 하면 직장에서 위치나 사업이 변동성 없이 계속해서 만족감을 주기는 어려울 수 있고 위기 상황이 올 수도 있을 텐데, 그럴 때는 그냥 행복하지 않은 상태로 그냥 좌절한 채로 체념하며 현실과 타협해야 하는 것일까.


  대한민국의 교육은 오로지 대학 수학 능력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 명문대에 진학하는 것에만 초점이 맞춰져있다. 명문대에 진학해야만 연봉과 복지 그리고 사회적 평판이 좋다고 평가되는 곳에 취업하기 용이한 편이기 때문일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대한민국 교육은 경제적으로 행복할 수 있는 방향으로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볼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본적인 경제력은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요건이라는 사실에는 동의하지만, 경제력만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요소는 아니다. 더구나 어느 정도 경제력을 갖추더라도 끝없이  더 많은 경제력을 욕망하기 때문에 경제력 덕분에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은 소수라고 본다.


  경제력으로 행복해지는 방법 말고도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이 교육됐어야 하는데, 그러한 것들은 한없이 문제 풀이 방식으로 변질되어 다른 방식의 행복 추구는 모두 박탈당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고 정규 교육 과정에서 그런 것들이 전혀 고려되고 있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문제 풀이에 특화된 방식으로 변모되고 있을 뿐이다.


출처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973949&cid=46720&categoryId=46821

  주변 사람들 중에서 미술책에서 나온 밀레의 <이삭줍기>를 감상 후, 눈물을 흘렸다가나 당시 프랑스 민중들의 애환에 공감 간다고 했던 사람은 없었다. 시험에 나오기 때문에 그림과 작가 그리고 그려진 시기 및 그림에 반영된 사조주의를 외우기에 여념 없었다. 체육이나 음악 시간 마찬가지이다. 자라나는 시기 신체 활동의 즐거움과 건강이 목적인데 빨리 뛸 수 있는 사람은 좋은 성적을 받아 즐거움을 주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는 좌절을 주는 구조이다.


  비단 예체능뿐만의 문제는 아니다. 피보나치 수열의 아름다움을 지각하지 못하고 그것을 그저 암기해야 하는 공식으로 치부된 채 넘어가야 하는 괴로움, 박태원의 <천변풍경>은 빨리 독해하고 주제의식과 시대적 배경을 머릿속에 새겨야 하는 대상으로 전락되었다. 학창시절 시집 읽는 사람은 거의 없었는데, 의무적인 글짓기를 해야 한다고 하면 대부분 학생들이 시를 써서 제출했던 기억이 난다. 목적 자체는 글쓰기 자체를 통한 즐거움이었으나 글 쓰는 방법을 제대로 교육 받지 못한 상황에서 의무감으로 글을 써야 하는 상황에서 벌어진 촌극이다.


 정규 교육 과정에서 나온 것들은 사실 경제력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사람들의 행복지수를 높일 수 있는 종류의 것들도  포함되어 있으나 그런 것들은 하나 같이 몰살되어 버렸다. 문학 감상의 즐거움, 체육활동을 통한 쾌락을 찾는 방법이 제대로 교육됐다면, 경제력 때문에 좌절 되더라도 다른 방법으로도 행복을 추구할 수 있었을 텐데, 제대로 설계되어 있는 교육 과정은 대한민국 교육 현실에서 훼손되어 가고 있다.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더 나은 경제력을 얻기 위한 일념 하나로 다른 방식의 행복추구권은 저당 잡혀 버렸다. 문제 풀이 자체를 통해 행복감을 느끼는 소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평생 시험을 보면서 문제 풀이에만 집중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겠는가.


 연봉, 직장, 명문대. 이러한 것들은 대체로 비교 우위를 통해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종류이고, 행복감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주변에 항상 자신보다 비교 우위에서 낮은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많아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쉽지만은 않다. 그렇지만 예술 작품 감상이나 다른 종류의 예체능 활동을 통한 행복감은 개개인이 감상할 수 있는 만큼 높아질 수 있다. 서울대에 입학할 수 있는 사람은 제한되어 있지만, 피카소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정원은 무한대로 개방되어 있다. 모두가 명문대학에 갈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면, 최소한 다른 방법으로도 행복감을 추구할 수 있는 방법이 정확히 교육되어야 하는 것이 공교육의 의무이자 바람직한 방향은 아닐까. 물론, 이상은 너무 멀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문제 풀이에만 특화되어 있는 공교육 현실에 돌을 던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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