컵 속에서 일어난 두 가지 사건과 단 한 번의 섬광

by 정원선

1.


머리카락 몇 올

컵 속에 빠졌다


고통에 몸서리치다 보면

저렇게

몸을 흐느적거릴까 싶은데

가슴에 잠시 옮겨와 허우적거린다


자세히 보니 저수지에 빠져 죽은

뇌성마비 형이다


온 몸이 상처투성이라던 천둥이

번쩍하고 저수지의 갈비뼈를 가른다


오늘 밤은 구름에 오줌으로 지도를 그리지 않으리라

머리카락

몇 올 빠진 달님에게 야단맞지도 않으리라



2.


컵 속에 찻잎들

아우슈비츠 시체처럼 포개져 있다


하얀 컵 바탕에 검은 눈 내린다

귀 잘린 강아지 껑충껑충 뛰어다닌다


넋이 나간 그림자

우두커니 서서 팔뚝으로 피에 젖은 두 눈을 닦고 있다


컵이 우물처럼 자란다면

찻잎들이 첫 생리를 시작하리라


순결한 두레박이 이끼 덮인 시체들을

깊은 바닥에서 퍼 올려 훌륭하게 손잡이로 키우리라



3.


두 가지 사건을 해와 달처럼 딱 경계를 긋고 나자

곧, 혼란이 찾아왔다


두 개의 침묵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하여

나는 컵 속에 두레박처럼 들어앉아 있어야 했다


인간의 생각과 신의 계시가 동시에 떠올랐다


남으로 창을 낸 것처럼,

발음할 길 없는 빛의 아름다움들이 컵 속에 꽉 들어찬다


비겁한 그림자가 컵 깊숙한 곳에서부터 끌어 올려진다

나는 초인적인 하루살이로 영겁을 다시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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