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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서홍 Jun 15. 2022

마음이 뒤숭숭할 때 물건을 비운다.

뒤엉킨 물건들과 어지러운 마음 정리하기

연인과의 이별 후 처음으로 하는 행동을 살펴보자.

일단 첫째 실컷 운다.

그리고 둘째 물건을 정리한다. 상대가 준 물건들과 편지를 차곡차곡 담아 버리거나 돌려준다. 더 이상 내가 소유하지 않는다.


이는 연인과의 관계에 국한되지 않는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아빠는 할아버지의 물건을 먼저 정리했다. 한 달 후,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할아버지 방"이었던 방은 가족들이 할머니 댁에 놀러 갔을 때 쓰는 "손님의 방"으로 탈바꿈했다.

엄마의 절친이자 아빠의 절친이 돌아가신 당일, 아빠는 그 집에 가서 1차적으로 물건을 정리했고

그 뒤로부터 몇 달 후 엄마는 남아있는 물건들을 정리하러 그 집을 방문했다.

왜 우리는 이별을 맞이할 때마다 물건을 정리할까?


물건을 버리면 마음이 비워지는가?
반대로 물건이 많으면 마음이 꽉 막히는가?
사람들은 왜 계속 최소한만 남겨두려고 하는 걸까?
미니멀리즘은 왜 라이프스타일로 자리 잡았나?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으려고 곤도 마리에의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를 시청했다.

곤도 마리에: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다른 미니멀리스트들이 '실용성'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곤도 마리에의 미니멀리즘은 그렇지 않다. 제목이 의미하듯 철저히 '설렘'에 비롯한 미니멀리즘이었다. 곤도 마리에는 참가자들로 하여금 옷을 하나하나 들고 이 옷이 과연 나를 설레게 하는가?를 되물으라고 시킨다. 그 결과 설레지 않는 옷들에겐 감사 인사를 한 뒤 모두 버리고 설레는 옷들만 남긴다.


이 설렘을 감정으로 확장시켜 대입해보자. '어떠한 물건이 나에게 감정을 불러일으키느냐'가 결국엔 이 물건을 소유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요소이다.


할아버지의 장례식 후 물건을 정리할 때 할아버지의 일기장이 나왔다. 거진 10년이 다 된 일이라 그 상황이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지만 한 가지는 또렷하다. '손녀들이 자주 방문했으면 좋겠다'와 같은 문장이 일기장의 한 곳이 아닌 이곳저곳에서 발견됐다. 할아버지는 하루가 아닌 이날 저날 우리를 그리워했다. 우리 가족은 할아버지의 일기장을 버리지 않았다. 할아버지의 일기장이 우리에게 '그리움'이라는 감정을 한편에 남겨두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음 한편의 그리움으로만 남아있다면 아무래도 다행이다. 그 물건이 주는 감정이 남아있는 사람들을 잠식시킬 때는 선택을 해야 한다. 애써 물건을 떠나보낼지, 물건이 주는 밀물을 겪어낼지.


떠난 사람의 흔적을 정리하는 것이 고된 일임을 알았기에 엄마는 절친의 물건을 정리하러 그 집에 방문했다. 그 집에서 매일을 지내는 절친의 남편과 딸 아들에게는 모든 물건이 감정이었기 때문이다. 모든 물건이 감정이라면 그리움이 집 전체를 메울 수 있었기에 물건을 하나씩 정리해 나갔다.


유튜버 '새벽'이 세상을 떠난 지 1주기가 되었다. 그녀의 남자 친구 '건'은 1년 동안 유튜브 영상과 인스타그램을 통해 그의 밀물을 숱하게 담아냈다. 그리고 1년이 흐른 지금, 그녀와 함께 지내던 집을 보내주고 새로운 공간으로 이사를 갔다. 그에게 '그녀와 같이 살던 집'은 감정 그 자체였고, 언제까지나 감정의 밀물 안에 갇혀있을 순 없었을 테니 애써 집을 보내준 것이다.  

"언제까지 이곳에 있을 수 없으니까"

그래서 결론은,

물건을 비우면 마음도 정리되는가? 물건을 비우지 못하면 마음도 꽉 막히는가? 에 대한 대답은 미심쩍은 그렇다이다. 이미 감정적으로 소진된 물건들을 버리면 후련해진다. 아직 감정이 유효한 물건들을 남겨놓을 때 다시 한번 마음 한편에 감정을 상기시킨다. 잡아먹을 만한 감정의 물건들은 선택을 한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마음은 아프지만 비우는 쪽은 새 출발을 기대할 수 있게끔 한다. 이렇게 물건들을 하나하나 꺼내 일부는 보내주고 일부는 마음의 서랍 안에 정리해 넣는다.


사람들은 왜 계속 최소한만 남겨두려고 하는 걸까? 미니멀리즘은 왜 라이프스타일로 자리 잡았나?

사람들은 이러한 복잡한 감정의 물건들이 모두 정리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버릴 물건은 버리고 남겨둘 물건은 남겨둠으로써 '버리기엔 아까운데 가지자니 못 미더운'감정들의 위치를 명확하게 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이로써 마음의 저장 공간을 넓히고 남겨둔 물건들을 사랑하기 위해. 새롭고 의미 있는 감정들을 받아들이기 위해. 그리고 한층 윤택해진 삶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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