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흥연극
극단목요일오후한시에서 2019년부터 즉흥연극을 하고 있다. 음… 어떤 연극이냐 하면… 관객이 이야기를 들려주면 배우와 연주자가 어떠한 사전 상의도 없이 연극으로 보여주는 ‘플레이백시어터’ 형식에 기반한 연극이다.
내가 처음 극단목요일오후한시(이하 ‘목한시)연극을 봤을 때는 그저 놀랍고 재미있었다. 즉흥성 자체가 나를 사로잡았다. 자유로워보이는 배우와 악사들이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을 보며 감탄했다. 그 극단에 운 좋게 들어가 햇수로 칠 년째 작업을 하고 있다. 이 작업을 하면서 나는 비로소 주변을 살피는 인간이 되었다.
우리는 치유를 목적으로 공연하지 않는다. ‘호기심과 즐거움을 원동력으로 한다’는 글이 우리 극단을 소개는 첫 번째 문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형식은 텔러(이야기의 주인)에게 감정적 해소나 위로를
주고 관객들을 연대하게 하는 치유의 효과가 늘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우리 모두에게는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주변의 공기는
따뜻해진다. 이야기를 하며 잊었던 내 역사 속에서 날 지탱하게 하는 힘을 끄집어내기에….
그래서인지 필수노동자,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여성 등 연대가 필요한 단체에 공연을 의뢰받고는 한다. 공연의뢰가 들어오면 우리가 하는 연습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합을 맞추는 즉흥연기 연습이고, 다른 하나는 주제탐구와 대상연구이다. 그중 후자에 더 몰두하는 편이다.
우리는 해당 주제에 대해서 책, 기사, 통계자료, 시, 소설 등을 찾고 공유하며 그 세계로 들어가려고 노력하고, 우리가 살아온 기억 속에서 비슷한 기억들을 찾아내보며 내 삶과 링크되는 지점을 찾는다. 그리고 당사자를 인터뷰하거나 연습실에 초대해서 직접 즉흥연극을 해본다. 직접 만났을 때 그간 공부하며 가지게 된 수많은 궁금증을 묻고 답하며 비로소 걱정을 내려놓게 되는데 아마 그 지점이 이 형식의 배우로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일 것이다.
시각장애부모님과 자녀들을 위한 공연을 준비하면서, 시스템의 부재, 사회적 불편함, 시각장애인의 삶 등에 대한 책을 읽고, 형식을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지 연구했지만, 단체의 대표셨던 호진님과 세 아이들을 만난 후에야 비로소 관객을 만날 준비가 되었던 기억이 난다. 우리는 연습을 하며 ‘본다 ‘라는 단어를 써도 되는지 질문했고, ‘우리도 다 본다고 해요~‘ 라며 웃으시는 호진님의 대답에서 그간의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아이 셋이 엄마와 아빠의 걸음을 함께 하는 것도 인상적이었고, 이야기 손님으로서, 갑자기 훌쩍 여행을 떠나고 싶어서 홀로 어린아이 셋과 무궁화호를 타고 부산으로 가기 전날 밤 설레서 잠을 못 잤다는 이야기, 부산 바다에서 불꽃놀이를 했던 밤을 잊을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셨는데 당시 육아 중이었던 나와 친구는 아이 셋과 무궁화호 부산은 상상도 할 수 없어서 존경스러운 육아선배로 엄지척을 했었다. 나와 호진님은 똑같이 아이를
잘 키우고 싶고 아이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를 고민하는 엄마였다.
명명은 해방의 첫 단계다.
무언가를 정확한 이름으로 부르는 행위는 무대책. 무관심. 망각을 눈감아주고, 완충해 주고, 흐리게 하고, 가장하고, 회피하고, 심지어 장려하게 하는 거짓말들을 끊어낸다. 호명만으로 세상을 바꿀 수 없지만, 호명은 분명 중요한 단계다.
은유, <있지만 없는 아이들> 중
이 연극을 할수록, 특별함은 ‘호명’에서 온다는
생각을 한다. 소수자성을 가지고 있는 당사자들이 처한 상황의 특수성을 공부함과 동시에 공연 중에는 특수성보다 개별성을 포착하게 된다.
개인을 호명하는 연극
존재를 인정하는 연극
모든 이의 삶이 강인하고 완전하다는 것을 박수치는 연극
타인의 이야기에서 나를 발견하고 그래서 사회적으로 약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힘을 내어 함께 한발 나아갈 수 있는 연극
나와 완전히 다른 사람을 오롯이 이해하는 연극
보다 먼 이웃, 작은 이웃, 미래의 이웃을 사랑하는 평범한 시민들이 많아지는 연극.
목한시를 하며 칠 년간 내가 만난 무수한 텔러들과 책들은 무심하고 의식 없던 나를 아주 조금 섬세하고 민감한 홍경아로 만들어주었고, 아직도 부족하고 모르는 것이 많아 나아갈 곳이 있음에 감사하게 되었다. 그리고 정말 신기한 것은 타인을 호명할수록 내가 더 단단해졌다는 점이다. 앞으로 어떻게 얼마나 껍질을 깨고 나아갈 수 있을지 목한시 친구들과의 시간이 기대된다.
마지막으로 긴 칠 년의 시간 동안 이 길을 함께 걸어온, 나의 즉흥연극 동료이자 삶을 함께 나아가는 동무들의 이름을 호명하고 싶다.
배나무, 강갱, 쇼, 오정, 꼭지, 베로, 보노, 마뇨, 현수, 니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