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들은 발도르프학교에 다닌다. 발도르프 학교 중에서도 생긴 지 얼마 안 되어 이제 전교생이 스무 명 남짓한 학교이다. 아들의 학년이 가장 인원이 많다. 다섯 명. 한 명은 외국에 있다가 2학년 때 와서 편입했고 네 명은 어린이집 꼬꼬마 시절부터 함께 자란 아이들이다. 어린이집도 발도르프 어린이집이었기 때문에 이 네 명의 아이들은 아기 때부터 함께 산책하고 낮잠 자고 놀고 산책하고 바느질하고 그림 그리던… 어쩌면 너와 나의 경계가 가끔씩 사라지는 그런 아이들일 것이다. 그래서 새 친구가 와도 그렇게 대하는 것 같다.
너와 나의 경계가 사라진다니… 쓰고 나니 멋진 말이다.
아무튼.
얼마 전에 아들이 인체백과사전을 읽다가
아들: 엄마. 배꼽이 왜 있는 줄 알아?
나: 뱃속에서 엄마랑 연결되어 있으려고?
아들: 그리고 엄마에게 음식을 받는 거야. 00 이는 배꼽이 커~ 00이 탯줄은 엄청 컸나 봐. 그래서 00 이가 뱃속에서 잘 먹어서 지금도 키가 큰 거구나.
예전에는 또
(아침에 사이간식을 싸준다. 오이. 사과반쪽 같은)
나: 사과? 오이?
아들: 사과는 싸지마. ㅁㅁ이가 못 먹어.
나: 응? ㅁㅁ이는 왜 사과를 못 먹어?
아들: 엄마. 못 먹는 건 그냥 못 먹는 거야. 그건 내가 물컹한 돼지고기를 못 먹는 거랑 똑같은 거야.
몇 주 전에 담임 선생님께서 아들이 친구랑 싸우고 눈물을 한 바가지 흘리고 가서 주말 동안 기분을 살펴달라고 말씀하셨는데,
“선생님. 그 아이들은 가족 같은 아이들이니, 너무 걱정 마세요. 미안한 감정이 서로에게 있어서 월요일이면 더 잘 지낼 것 같아요”라고 말씀드렸다. 월요일이 되자 선생님께서 둘이 머리를 맞대고 작업하는 모습을 보내주셨다.
아이들이 1학년 때 다 같이 등산을 간 적이 있다. 그중 한 친구가 그날 기분이 안 좋았는지 엄마에게 혼나고 맨 뒤에서 느릿느릿 오고 있었는데 앞에 있던 아이들 넷이 ㅇㅇ이를 기다리며 제자리걸음으로 걷고 있었다.
‘오늘 ㅇㅇ이가 기분이 안 좋은가 봐.’ 하면서.
우리는 모두 하나라는 말.
많이 듣지만 참 행하기 어려운 말.
네가 아프면 나에게도 그 마음이 전해지는 것.
누군가의 다름이 대수롭지 않은 것.
행하기 이전에 그냥 마음이 발동하는 어린이들의 모습에서 관계를 배운다. 나도 그랬던 때가 있었을텐데… 어른이 되고 머릿속에 측량을 하는 자가, 저울이, 셈하는 계산기가 들어온 것 같다.
공기처럼 바람처럼 서로를 전하고 느끼는 아이들을 보며 나도 저렇게 살아보고 싶다 생각하게 된다.
공기 안에, 바람 안에, 사람 안에
기대고 또 내어주고 싶다.
편견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