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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여사친 핸드백 매주는 학습된 매너남, 어떤데

인간하자분석일지 Ep.1 친절을 베푸는 나 자신에게 취한다

by 흩나

그는 여자들에게 대놓고 친절한 사람이었다. 그의 행동은 분명 호의였기에 그걸 개수작이라고 하기엔 애매했다. 그러나 뭔지 모르게 꾸며진 느낌. 다정하고 자연스러운 챙김이 몸에 밴 사람이라기보단 '여자에게 하면 좋은 매너'를 잘 숙지한 사람 같았다. 느끼하다고 하기엔 애매하지만 부담스럽다면 그럴지도 모르는.




그는 보통 '00아'하고 이름을 부른다. 눈을 잘 맞추고. 물도 따라주고 수저도 챙겨준다. 자연스러워서 챙겨줬는지도 모르겠는 챙김이 아니라, 뭔가 대놓고 부산스러워 눈에 띄는 행동이었다. 그리고 가끔씩 '으이구,,,'라는 귀여워하는 듯한 말을 한다.




그는 늘 여자들의 가방을 들어줬다. 그때도 그 행동은 어색하게 다가왔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여자친구 아니고서야 '굳이'이긴 하다. 그리고 그 가방은 대체로 '백팩'이 아닌, '백'이었다. 정말 무거워 뒤지겠는 두툼~한 대학생의 책가방이 아니라, 놀러 나왔을 때 들고 온 반짝반짝 예쁜 가죽백.


하지만 이후 그런 행동을 나한테만 하는 건 아니라는 걸 알았다. 물론 별 생각은 없었다. 정말 말 그대로, '원래 여자들 가방을 매주는 편이군.' 했다.


"진짜 괜찮겠어?", "진짜 안 들어줘도 되지?" 그는 두 번 세 번 물어봤지만 이상하게도 그 되물음이 짜증 난다거나 강압적인 느낌은 전혀 없었다. 그냥, '여자가 거절하면 튕기는 걸 수도 있으니 최소 두 번 세 번은 물어봐야 해.'라는 걸 아주 잘 배운 것 같았다.



나는 남사친이 내 '백'을 매고 우리가 나란히 걷는 모습이 너무 오글거릴 것 같아서 건네주진 않았다. 그러나 그는 다른 그녀들의 핸드백을 어깨에 걸치고 다니면서, 배려심 넘치고 스윗한 자기 자신에 우쭐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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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키가 작았다. 슬랙스를 주로 입는 것을 보면 추구미는 댄디함이다. 아마도 추정컨대 키가 작은 것에 대한 컴플렉스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에게 여자 형제가 있었던가? 남동생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는 성격 좋고 친구가 많은 편이다. 다만 남자들만 우글대는 무리보단 여자들이 끼어있는 무리를 선호하시는 것 같다. 은근히 그가 청일점이 되는 상황도 꽤나 많았다. 아마 즐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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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흘리고 다니는 친절은 뭘까? 얻어걸리길 바라는 걸까? 아니면 누군가가 자길 좋아하길 바랄까?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아보고 싶고 그것에 만족감이나 우월감을 느끼길 조금은 원하려나?



우리 사이엔 무언가가 아주 조금도 없었지만, 애초부터 그는 나랑 친구로서도 '안' 맞았다. 서로 알았다, 서로가 지금 약간 ^^짜증^^난다는 걸. 하지만 그는 미소를 잃지 않는다. 끝까지 친절 또한 잃지 않는다. 그건 뭐랄까, 화 내기 싫고 싸우기 싫어서 참는다기보단, 자신의 이미지를 생각해서 꾹 참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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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에게 친절을 베푸는 자신의 모습에 취해있는 그는 약간은 질서를 중시하고 가부장적인 편으로 보인다. '가부장적이다'라고 하면 집안일도 하지 않으면서 아내에게 헌신을 요구하는 남편 같은 이미지가 있지만, 어쩌면 '가부장적'이라는 건 가장으로서 충실하며 가정을 세우고 아내를 지키고 여성을 보호해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같기도 하다. 그는 후자다.


그는 여자친구로 공주 같은 타입을 만나는 게 좋아 보인다. 그 편이 그 자신에게도 만족감이 좋을 것이다. 챙겨주고 배려해 주는 나, 여자친구를 우쭈쭈 해주고 공주같이 대해주는 나, 좀 멋지지 않아?



그는 추후 군대와 관련된 직업을 택했다. 이야, 겉보기와 달리 그런 빡센(?) 면이 있었구나 싶었다. 어쩌면 키가 작은 것에 대한 컴플렉스를 해소하기 위해 강해지는 것을 택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2025-10-01-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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