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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바지, 리바이스

by 찰스킴

1. 이 정도로 오래된 브랜드라고요??

리바이스의 시작은 언제였을까요? 1900년대가 아닙니다. 1800년대 중반쯤 미국으로 이주한 독일의 '리바이 스트라우스'에 의해 설립됩니다. 뉴욕에서 원래 직물 관련된 일을 하다가, 당시에 붐이었던 금을 캐러 샌프란시스코로 이동합니다. 리바이 스트라우스는 금을 캐지는 않았고, 금을 캐러 사람들이 모일테니 거기서 직물 장사를 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무려 1853년에 자신의 이름을 딴 직물 가게 '리바이스'가 탄생합니다.

678.PNG 1853년의 리바이스

2. 최초의 청바지

리바이스가 처음부터 청바지, 데님을 판매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직물 도매를 했습니다. 그렇게 직물 관련된 일들로 20년 정도 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리바이 스트라우스에게 네바다주 리노의 재단사였던 제이콥 데이비스가 말합니다. '튼튼하게 만든 작업복이라도 작업복은 계속 망가진다. 특히나 연장 넣는 곳이 잘 찢어진다. 그래서 내가 이를 보완하고자 한 번 만들어 봤다. 근데 특허를 내고 싶은데 난 돈이 없어. 같이 낼래?' 여기서 제이콥 데이비스가 발명한 것이 '리벳'이었습니다.

2342312.PNG 청바지에 달린 리벳

리벳은 구리로 되어 있었고, 뒷주머니와 같이 바지와 접합되어 잘 떨어질 수 있는 곳을 고정시키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렇게 함께 특허를 등록하고 바지 소재도 더 튼튼하게 데님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때 우리가 현재 즐겨 입는 리바이스의 청바지가 탄생하게 됩니다. 그리고 앞쪽 주머니 속의 주머니는 요즘은 라이터를 많이 넣어두지만.... 옛날에는 회중시계를 넣는 자리였습니다. 리바이스의 혁신적인 청바지는 큰 성공을 거둡니다.


3. 리바이스의 정체성 부여

리바이스 하면 무엇이 가장 떠오르나요? 셀비지 데님? 청청? 저는 말들이 양쪽에서 끌어당기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보통 뒤쪽에 달린 갈색 탭에 그려져 있습니다. 말들이 당겨도 안 찢어질 만큼 짱짱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처럼 해석 됩니다. 당시에 리바이스의 경쟁자들이 속출했습니다. 클래식 리바이스 바지를 사면, 지퍼 대신 단추로 고정합니다. 바지에 처음으로 지퍼를 단 것은 'Lee'였습니다. 이에 대응하여 리바이스는 선두주자로서 뒷 주머니 쪽의 그 익숙한 문양을 달아 주었고 빨간색 탭을 달아 소비자를 유혹했습니다. 또한 제품의 공정 측면에서 유리했습니다. 리바이스는 최초로 기계를 도입하여 청바지를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리바이스는 업계 선두를 유지했습니다. 기능도 괜찮았고 디테일도 있었으며 생산도 자동화가 되어 있어 비용도 더 저렴할 수 있었습니다.


4. 리바이스의 약진 앞으로!

리바이스는 2차 세계 대전의 종결과 함께 더욱 떠오릅니다. 당시 전쟁이 있었기 때문에 금속을 다른 곳에 못 쓰게 했었습니다. 전쟁이 끝남과 동시에 리바이스는 자신들의 장점을 살려서 소비자에게 어필했습니다. 리벳을 다시 달고, 리바이스의 감성이 담긴 버튼플라이(지퍼에 단추를 다는 형태) 방식을 다시 가져왔습니다. 리바이스의 전통과 감성은 할리우드에서 통했습니다. 전쟁 이후 미국 경제가 급성장하던 시기에 사람들은 돈을 모으기만 했을까요? 이제 제대로 돈을 쓰기 시작합니다. 돈이 많으니 생계 걱정은 끝나고 이제 문화를 즐기기 시작합니다. 영화, 노래 산업이 계속해서 발달했고 당시 최고의 스타인 마릴런 먼로와 제임스 딘이 리바이스의 청바지를 입고 영화에 나와 제대로 홍보가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청바지는 작업복이라는 인식을 깨고 일반인들의 가장 핫한 아이템으로 자리합니다. 리바이스가 가진 시장은 작업복, 미국의 젊은 세대, 미국의 영향을 받고 급부상하는 다른 나라들, 기존에 치마만 입던 여성으로까지 넓어졌습니다.


4. 진짜 경쟁자의 등장

청바지에 인기가 하늘을 치솟으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요? 당연하게도 '나도 저거 할래'가 됩니다. 그렇게 리바이스의 경쟁자가 다시 나타납니다. CK는 아예 청바지 디자이너를 두었고, 디테일에 집중한 청바지들이 하나, 둘 씩 시장에 나옵니다. 새로운 경쟁자는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리바이스는 기존 스타일을 고수했습니다. 아직 그 경쟁자가 리바이스를 위협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매년 매출액은 올라갔습니다. (아마 제가 CEO였어도 매출이 계속 올라가는 걸 매년 눈으로 확인하는데 경쟁자는 생각도 안 했을 거 같습니다.) 하지만 리바이스는 매출의 최고치를 찍고 나서 이제 내리막길만 걷기 시작했습니다. 리바이스도 대응을 하긴 했습니다. 아저씨 옷이라고 낙인찍힌 것을 탈피하고자 젊은 세대에게 어필하는 라인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랄프 로렌과 같이 리바이스의 위치가 애매해졌습니다. 엄청난 프리미엄 청바지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SPA 브랜드에 대항할 정도로 가격이 저렴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온라인 유통이 발달한 시기에 리바이스는 오히려 오프라인 유통에 많은 비중을 두었습니다. 이것도 패인이었죠.

이를 타파하고자 리바이스는 다양한 시도를 합니다. 여러 브랜드와 협업을 했고 유통도 다양화했습니다. 또한 청바지에만 집중하지 않고 상의, 하의, 여성복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리바이스를 있기 해준 스타 마케팅도 시도했습니다. 막대한 돈을 마케팅 비용으로 썼지만 그 효과는 미미했습니다.


5. 아니 이게 뭐야..? 너네 왜 그래..?

리바이스는 각고의 노력을 통해 어느 정도 회복은 했지만 그게 어느 정도에 그쳤습니다. 이전의 명성을 되찾기는 어려웠습니다. 근데 사람들이 점점 리바이스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리바이스가 시킨 적도, 원한적도 없는데 옛날 리바이스의 감성이 그립다며 사람들은 리바이스의 예전 재고를 사러 다녔고 옛날 느낌의 리바이스를 찾고 싶다며 그때 쓰던 방직기, 리벳 등을 구하며 자신들이 직접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장인 정신과 패션이 발달한 일본에서 그 영향이 심했습니다. 그렇게 만든 걸 자신들의 편집샵에서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의 입소문을 점점 타고,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한 리바이스는 다시 한번 정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실제로 저는 리바이스 광팬입니다. 세계여행을 다닐 적에는 츄리닝을 제외한 일상 바지로 리바이스 청바지 하나만 가져갔습니다. 리바이스에 대한 믿음이었죠. 그리고 저는 LVC라인도 소유하고 있습니다. 30만원 정도 하는데요. 제가 이 바지에 이렇게 투자한 이유는 평생 입을 수 있을 거 같아서입니다. 품질이 우수하여 오래 입을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고 오래 입으면서 여기에 저만의 스토리와 추억을 넣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게 리바이스가 가진 힘이자, 아직까지도 소비자가 찾는 리바이스의 매력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리바이스는 몇 세대에 걸쳐 존재해 왔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언젠가 다시 리바이스에게 또 한 번의 위기가 찾아올 수 있겠죠. 하지만 리바이스는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입니다. 언제나 그랬듯 소비자는 리바이스를 찾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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