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너머의 책임
4화.
황금열쇠
토요일,
데이트 약속이 있었다.
결혼을 앞두고 한 번쯤 가보라던 웨딩 페어가 컨벤션 센터에서 열리고 있었다. 남자친구는 사진작가였고, 빛에 관해서라면 누구보다 엄격한 사람이었다. 조명의 온도, 그림자의 길이, 반사광의 성질 같은 것들을 일상어처럼 말하는 사람. 서연은 그 엄격함이 때로 안심이 되었다. 엄격한 사람은 예측 가능하니까.
그러나 오늘,
그녀는 자신의 예측 가능성을 믿을 수 없었다. 어제의 ‘딸깍’ 소리가 아직 귓속에 남아 있었고, 명동 골목에서 느꼈던 칼날 같은 직관이 여전히 손등을 긁는 듯했기 때문이다.
전시장은 눈부시게 밝았다.
너무 밝아서, 빛이 사람들을 조금씩 마모시키는 것 같았다. 수천 개의 전구가 연무처럼 떠다니고, 드레스의 보석들은 별처럼 반짝였다. 음악은 늘어진 리본처럼 천장에 걸려 있었다. 그곳에서는 감정조차 전시대 위에 올려진 상품 같았다. 사랑은 포토존이 되었고, 축복은 경품 응모함 속 숫자로 환산되었다.
사회자가 ‘황금열쇠 이벤트’를 안내했다.
“3,000개의 열쇠 중 단 하나! 오늘의 행운의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이벤트 부스로 향했다.
안내 스태프가 참가권을 건네며 투명한 유리 상자 속 열쇠들을 가리켰다. 작은 금속 조각들이 빛에 반짝였다. 서연은 웃었다. 과장된 이벤트는 원래 취향이 아니었다.
하지만 막상 시작되자,
단 하나의 열쇠가 불쑥 시야에 들어왔다. 설명할 길은 없었다. 유리 반사 때문일 수도, 누군가 흔들다 자리를 잡은 탓일 수도, 조명의 깜빡임 때문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분명한 건, 그 열쇠가 자신을 불러내듯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열쇠의 톱니가 만드는 미세한 음각이 그녀의 귀와 눈썹 사이로 스며들었다. 순간, ‘딸깍’ 하고 맞물리는 감각이 찾아왔다.
서연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넣었다.
차가운 금속이 손가락 사이를 흘렀고, 무수한 냉기가 살결을 핥았다. 그녀의 손은 주저 없이 하나를 집어 올렸다. 길이와 무게, 작은 흠집까지, 모든 것이 마치 그녀를 위해 재단된 장갑처럼 딱 맞아떨어졌다.
남자친구가 웃으며 물었다.
“그걸로 해볼래?”
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대 위, 자물쇠 앞에 섰다.
군중의 환호가 먼바다의 파도처럼 밀려왔다. 사회자의 목소리는 과장되었지만, 그 너머에 어쩐지 불안이 스며 있었다. 이 시대의 모든 이벤트는 불안을 보상하기 위한 장치 같았다.
서연은 열쇠를 조심스럽게 밀어 넣고,
천천히 돌렸다.
금속이 금속을 만지는 짧고 정확한 소리.
그리고
‘딸깍’
이날만 세 번째 듣는 소리였다.
자물쇠가 풀리자 군중은 환호했고, 색색의 종이 조각들이 비처럼 쏟아졌다.
“축하합니다! 오늘의 행운의 주인공!”
그때, 누군가가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다.
물리적 충격이 아니었다. 직관의 칼날이 번쩍이던 순간과 비슷한 진동이었다. 부스 관계자들은 사진을 찍으며 환히 웃었고, 남자친구는 엄지를 들어 보이며 셔터 소리에 맞춰 웃었다.
그 환한 빛 속에서 서연은 오히려 깊은 어둠의 색을 보았다. 너무 많은 빛이 있을 때만 드러나는 어둠. 전시장 천장 너머, 도시의 하늘 위, 대기의 얇음을 넘어 바다와 대륙과 빙하를 감싸고 있는 얇은 막의 색이었다.
그 막이 미세하게 떨고 있었다.
그녀의 어깨에 전해진 진동은 바로 그 떨림과 이어져 있었다. 귀로 듣는 소리가 아니라, 뼈로 듣는 소리. 조직과 조직 사이에 공명이 차올랐다.
“아…” 하고 내뱉은 숨결은 지구의 허파에서 흘러나오는 듯했다. 사랑하는 이를 오랫동안 업고 달려온 사람의 지친 숨처럼.
플래시가 한 번 더 터졌다.
서연은 황금열쇠를 손에 쥔 채, 열린 자물쇠와 함께 사진 속에 고정되었다. 환호, 종이 조각, 셔터 소리. 모든 것이 빛 속에서 번져갔고, 그 중심에서 그녀는 분명히 느꼈다.
문이 열렸다는 것.
그리고 자신이 그 문지방에 서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