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커기버

Matcher에서 Taker-Giver로

by 영업의신조이

14화.

흐름의 철학 _ 기버, 테이커, 그리고 바다


“사랑은 흘러 도착하는 곳마다 다시 시작된다.”



세상은 늘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기버인가, 아니면 테이커인가?”


누군가는 기버(Giver)를 희생의 상징이라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테이커(Taker)를 이기심의 얼굴이라 부른다.


그러나 삶의 결은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미묘하다. 우리는 언제나 어느 한쪽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주는 자였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받는 자였던 적이 있다.

그래서 인간의 진정한 자리는 그 중간, 바로 ‘매처(Matcher)’라는 존재 안에 있다.



이 개념은 단순히 ‘받은 만큼 주는 것’, 혹은 ‘준 만큼 받아내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삶이 흘러가는 과정 속에서 끊임없이 배우고 변화하며, 주며 배우고, 받으며 자라는 순환의 존재를 의미한다.

시간의 여정 속에서 우리는 때로 기버이자, 때로 테이커이며, 결국 서로의 흐름 안에서 섞여 살아가는 ‘기버테이커’와 ‘테이커기버’의 복합적 존재로 존재한다.



주고받음은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존재의 방식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주느냐 받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위해 살아가며 그 삶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느냐이다.

삶은 선택의 총합이 아니라, 흐름의 총체로 이루어진다.



나는 그 해답을 ‘강의 흐름’에서 찾아본다.

강은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스승이다.

그는 비를 받아들이되 머물지 않는다.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다시 세상으로 흘려보낸다.

그 과정에서 강은 단 한 번도 ‘주는 일’을 고통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존재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바다에 닿는 순간, 비로소 깨닫는다.

언제나 모든 것을 다 내어준 것 같았던 자신이, 결국 얼마나 큰 선물을 받고 있었는지를.

그 모든 여정이 경이로운 순환의 일부였음을.

강은 다 주었으나, 결국 바다의 넓고 포근한 품 안에서 완성된다.



바다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며 스스로를 바라본다.

수많은 강들이 내어준 생명의 흐름을 가슴에 품고, 그렇게 내어주는 강들의 이름까지 모두 지워버린다.


그는 한없이 받는 존재로, 그 받음 속에서 자신에게 ‘이기심’이라는 이름표를 붙여버린다.

그렇게 자책하며 스스로를 비워간다.



그 찰나,

무한한 포용 속에서 바다는 문득 눈물을 흘린다.

너무 많이 받은 미안함, 너무 깊이 품은 사랑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눈물은 하늘로 증발해 다시 구름이 되고, 다시 비가 되어 강으로 돌아간다.

그것이 바다의 방식으로 주는 일, 즉 ‘테이커의 기버 됨’이다.



이처럼 기버와 테이커의 관계는 시작도 끝도 없는 원형의 구조이다.

기버가 흘려보낸 사랑은 테이커의 품에서 다시 생명이 되고,

테이커가 받아들인 은혜는 감사의 눈물로 증발해 비가 되어 기버의 대지를 적신다.

결국 ‘주는 것’과 ‘받는 것’은 서로의 완성으로 귀결된다.



어느 순간 우리는 깨닫게 된다.

내가 다 주었다고 생각한 바로 그때, 삶은 나에게 어떤 새로운 선물을 건네고 있었다는 것을.

반대로 다 받았다고 느낀 순간, 그 안에서 또 다른 나눔이 시작되고 있음을.

다 주었을 때 얻게 되고, 다 받았을 때 비로소 줄 수 있게 되는 것...

그것이 성장의 순환이며, 존재의 철학이다.



삶은 흘러가는 일이다.

사랑도,

믿음도,

용서도.

.

.

.

내가 흘려보낸 말 한마디,

손끝의 온기,

눈빛의 방향은...


모두 누군가의 바다로 향한다.

그리고 그 바다는 언젠가 또 다른 강을 낳는다.



그러니 기버가 된다는 것은 자신을 잃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세계 속에 자신을 녹여내는 일이다.


테이커가 된다는 것은 탐욕이 아니다.

사랑을 기억해 품고, 언젠가 그것을 다시 흘려보낼 준비를 하는 과정이다.



결국 우리는 모두 서로의 강이자 바다이다.

주는 일로 세상을 밝히고, 받는 일로 세상을 배운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우리는 ‘흘러가며 남는 향기’를 배운다.


기버, 테이커, 그리고 매처?

아니, 테이커기버(Taker-Giver).


각기 다른 존재로 구분하기 쉽지만,

조금만 더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그 셋은 결국 한 존재의 세 얼굴임을 알게 된다.


각기 다른 삶의 흐름 속에서도

우리 마음속의 사랑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 형태만 바꾸어,


지금도 여기에 살아 숨 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