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와 존재가 만나 하나의 울림을 만들다
08화.
밤 산책
생각을 정리하는 사람의 이야기
“이 산책은 마음을 비우기 위한 시간이 아니라, 비워지지 않는 나를 인정하기 위한 시간이었다.”
매일 밤 열 시 반이 조금 넘으면 나는 집을 나선다. 때로는 열한 시가 지나고, 어떤 날은 자정에 가까워질 때도 있지만, 그 시간의 어둠은 이미 내 몸과 마음이 기억하고 있다.
하루에 10킬로미터에서 12킬로미터...
운동을 따로 할 여유를 내지 못하는 삶 속에서 이 산책은 나에게 남겨진 유일한 신체적 균형의 시간이며, 동시에 마음을 다듬기 위한 명상에 가깝다.
걷는 동안 나는 숨을 고르고, 리듬을 맞추고, 의식과 몸을 같은 보폭으로 불러온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산책을 시작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평온이 아니라 고통이다.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 아직 덮어두었다고 믿었던 과거의 장면들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고개를 든다.
산책을 하는 이유는 잊기 위해서인데, 걸으면 걸을수록 그 기억들은 더 또렷해진다.
고통은 모호하게 찾아오지 않는다. 늘 구체적인 얼굴과 장면을 가지고 나타난다.
조금 더 들여다보면 그 고통의 중심에는 언제나 ‘욕심’이 놓여 있다.
더 빨리 가고 싶었던 마음,
더 잘하고 싶었던 갈망,
실패하지 않고 싶다는 두려움.
효율적으로,
손해 없이,
흔들리지 않고...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들이 정리되지 않은 채 머릿속에서 계속 순환한다.
나는 무엇을 원했고, 왜 이렇게까지 집착하고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묻게 되지만, 질문은 곧 분석으로 바뀌고, 분석은 반드시 원인을 찾으려는 습관적인 사유로 이어진다.
그 순간부터 고통은 방향을 갖기 시작한다.
고통은 언제나 대상이 있다. 환경이 되고, 사람이 되고, 조건이 된다. 이 정도는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왜 나는 이런 상황에 놓여야 하는가, 왜 저 사람은 그렇게 행동했을까. 이런 질문들은 어느 순간 원망으로 변하고, 원망은 곧 화로, 분노로 이어진다. 마음의 평정을 찾기 위해 나온 밤 산책은 그렇게 분노의 게이지를 조금씩 끌어올린다.
약 5킬로미터쯤 걸어 반환점에 도착하면 늘 같은 장면이 반복된다. 나는 그제야 내가 얼마나 욕심을 부리고 있었는지, 그 욕심 때문에 타인과 환경을 향해 원망하고 화를 냈다는 사실을 마주한다. 그 모습은 늘 조금 어리숙하다. 그 어리숙한 나를 바라보며 ‘그러면 안 되지’ 하고 조용히 다독이듯 마음을 내려놓고, 이제 다시 돌아서 걷기 시작한다.
하지만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발걸음은 집을 향하고 있지만 생각은 쉽게 멈추지 않는다.
이제는 또 다른 걱정이 슬며시 고개를 든다.
이게 안 되면 어떡하지.
이렇게 흘러가다가 내일은 어떡하지.
직장에서의 비전,
바라고 있던 미래,
그리고 밝게 그리고 싶었던 그림들이 오히려 우려와 불안의 얼굴로 되돌아온다.
잘되기를 바란 마음이 잘되지 않을 가능성에 대한 상상으로 바뀌면서, 나는 다시 한번 생각의 소용돌이 안에 서게 된다.
이렇게 돌아보면 나의 한 시간 반, 12킬로미터의 산책은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가장 피하고 싶었던 것들의 반복이다. 욕심이 차지하는 절반, 원망과 분노가 차지하는 또 다른 일부, 그리고 남은 공간을 서성이는 걱정과 우려. 나는 평온을 위해 걸어 나오지만, 걷는 동안 내 마음은 다시 가장 익숙한 불안의 구조를 되풀이한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집이 보이기 시작하는 거리쯤에 다다르면 모든 것이 조금씩 달라진다. 발은 이미 분명히 아파오기 시작하고, 발바닥에는 묵직한 통증이 느껴진다. 그 순간 나는 자연스럽게 대지와 내 발바닥 사이에 놓인 것들을 인식하게 된다. 양말, 그리고 그 아래에서 묵묵히 버텨주고 있는 운동화의 바닥.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온기가 발바닥을 통해 전해진다.
생각해 보면 나는 여전히 욕심을 반복하고, 원망을 되새기고, 같은 걱정을 되풀이하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양말은 내 발을 따뜻하게 안아주고, 신발은 그 무게와 피로를 견고하게 받아내고 있다.
바로 그 감각 앞에서 나는 이상한 위안을 얻는다.
내가 아직도 평온을 향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 그 노력 자체가 지금 이 시간을 가능하게 했다는 깨달음 때문이다.
집에 거의 다 도착할 즈음이면 온몸의 땀샘이 열리기 시작한다. 등과 목, 팔과 다리, 땀구멍 사이로 땀이 배어 나오고, 그 위를 스치는 밤바람이 땀을 식힌다.
그 순간의 상쾌함은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직접적이다. 생각이 아니라 감각으로만 존재하는 시간. 오롯이 지금, 현재에 머무는 짧지만 분명한 현존의 경험이다.
그 순간만큼은 욕심도, 원망도, 우려도 모두 한 발짝 뒤로 물러난다. 나는 숨을 쉬고 있고, 내 몸은 살아 있으며, 지금 이 순간을 통과하고 있다는 사실만이 또렷해진다. 이 짧은 평온과 안정감이 하루를 마무리하는 데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나는 이미 수없이 경험했다.
물론 안다.
내일이 되면 이 모든 과정은 다시 반복될 것이다. 똑같은 걱정이 찾아오고, 똑같은 어리숙함이 고개를 들 것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면서도 나는 오늘 하루를 비교적 평온한 미소로 마감할 수 있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내가 행복을 위해 현재를 살고 있다는 안도감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이 산책에 감사한다.
완벽해서가 아니라, 흔들리면서도 다시 걷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렇게 또 하루를 조용히 내려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