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해부학

2부: 의지와 실천으로 다시 쓰는 마음의 구조

by 영업의신조이

30화.
마음해부학 마지막 장 _ 경이로운 존재, 나



모든 마음의 층위를 하나하나 더듬어 오다 보면 결국 우리는 한 지점에 다다르게 된다.
왜 나는 지금 이 시간,

이 장소에서 이 감정과 이 관계 속에 존재하고 있는가...라는 질문.


머리에서 일어난 미래의 불안, 심장에서 올라온 과거의 그림자, 그리고 피부로 미세하게 스치며 지나가던 현재의 감각까지...
그 모든 파동들이 사실은 하나의 중심에서 만나고 있었음을, 이제야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그 중심은 ‘세계’가 아니라 ‘나’이며,

이 ‘나’라는 존재의 출현 자체가 이미 기적이었음을, 우주의 서사 뒤편에서 서서히 드러난다.



우주는 아무 말 없이 시작되었다.
기원이라 불리는 그 무언의 사건, 빅뱅은 어떤 의도도 없이 폭발했고 그 안에는 숫자로 치환할 수 없는 가능성들이 흩어져 있었다.


빅뱅이 “일어났을 확률이 얼마나 되는가?”라는 질문은 잘못된 질문이다. 그것은 확률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확률을 가능하게 만든 ‘조건’이기 때문이다.


확률 이전의 사건. 계산 이전의 시작.
그 무한한 장에서 우주는 태어났고, 그 이후의 모든 흐름은 마치 운명과 우연의 두 개의 빛이 동시에 흔들리는 것처럼 연쇄되었다.


약 138억 년이 지나 우주는 식어가며 구조를 만들었고, 우리는 그 구조 중 하나인 은하수 한켠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 은하에는 수천억 개의 별이 있고, 그 별들 중 상당수는 또다시 행성을 거느린다. 태양계는 그 수많은 가능성 중 하나의 결과이며, 그 태양계 안에서 현재까지 생명이 ‘확인된’ 행성은 지구 하나뿐이다.


지구는 우주 전체로 보자면 먼지에 가깝지만, 그 미세한 먼지에서 생명이 태어나기까지의 조건은 아직까지도 완전히 설명되지 않는다.
그래서 인간은 생명의 등장을 ‘경외’라는 말로밖에 부를 수 없다.


그리고 지구 약 5억 1천만 제곱킬로미터 중 단 1제곱미터를 차지하며 “나는 여기 있다”라고 말할 확률은 거의 0에 가깝다. 하지만 분명 0은 아니다.
이 애매한 값 위에서 인류는 살아왔고, 나는 태어났다.


바다에서 시작된 생명은 육지로 건너왔고, 그 끝없는 갈래 속에서 나는 인간이 되었다.
그러나 인간이 되었다고 해서 곧바로 ‘나’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지구에는 80억 명이 넘는 인간이 있으며, 과거의 인간들까지 포함하면 약 1천1백70억 명에 이른다.
그 수많은 인간 가운데, 나는 아시아라는 대륙,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서울이라는 도시를 선택하듯 통과해 태어났다.


하지만 아직 ‘나’는 등장하지 않는다.
먼저 아버지가 태어나야 했다.
기억할 수도 없는 우주의 흐름 끝에서 같은 시대, 같은 별, 같은 나라에 도달해야 했다.
어머니 역시 동일한 확률의 강을 건너 동일한 자리에 서 있어야 했다.


그러나 존재한다고 해서 만나는 것은 아니다.

두 사람은 스쳐야 했고, 머물러야 했고, 선택해야 했으며, 마음이 마음을 향해 움직여야 했다.
수없이 많은 “아닐 수도 있었던” 갈래 속에서 단 하나의 길만이 열려, 두 사람은 결혼이라는 합류점에 도달했다.
그리고 그제야 생물학의 미로가 열렸다.


수억, 수십억 개의 정자 중 단 하나가 난자에 도달하고, 46개의 염색체가 상상을 초월하는 조합을 만들어내는 확률을 뚫고 결국 하나의 배아가 심장의 첫 박동을 울렸다.


그 심장은 멈추지 않았고, 지금까지 이어졌다.
이 모든 확률의 사슬을 지나 도착한 존재...

그게 바로 나였다.


우연이라 하기엔 너무 치밀하고, 필연이라 하기엔 너무 우발적이다.
그래서 인간은 이 지점을 ‘경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경이로운 흐름 위에 서서 나는 또다시 질문하게 된다.


그토록 복잡한 기적의 연쇄 끝에 이 자리까지 온 내가, 지금 눈앞의 타인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이를테면, 내가 미워하는 사람들.
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고, 상처를 남기고, 밤마다 되새김질하게 했던 그 얼굴들.


그러나 이제 알게 된다.

그들 역시 나와 같은 확률의 미로를 지나 여기에 도착했다는 것을.


그 존재마저 기적의 결과다.


그 사실을 이해하는 순간 미움은 방향을 잃고, 원망은 서서히 온도를 잃는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
우연히 나의 생과 겹쳤고, 숨과 체온을 나누기까지 한 존재들.
그 사람들 역시 이 모든 확률의 계단을 하나씩 하나씩 올라 지금 내 앞에 서 있다.


그렇기에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사건이다.


다시는 반복되지 않을 우주의 정렬이 지금 이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

그것만큼 경이로운 일이 또 어디 있을까.


그래서 나는 안다.
고맙다는 말이 필요한 사람,
미안하다고 말해야 할 사람,
사랑한다고 아직 표현하지 못한 사람,
이 모든 말들이 살아 있는 오늘의 시간.
이 시간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제 나는 세계를 조금 다른 눈으로 본다.
나만 특별한 게 아니라,
이 순간 나를 둘러싼 존재들 모두가 이미 충분히 특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여기서 행복하다.
우주가 나를 위해 존재해서가 아니라,
이 우주 속에 함께 서 있는 너라는 존재의 무게를 비로소 이해했기 때문에...


경이로운 존재, 나.
그리고
경이로운 존재, 너.


이 짧은 생의 한가운데서 서로를 알아본 지금,
우리는 충분히 살아 있다.



우주속의 우리 by 영업의신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