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자리

존재 행동 책임 침묵에 대하여

by 영업의신조이

1부, 1화.

관계



무대는 과하게 세련되지 않았다.

천장은 낮았고, 조명은 완벽하게 계산된 방송 조명이라기보다는 오래된 강연장의 스폿라이트에 가까웠다.


밝히기보다는 페널들의 윤각을 드러내는 빛의 강도였다. 바닥은 검은 매트 재질이라 발바닥의 체온이 천천히 스며들었고, 스튜디오 안에는 케이블이 타는 듯한 미세한 전자 부품들의 냄새와, 사람이 많이 모이면 자연스럽게 생기는 숨의 온기가 겹쳐 있었다.


사회자는 여성이었다.

삼십 대 후반, 단정하지만 억지로 권위를 두르지 않은 사람.

메모지는 들고 있었지만 읽지 않았다.

그녀는 네 명을 ‘성인’으로 호명하지 않았다. 그저 이름을 불렀다. 그것만으로도 이 자리가 숭배가 아니라 같은 위치에서의 이루어지는 서로를 향한 대화임을 분명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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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첫 키워드는 관계입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낮았고, 불필요한 장식이 없었다.


“이 키워드에 가장 가까운 분부터 시작하겠습니다. 공자 선생님.”


공자...

공자는 의자에 깊게 기대지 않았다. 허리는 곧았고, 손은 무릎 위에 자연스럽게 얹혀 있었다. 그 자세 자체가 이미 말하고 있었다. 관계는 태도에서 시작된다고.


“관계는 감정이 아닙니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안정적이었다.


“감정은 변합니다. 그러나 관계는 지속을 전제로 합니다. 그래서 나는 인(仁)을 말했습니다. 인은 선함이 아니라 절제된 마음의 상태입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사회자의 얼굴을 보았다. 상대가 ‘지금 듣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눈빛이었다.


“관계가 무너질 때, 우리는 상대를 탓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내가 먼저 무너졌습니다. 말의 속도를 조절하지 못했고, 분노를 품위로 감싸지 못했고, 내 역할을 망각했습니다. 관계란 결국, 내가 어떤 인간으로 서 있느냐의 결과입니다.”



예수...

예수는 조금 다르게 앉아 있었다. 등받이에 등을 붙이고 있었고, 한쪽 다리는 살짝 앞으로 나와 있었다. 긴장을 풀어도 되는 자리라는 듯한 태도였다. 그의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내용은 전혀 안전하지 않았다.


“나는 관계가 종종 실패하는 이유를 압니다.”


그는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가볍게 눌렀다.


“우리는 사랑받고 싶어 하지만, 사랑할 준비는 하지 않습니다.”


그의 시선은 객석을 향했다. 특정인을 겨냥하지 않았지만,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방향이었다.


“관계는 공평하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더 참아야 하고, 누군가는 더 낮아져야 합니다. 그 불균형을 견디지 못하면 우리는 ‘정당함’이라는 이름으로 관계를 포기합니다.”


그는 잠시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


“나는 사랑을 말했지만, 그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선택의 반복이었습니다. 관계란 결국, 오늘도 상대를 사람으로 대할 것인가를 다시 결정하는 일입니다. 어제의 사랑은 아무런 보증이 되지 않습니다.”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는 다리를 꼬지 않았다. 대신 몸을 앞으로 숙였다. 마치 지금 이 대화가 끝나면 바로 거리로 나가 사람들에게 말을 걸 것처럼.


“관계가 왜 어려운지 아십니까?”


그는 질문을 던졌지만,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우리는 관계를 검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는 테이블 위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둔탁한 소리가 짧게 울렸다.


“우리는 ‘오래 알았다’, ‘가족이다’, ‘친구다’라는 말로 관계를 면죄합니다. 그러나 묻지 않으면, 그 사이 속의 관계는 썩습니다.


이 관계는 나에게 지금도 정직한가?


나는 이 사람 앞에서 진실한가?”


그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생각하지 않는 관계는 안전해 보이지만, 사실은 가장 무지한 폭력입니다. 질문을 멈춘 순간, 우리는 상대를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관리의 대상으로 바꿉니다.”



부처...

부처는 가장 늦게 말을 시작했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스튜디오의 소음은 더 또렷해졌다. 카메라의 미세한 모터음, 누군가 의자를 고쳐 앉는 소리, 숨.


“관계가 고통이 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그의 목소리는 거의 속삭임에 가까웠다.


“우리는 관계를 통해 나를 완성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손을 펼쳤다.

아무것도 쥐고 있지 않은 손이었다.


“기대는 집착으로 변하고, 집착은 분노로 변합니다. 상대는 나를 채워야 할 존재가 되고, 그러는 순간 관계는 이미 무너졌습니다.”


부처는 고개를 들었다.


“관계는 붙잡는 것이 아니라 함께 흘러가는 것입니다. 내가 비워질 때, 상대는 비로소 사람으로 보입니다.”



사회자는 잠시 고개를 숙였다가 들었다.

이제 마지막이었다.


“공자 선생님, 정리 부탁드립니다.”


공자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우리는 관계를 서로 다른 언어로 말했지만, 결론은 하나입니다. 관계는 상대를 바꾸는 기술이 아니라, 나를 단련하는 과정입니다. 사랑도, 질문도, 내려놓음도 결국은 내 태도의 문제입니다.

내가 바로 서지 못하면, 어떤 관계도 오래 버티지 못합니다.”


사회자는 마지막으로 마이크를 잡았다.

이번엔 카메라를 보지 않았다. 객석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오늘 이 자리에서 가장 불편한 진실은 이것입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관계가 힘든 이유는, 우리가 상처받아서가 아니라 편해지고 싶어서입니다.”


잠시 침묵...


“지금 당신의 관계들 속에서 묻겠습니다.

당신은 누구에게 가장 예의 없이 말하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그리고 그 사람은… 정말 관계 속에서 안전하다고 생각해서 그러는 것입니까, 아니면 당신이 가장 쉽게 무너뜨릴 수 있어서 그런 겁니까?”


조명이 하나씩 꺼졌다.

박수는 없었다.

대신 사람들은 쉽게 일어나지 못했다.


관계는 사랑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품격이 드러나는 자리였다.



4대 성인의 테이블 by 영업의신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