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위해 어둠을 선택한 천사의 기록
14장.
지옥의 문 _12월 31일. 마지막 날 밤.
성현은 성전 한가운데 쓰러져 있었다.
며칠째 이어진 기도와 침묵의 고행으로 무릎은 터지고 피멍이 들었으며, 입술은 갈라져 창백했다.
육신은 아직 사람의 형태를 간직하고 있었지만, 그의 존재는 이미 텅 빈 껍질처럼 비어 있었다.
숨은 이어졌으나, 감정은 더 이상 흐르지 않았고, 영혼은 그 자리에서 오래전부터 떠나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곳은 누구의 손길도 닿지 않는, 말 그대로 성스러운 고독의 끝이었다.
그때였다.
교회 문이 조용히 열렸다.
특별한 소리도, 발자국도 없었다.
그러나 무언가 분명히 다가오고 있었다.
흰빛이 문틈 사이로 조용히 번져 들었고, 그 빛 속으로 루시퍼가 들어섰다.
놀랍도록 단정한 모습이었다.
순백의 셔츠,
정제된 향기,
온화한 눈빛.
이전보다 더 맑고 젠틀한 인상이었으나, 그가 머무는 공기에는 설명할 수 없는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마치 숨결보다 먼저 공간이 움츠러들고, 시선보다 먼저 존재가 주저하는 낯선 이질감.
“고생했구나.”
그가 말했다.
목소리는 따뜻했다.
이상하리만큼 부드럽고 다정했다.
하지만 그 따뜻함은 체온이 아닌, 오래 식은 조명 아래의 온기처럼 어딘가 인위적인 감각을 머금고 있었다.
“정말 많이 애썼어. 하지만 넌… 끝내 응답을 받지 못했지.”
루시퍼는 조용히 성현의 곁에 앉았다.
거리낌 없는 태도였지만, 그 시선 속엔 깊고 알 수 없는 연민 같은 것이 섞여 있었다.
“왜일까. 너는 그렇게 순수했는데. 그렇게 간절했는데.
그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린성현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피로에 젖은 두 눈만이, 희미하게 남은 힘으로 상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루시퍼는 성전 안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어둠 속에서 촛불이 가느다랗게 흔들리고, 창밖의 눈발은 조용히 가라앉고 있었다.
“나는 너에게 모든 걸 줄 수 있어.
네가 바랐던 것들. 성공, 사랑, 용서, 기회,
그리고 두 번째 삶… 그 모든 축복을.”
말은 천천히 흘렀고, 음률은 마치 오래된 시처럼 사람의 마음 깊은 곳을 두드렸다.
“하지만 이 모든 건, 네가 문을 열고 나갈 때부터 시작될 수 있어.”
린성현은 흐릿한 시선으로 교회 입구를 바라보았다.
그의 손 안에서 오래된 목걸이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옥으로 만들어진 조그마한 십자가였다.
그는 조심스레 몸을 일으켰다.
넘어지듯 일어나며 비틀거렸지만, 다리에 힘을 실었다.
무릎이 욱신거렸고, 어깨가 무거웠다. 그러나 그는 앞으로 나아갔다.
마치 한 번 더 살아보기 위해,
혹은 마지막으로 진실을 확인하기 위해.
그리고 그는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는 순간,
그 앞에는 또 다른 거대한 철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차갑고 무겁고, 검고 깊은.
문을 마주한 순간, 설명할 수 없는 압력이 허리를 짓눌렀고,
몸 안의 모든 감각이 움츠러들었다.
불길하진 않았다. 그러나 본능이 경고하고 있었다.
이 문은, 어떤 길도 되돌릴 수 없는 문이라는 것을.
그가 놀란 눈으로 철문을 바라보자,
교회 안에 여전히 밝은 얼굴로 남아 있던 루시퍼가 조용히 말했다.
“지금 이 순간, 너는 신의 품이 아닌,
내 세계로 들어간 거야.”
그 한마디가 끝나자,
성현의 발밑이 갈라졌다.
땅이 무너졌고, 그는 그대로 깊은 어둠 속으로 빨려 들었다.
낙하의 충격은 없었다.
대신, 무중력 같은 허공과
붉은 기운, 차가운 공기, 그리고 형체를 가늠할 수 없는 어둠들이 그의 시야를 감쌌다.
아무도 소리 지르지 않았지만, 모든 고통이 공기 중에 실려 울부짖고 있었다.
그곳은, 지옥의 입구였다.
그리고 그 위. 밤하늘 끝.
루시퍼가 떠 있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사람의 형상이 아니었다.
와인빛 셔츠는 검은 기운에 잠식되었고,
양 어깨 위로 거대한 검은 날개가 펼쳐져 있었다.
이마에는 상아빛 뿔이 솟아 있었고,
그의 눈빛은 신이 거둔 자리 위에 스스로를 앉힌 자의 확신으로 차 있었다.
아름답고, 치명적인, 지옥의 주인.
루시퍼는 천천히 손을 들었다.
그 손끝에서 피어나는 환영이, 마치 유혹의 안개처럼 린성현을 향해 번져왔다.
“이제… 시작이야.”
그는 미소 지었다.
그 미소는 회심의 자신감,
승리의 환희,
오만의 결정체였다.
그러나 그 아래,
허공으로 떨어지던 린성현은,
왼손을 움켜쥐고 있었다.
핏기 없는 손끝으로 부여잡은,
오래전 누군가에게 받았던 옥색의 십자가.
차가워진 심장을 지나,
믿음의 중심을 잇고 있던 그 마지막 상징.
그는 그것을 놓지 않았다.
아직.
단 한 번도......
그날의 지옥의 문은 악마가 연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이 침묵 속에서 스스로 건넌 문이었다.
하지만 그 문틈에, 아직도 ‘믿음’이 남아 있다면,
그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