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묵과 번개탄

엄마의 실망

by 고덕훈

제주의 예전 난방시설은 굴묵이었다. 방 안의 구들(온돌)에 불을 지피기 위해 구멍을 뚫어 만든 구멍이다. 아궁이와 유사하다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어릴적 우리집은 왼쪽에 안방이 있었고 안방벽쪽 아래에 굴묵이 있었다. 날씨가 쌀쌀해지기 시작하면 부모님과 누나들과 나는 지들것(마른솔잎, 마른나뭇가지, 장작 등 불을 지필 땔감)을 시간날 때마다 비축해 놓았고 행여 비에라도 젖어 불이 붙지 않을까 비료포대를 위에 씌우고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 돌을 올려 놓았다.

우리집은 제주도 조천읍 해발 150m정도의 중산간에 위치한 50여가구가 모여 사는 작은 마을에 있었다. 마을이름은 양천동인데 큰 연못이 있다하여 양대못이라고 불렸다. 그 양대못에서도 우리집이 가장 마지막 집이었다. 집에서 조천초등학교까지는 4킬로정도의 거리였다. 아침에 학교 갈때는 조천읍 중산간을 순회하는 버스를 탔다. 문제는 집으로 돌아올때다. 편하게 버스를 타고 올것인지...아니면 버스정류소에 하나있던... 꼭 하교시간에 맞춰 그 하나에 50원하는 핫도그를 튀겨 우리의 눈, 코, 입을 혼미하게 하는 그 핫도그집 그 할머니...대부분 편하게 차를 타고 오는적은 없다. 차비100원과 핫도그2개를 맞바꾸는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친구와 눈이 마주치고 서로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이면 끝이다. 할머니는 케찹도 본인이 직접 짜줬다. 그 누구의 핫도그에도 할머니는 매우 소량의, 정량의 케찹을 짜줬다. 그 정확한 측량기술로 친구들의 분쟁의 소지를 없앴다. 나무젓가락 끝의 소세시는 정말 1cm도 안되었지만 우리는 그 소세지마저 빨아서 녹여먹으며 지금 추억해보면 성인도 한시간은 걸어야 할 그 길을 큰 책가방 메고 2시간은 족히 걸어온 것 같다.

핫도그의 생명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렇게 아껴먹었는데도 절반도 못와 없어진다. 그때부터는 몸도 지친다. 친구들이 자기 집에 하나씩 도착하고 제일 먼 나만 혼자 500m를 더 걸어서 집에 도착한다. 도착하고 가방을 벗고 지들것을 하러간다.

어둑어둑해지니 엄마가 과수원일을 마치시고 집으로 오셨다. 오시자마자 굴묵으로 가신다. 마른솔잎가지에 불을 붙이시고 굴묵입구에 넣어 입으로 후후하고 부신다. 연기가 매캐한 굴묵밖으로 빠져나온다. 엄마눈에서 눈물이 난다.

"엄마, 무사 울맨?"

"어~ 연기가 눈에 들어가서 눈매워서 울맨~"

같은동네 부잣집 우정이네 집이 떠올랐다. 우정이네 집은 연탄보일러였다. 우정이네 집에서 번개탄으로 연탄불을 붙이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엄마! 나 나중에 커서 번개탄 사장되서 엄마한테 번개탄 많이주크라~! 엄마~ 울지마~"

엄마가 나를 한참 바라보다 하시는 말...

"아이고! 크게 되카부댄허난 커서 번개탄 장사허켄햄쪄~~!"

나는 엄마생각해서 한 얘긴데....뭘 잘못한거지?

지금도 어머니는 그때 얘기를 하시면서 웃으신다.

그래서인가...번개탄 사장은 안됐지만 비슷한 거 하고 있다.

어쨋든 고기는 구워야 하는거니까...번개탄도 숯계열이잖아~

엄마눈에서 눈물나게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살다보니 엄마를 많이 슬프게 한것 같다. 그런데도 아직도 말을 못하는 아들이 되어있다.

언제나 어른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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