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국에 있는 Y로부터 전화가 왔다. 가끔 카카오톡으로 문자를 주고받았으나 육성으로 하는 전화통화는 꽤 오랜만이었다. 밀린 숙제를 하듯 그동안 못다 했던 이야기를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통화를 했다.
Y와 처음 만난 때는 학원 사업을 시작한 첫 해였다. 갑작스럽게 불어나는 아이들을 가르칠 강사를 구하고 있을 때였다. 키가 큰 Y는 머리카락을 탈색하고 칼라렌즈를 끼고 면접에 나타났다. 시범 강의도 곁들인 면접 때 그가 강사로서 어떤 인상을 주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를 채용하기로 결정한 것은 순전히 그의 ‘적극성’ 때문이었다.
수업과 학원 운영으로 몸이 두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쁜 그때, 강사 채용 결정과 당락 전달이 늦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Y는 면접 며칠 후 전화를 해서 언제 최종 결정이 날 지 물어왔다. 나는 즉석에서 일단 날짜를 말해주고 전화를 끊었는데, 결국 나는 그 날짜에도 결정을 하지 못한 채 다른 일들에 파묻혀 있었다. Y는 다시 한 번 내게 전화를 해 왔고, 본인의 합격 여부를 물어왔다.
자신의 계획을 내게 이야기하면서 합격여부를 알아야 그 다음을 진행할 수 있다고 말하던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인생에 대한 목표가 뚜렷하고 매우 적극적이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때 그는 막 스무 살을 조금 넘어선 나이였다. 어려서 무책임할지도 모른다는 내 염려를 없애 준 그 전화 통화로 인해 그를 최종 채용했다.
Y가 대학원 공부를 위해 일을 그만둘 때까지 우리는 거의 10여년을 함께 일했다. Y는 영어도 잘하고 가르치는 것도 잘했다. 내 학원 사업 성장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Y를 빼놓고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그는 유능했고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번뜩이는 창의성과 실행력, 그리고 중요한 순간에는 몸을 사리지 않고 밀어 부치는 힘이 좋았다. 그래서 그가 손대는 일은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 일만 잘한 것이 아니었다. 늘 유머와 개그로 무장한 그녀 덕분에 우리는 심각한 상황에서도 웃으면서 일할 수 있었다.
고용주와 고용인의 관계에서 시작된 우리의 인연은 시간을 두고 동지로 발전했다. 당시 일에 있어서 우리의 최종 비전은 같았다. 사교육 현장에서 지식의 전달에 그치지 않고 진짜 교육을 해보겠다는 상당히 무모한 도전을 했던 것이다. 지금 돌아보면 말도 안 되어 보이는 그 일에 당시 우리는 매우 진지했고, 그 일에 젊은 청춘의 일부를 바쳤다.
그와 나는 일에 있어서 서로를 잘 보완했다. 내가 큰 그림을 그리면 그는 정교한 디테일을 짰다. 내가 ‘쿵’을 치면, 그는 ‘짝’을 울리면서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어 냈다. 함께 책을 읽으며 인생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 자신에 대해 배워 나갔다. 그렇게 나는 나의 30대를 그는 그의 20대를 버성기면서 보냈다.
함께 책을 읽으며 미래를 설계하던 당시, 그는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일을 하며 글을 쓰고 싶어했다. 이후, 그의 계획대로 일을 그만두고 대학원에서 심리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심리, 영어, 그리고 글’을 중심축으로 그는 그의 커리어를 착실하게 쌓아갔다.
반면, 당시 ‘사업가와 강연자’가가 되고 싶었던 나의 꿈은 사업의 실패와 함께 사그라졌다. 꿈에 의해 배신당했다는 생각에 나는 꿈을 버렸다. 급기야는 꿈을 꾸고 그것을 이루어 가는 삶은 선택된 소수의 사람에게만 허락되는 것이라고 단정짓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엇갈린 길에서, 한때 가슴 뛰는 삶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던 우리 두 사람의 연결고리는 끊어지는 듯했다.
내가 학원 사업을 거의 정리해 갈 무렵, 우리는 언니와 동생의 관계로 책 모임을 통해 다시 정기적으로 만나게 되었다. 그 즈음에 우리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삶에서 추구하는 방향이 많이 엇갈려 있었다고 하는 것이 더 맞겠다.
그는 책을 읽으며 계속해서 꿈을 향해 나아갔고, 나는 꿈을 버리고 현실 속에서 길을 찾고자 노력했다. 같은 책을 읽었으나 책을 읽는 목적이 달랐고, 책에서 배우는 것도 달랐다. 꿈꾸기를 그친 그때의 나에게 책읽기는 소박한 삶을 위한 정신적 혹은 이론적 무장을 위한 것이었다. 책 속에서 발견한 새로운 것들로 가슴을 적시며 성장하고 있던 그에게 나의 그런 자세는 이해 못 할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가 가끔씩 지나가는 투로 ‘다시 시작해 보라’는 말을 던지곤 했던 것을 보면.
그는 지금 ‘작가’가 되겠다던 그 꿈을 이루고 있다. 출판사와 계약이 되어 글을 쓰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진심으로 축하한다. 영어와의 끈도 계속 이어가고 있다. 살짝 엿본 그의 영어 수업은 매우 친절했다.
당연하다.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용기를 주는 것은 그에게 중요한 가치다. 그는 그의 가치대로 또 자신의 바람대로 삶을 꾸려오고 있다. 인생의 이러 저러한 부침에 흔들리면서도 끝까지 자기 길을 찾아 고집스럽게 걸어온 그가 자랑스럽기만 하다. 그리고 그의 노력들이 하나씩 열매를 맺기 시작하는 것을 보니 기쁘기 그지없다. 앞으로 더 많은 열매들을 맺어갈 것을 바라며 또 그러리라 믿는다.
전화 통화를 하는 동안, 시간을 돌아 다시 ‘사업가와 강연자’의 꿈을 꾸기 시작한 나의 변화를 듣고 그는 매우 기뻐했다. 그는 내가 그렇게 침잠해 있던 그 시간, 내가 많이 안타까웠었다고 했다. 사업 실패 후, 자꾸 뒤로 물러나고 쪼그라져 가는 나를 보면서, 한때 도전적이고 패기 넘치던 그 사람이 맞는지 헷갈렸다고 한다. 그러면서 궁금해했다. 왜 그렇게 마치 실패자처럼 살았는지…
가만히 돌이켜 보니, 내가 꿈을 폐기처분한 이유는 사실 사업에 실패해서가 아니었다. 나는 당시 꾸었던 나의 꿈이 진짜 내 것인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나의 꿈이라고 믿었던 그것들이 사실은 다른 사람의 꿈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또 어쩌면 그것들은 나의 인정 욕구의 발현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했다. 큰 꿈을 꾸었던 것은 필경 나의 낮은 자존감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꿈을 불신했을 뿐 아니라, 그 꿈을 꾸는 나 자신마저 불신했다. 그래서 그렇게 극도로 예전의 꿈과 닿아 있는 곳을 피해 다녔다.
지난 칠 년의 시간을 돌고 돌아 다시 원점에 섰다. 금 속에 불순물이 들어 있다고 해서 금이 금 아닌 것이 되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다소의 인정 욕구로 얼룩지고 군데 군데 다른 사람의 꿈이 끼여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당시 내 가슴을 뜨겁게 달구었던 나의 미래에 대한 비전은 내가 진정으로 살고 싶은 삶의 모습이었다. 어두웠던 터널의 시간은 나와 나의 꿈을 담금질한 것으로 보인다. 그토록 열망했던 현실이라는 바닥을 디디고 나서 다시 꾸는 꿈은 몽상도 아니고 다른 사람의 꿈도 아니며, 또한 소위 관심 종자의 인정욕구는 더더욱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어떤 사람인지, 나의 고유한 장점은 무엇인지, 그리고 나는 무엇을 해야 행복한지 분명하게 알게 된 것이다.
그와의 전화 통화는 마치 확인 도장 같다. 함께 일하던 그 시절에 우리가 꾸었던 꿈은 결코 허황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우리 됨’을 잘 보여준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통화 말미에 Y가 말했다. ‘언니, 다시 돌아온 것을 환영해! 근데, 이번에는 뻥카가 아니어야 해.’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 듯하다.
탁! 탁! 탁! 땅바닥을 딛는 내 발자국 소리가 뜨겁다.
그래, Y야, 언니가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