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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킴 Jul 13. 2021

우리, 마지막엔 바다에서 죽자!





겨울 바다 수영(Winter Ocean Plunge)



6월 18일 금요일 이른 아침, 친구 마미(Mami)로부터 한통의 메시지를 받았다. 


“Good morning, crazy ladies! It’s a short notice, but would you be interested in swimming/plunge into the ocean tomorrow a.m.? Let me know if you’re keen.”
"좋은 아침, 크레이지 레이디스! 갑작스럽긴 한데, 내일 아침에 바다 수영하러 가는 거 어때? 
관심 있으면 알려줘."


마미가 나와 후아니타(Juanita)에게 보낸 메시지였다. 정말 뜬금없는 사람으로부터 온 뜬금없는 메시지였다. 이 겨울에 (여기 뉴질랜드는 지금 한 겨울이다) 바다 수영을 하러 가자는 것도 놀랍지만, 그것이 후아니타가 아닌 마미가 한 제안이라는 것이 더 놀라웠다. 이미 4개월여 동안 매일 찬물로 샤워를 해오고 있던 나는 망설임 없이 가겠다고 답을 했다. 


다음 날 아침 7시가 조금 넘은 시간, 마미의 지령(?)대로 도중에 요시코 (Yoshiko, 마미의 일본인 친구)를 태우고 마미 집에 도착했다. 미리 와 있던 후아니타와 마미까지 차에 태우고, ‘살아 돌아오라’는 마미 남편의 인사말을 뒤로 하고, 바다를 향해 달렸다. 






한 겨울의 이른 토요일 아침 시간, 해변에는 우리를 제외하곤 아무도 없었다. 다른 사람의 흔적이 없는 것을 확인한 후아니타, 갑자기 옷을 훌렁 훌렁 벗더니 알몸으로 바닷물로 뛰어 들었다. 역시 후아니타! 나머지 음전한 동양 여자 셋은 수영복 차림으로 차가운 바닷물 속으로 소리를 지르며 들어갔다. 


남극에서 몰려오는 것 같은 맑고 차가운 물에 온 몸이 소스라쳤다. 우리는 몸을 웅크리는 대신에 두 팔을 하늘로 올리며 소리와 웃음을 내질렀다. 눈 앞에 보이는 것은 흐린 날씨로 회색 빛 구름이 가득한 하늘과 그 하늘을 비추는 겨울 바다뿐이었다. 시린 파도에 몸을 싣고 물장구치며 노닌 우리는 그대로 장엄한 자연의 일부가 되었다. 칼로 베는 듯한 찬물이 온 몸을 쓸어 내리는데도, 한 겨울 바닷물 속에 있다는 흥분감에 우리는 환호와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기를 10분쯤. 온 몸이 빨갛게 되어서 해변으로 몰려나왔다. 


준비의 여왕, 마미. 발을 담글 플라스틱 통과 뜨거운 물, 뜨거운 차와 위스키를 준비해 왔다. 우리는 차례로 플라스틱 통에 들어가 발을 녹이고 뜨거운 차와 위스키를 섞어 마시며, 첫 겨울 바다 수영을 자축했다. 생각만큼 춥지 않고, 생각만큼 어렵지 않다는 것이 우리 모두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차가운 바닷물이 주는 예상 밖의 상쾌함과 즐거움을 느꼈다며 겨울 바다의 ‘의외성’에 대해 한마디씩 하느라 한참 떠들썩했다. 


‘Don’t think, just do it! (생각하지 말고 그냥 하기)’, 그날 우리의 만트라(mantra: 주문)이자, 유일한 전략이었다.


주효했다. 무슨 일이든 생각을 너무 많이 하면 지레 겁을 먹고 시작도 못해 보는 일이 허다하다는 것, 그러므로,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그냥 하는 것이 가장 좋은 전략이라는 것에 모두 동의했다. 그러면서, 나이키의 유명한 광고 문구, ‘Just do it’ 안에 들어있는 통찰력에 대해 감탄하기도 했다.






뜨거운 차를 마시며, 나는 마미에게 왜 뜬금없이 겨울 바다 수영을 제안했는지 물었다. 상상 이상의 것을 갑작스럽게 하는 사람은 우리 중에서 늘 후아니타다. 그랬기에 나는 마미의 제안이 놀라웠다. 또한, 늘 계획과 준비가 꼼꼼한 마미의 충동적인 제안도 의외였다. 후아니타 역시 '이렇게 이상한 짓을 Joy(나)가 아닌 마미가 제안했다는 것이 놀라웠다'고 말했다. 마미의 대답은 간단했다. 사람들이 새해 맞이로 하는 바다 수영을 종종 보았는데, 엄청 추워 보이기도 하고 동시에 재밌어 보였다고도 했다. 그래서 얼마나 춥고 얼마나 재밌는지 직접 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충동적으로 제안해도 우리가 따라줄 것 같았다는 말에 모두 깔깔거리고 웃음을 터뜨렸다. 



겨울 바다 수영을 제안한 마미(Mami)


마미가 보았다는 새해 맞이 바다 수영은 일명 ‘북극 곰 수영 (polar bear swims)’으로 알려져 있다. Ocean plunge라고도 불리는 이 행위는 캐나다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서구 여러 나라에서 사람들이 차가운 바닷물에 몸을 담금으로써 새해를 건강하고 재밌게 맞이하는 풍습이다. 우리나라에서 산이나 바다에서 일출을 보며 한 해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며 새해를 맞이하는 것과 그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보인다. 


계절이 거꾸로 도는 이곳 뉴질랜드, 원주민인 마오리족들은 전통적으로 6월말에서 7월 초에 새해를 맞이한다. 그들에게는 9개의 밝은 별로 이루어진 별 자리 마타리키 (Matariki)가 떠오르는 때가 새해 첫날이다. 올해, 마타리키는 7월 2일에 떠올랐다. 7월 3일 토요일 아침, 두번째 겨울 바다 수영을 나간 우리는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마오리력 새해 맞이 북극곰 수영을 한 셈이다. 





마지막에 우리, 어떻게 죽을까?


두번째 바다 수영을 하던 날 아침은 영하 4도의 춥고 맑은 날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 위로 태양이 떠오르기 바로 직전, 우리는 또 한 번 차가운 겨울 바닷물에 몸을 담갔다. 연분홍으로 흩날리던 하늘이 붉은 빛으로 물들어 갈 무렵, 뼛속까지 차가운 물 속에서 우리의 몸도 바알갛게 물들어갔다. 마오리력 새해에 서양의 북극곰 수영을 하며 한국인의 일출 보기, 이 세 가지를 한 번에 하고 있었다. 


무슨 소원을 빌까? 마오리인들은 지난 한 해 죽은 자들을 기리고, 다가오는 한 해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한다고 한다. 강렬한 빛을 사방으로 뿌리며 붉은 태양이 물 밖으로 얼굴을 드러낼 때, 그 차가운 물 속에 서서 느낀 것은 단 하나였다. 태곳적부터 있었을 그 풍경 속에서 살아있다는 것에 대한 감사 이외에는 아무것도 떠오는 것은 없었다.   


살을 에는 듯한 바다 속에서의 수영은 집에서 날마다 하는 찬물 샤워와는 사뭇 달랐다. 이른 새벽의 찬물 샤워도 충분히 나의 몸과 정신을 어딘가 태곳적으로 데려가지만, 광활한 바다와 하늘이 펼쳐진 곳에서의 겨울 수영은 그 이상의 전율을 선물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오로지 몸으로만 이해할 수 있는 느낌이었다. 나의 몸이 자연의 에너지와 다시 연결되고 합일되는 느낌. 내가 바다이고 찬 물이며, 하늘이고 바람인 것만 같았다. 






‘Girls’ Night’ (매달 첫번째 월요일 밤마다 후아니타, 마미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 만나는 사교 모임. 겨울 수영을 계기로 요시코도 추가되었다)이면, 우리는 곧잘 ‘죽음과 죽는 방법’을 놓고 토론을 했다. 후아니타는 늘 죽을 때를 감지하면 바다로 나가서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고 했고, 마미는 마라톤에 참가해서 길 위에서 죽고 싶다고 했다. 나는 가장 편안해 보이는 자다가 죽는 죽음을 선호했다. 


이번 바다 수영 경험은 우리로 하여금 죽는 방법에 대해 하나의 결론에 이르게 했다. 겨울 바다에서 ‘저체온증 망상증 (Hypothermia delirium)’으로 기분이 최고로 된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우리의 생명이 시작되었던 물 속에서 삶을 마감하되, 고통스럽지 않고 즐겁게 생명의 순환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왠지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사라진 우리를 찾아 헤매느라 쓸데없이 세금을 낭비하지 않도록, 이 땅에서 조용히 사라지는 구체적인 방법들에 대해서도 열띤 토론을 펼쳤다. 아직 토론은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겨울 바다와 더욱 친해지기 위해 이 겨울이 끝날 때까지 매 격주 토요일마다 바다 수영을 나가기로 했다. 이 겨울 끝자락에 무엇을 만날 수 있을지 사뭇 기대가 된다. 









저체온증 망상증 (Hypothermia delirium) :


저체온증이 극심해지면, 온도에 대한 혼동이 증가되어, 역설적이게도 추위를 전혀 타지 않아 오히려 옷을 모두 벗게 되는 증상이다. 춥다고 느끼지 않고, 눈 속에서 기분이 좋은 상태를 경험한다. 대부분 심장 마비로 죽게 된다고 한다. 


사실, 첫 바다 수영 후 요시코에게 가벼운 저체온증 망상증이 왔었다. 


물에서 나와 차를 마시며 웃고 떠드는데, 요시코가 사시나무 떨듯이 떨기 시작했다. 저체온증이 온 것이다. 추우니까 떨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있던 나와 달리, 경험이 많은 후아니타는 자신이 끌어안고 있던 핫 보틀(뜨거운 물을 안에 넣어 만든 고무로 만든 병)을 요시코에게 안겨주고 담요로 그녀를 돌돌 말았다. 서둘러 차로 달려가서, 차 난방을 최대로 하고 마미 집으로 향했다.


차 안에서 요시코는 오래 전, 이차 세계 대전 이전에 한 무리의 일본 군인들이 저체온증으로 죽은 이야기를 했다. 겨울에 부대 이동을 하다가 눈 덮인 산에 갇혔던 이들이 옷을 모두 벗고 하나도 춥지 않다며 즐겁게 뛰다가 갑작스럽게 죽었다는 것이다. 그때 살아남은 몇 사람의 증언에 의해 세간에 알려진 그 이야기를 읽을 당시에 요시코는 그 상황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는데, 이제는 완벽하게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본인도 차가운 바닷물 경험이 이상할 정도로 즐겁고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매우 조심성이 많은 마미는 바닷물에 들어간 지 5분 후에 해변으로 나가서 일찌감치 옷을 입고 따뜻한 물과 차에 몸을 녹였다. 자신의 몸의 소리를 듣는 것에 익숙한 후아니타는 12분 정도 지난 후에 해변으로 나갔다. 나와 요시코는 15분정도 물에서 놀다가 해변으로 나갔다. 100일이 넘도록 매일 찬물 샤워에 단련이 되었던 나와는 달리 한겨울에 찬물에 몸을 담그는 경험이 처음이었던 요시코에게 그것은 극강의 체험이었던 것이다.


마미가 뭍으로 나갈 즈음, 요시코는 옷을 벗어 놓은 곳으로 가서 자신의 스마트 폰을 꺼내 와 사진과 동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아마도 그때가 저체온증 망상증으로 인해 즐거움이 최대가 된 상태였던 것 같다. 물 속에서 여기 저기 뛰어다녔고, 뭍으로 나온 즉시 발을 담그고 옷을 입은 나와는 달리, 요시코는 젖은 수영복을 입은 채로 흥분과 즐거움 속에서 한참의 시간을 보냈다. 몸을 사시나무처럼 떨면서도 옷 입을 생각을 하지도 않고, 자신의 몸을 담요와 머플러로 감싸는 후아니타와 마미에게 계속 괜찮다고 했다. 이 상황을 더 심각하게 생각한 후아니타 덕분에 우리는 재빨리 조치를 취함으로써 자칫 위험할 수 있었을 상황을 모면했다. 




이렇듯 겨울 바다 수영은 다소 위험할 수 있으니, 모두 주의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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