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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킴 Feb 02. 2021

오른쪽 다리를 잘라내버렸으면



삶은 때때로, 살아가기보다는 살아진다


'섬유근통 증후군'. 거의 평생 동안 내 삶의 질을 갉아먹고, 앞으로 나아가려고 할 때마다 내 발목을 잡고 늘어졌던 질병의 이름이다. 


섬유근통증후군은 뇌분비 호르몬과 관련이 있는데, 그 원인을 규명할 수 없어 불치병으로 분류되어 있다. 섬유근통증후군을 앓게 되면 우리 몸의 섬유질이 있는 곳에서 통증을 느끼게 된다. 쉽게 말해 온 몸에 통증이 발생한다는 뜻이다. 


나의 경우에는 매우 어렸을 때 이 질병이 시작되었던 듯하다. 초등학교를 다닐 때 한달에 한 두 번 정도, 오른쪽 무릎과 고관절에 강한 통증을 느꼈고, 어디다 하소연할 곳이 없어(그 시절, 우리 부모님들은 우리를 돌보기에는 생계 해결에 너무 바쁘셨다) 그때마다 오른 쪽 다리를 잘라내 버렸으면 하고 바랬던 것이 기억난다. 


정체를 모르던 이 질병과의 의미 있는 대면은 내가 대학을 졸업하던 해에 일어났다. 그 당시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학원에서 파트타임으로 영어를 가르치며 고시 공부를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 정신은 잠에서 깼으나 눈을 뜰 수도 없고 몸을 일으킬 수도 없었는데, 마치 딱 내 몸 사이즈의 거대한 자석이 저 땅밑까지 연결된 힘으로 내 몸을 잡아당기는 듯한 느낌이었다. 일어나려고 사투를 벌이다 오후 1시쯤 겨우 몸을 일으켰다. 원래 새벽형인 나는 평소 새벽 5시면 일어났었으니, 몸을 일으켜 세우는 데에만 상당한 시간을 보낸 셈이다. 세수를 하고 거울을 보니 얼굴이 마치 뻥튀기를 한 것 마냥 퉁퉁 부어 있었다. 얼굴뿐 아니라 온 몸도 마찬가지였다. 





겁이 나서 곧바로 병원을 방문해 온갖 검사를 진행했다. 그런데 대부분의 검사에서 ‘정상 소견’이 나왔다. 마지막으로 신경과 관련된 부서에서 면담을 하게 되었는데, 담당 의사가 말하길 나처럼 검사 결과가 모두 정상인데도 통증과 피로 등 여러가지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가끔 있다는 것이다. 나와 같이 젊은 사람은 (당시 23살이었다) 본인도 처음 만나보는데, 방법이 없으니 마음을 편하게 가지라고 하면서 안쓰럽게 나를 바라보았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정말 펑펑 눈물을 쏟았다. 꺼이 꺼이 울면서 차라리 무슨 병이 있다고 말해 달라고 통사정을 했다. 그러면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치료에 성공할 자신이 있다고. 고통과 증상이 이리 뚜렷한데 어떻게 문제가 없다고 말할 수 있느냐고, 치료 방법이 없다고 하면 도대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느냐고 울며 호소했다. 그때는 '섬유근통증후군'이라는 병명도 없을 때였다. 


그렇게 원인모를 통증을 견디며 오랜 시간이 흘렀다. 첫 아이를 출산하고 나서 손목이 부어오르고 통증이 더욱 심해져서 병원을 다시 방문했고, 그때서야 처음으로 '섬유근통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받게 되었다. 병원에서 첫 검사를 해본 이후로 12년이 흘렀을 때였다.


‘불치병’이라는 단어가 주는 부정적인 영향력은 실로 상당하다. 자기 연민, 슬픔, 노여움, 좌절감, 패배감. 이런 부정적인 감정들이 만성적인 통증과 함께 나의 성격의 일부로 고착화되어버린다. 그 밑바닥에는 말할 수 없는 슬픔이 고여 있기도 하다. 삶은 때때로, 살아가기보다는 살아진다. 당시 나의 삶은 정말 그랬다.






통증이 없다는 것은 이런 느낌이구나!



섬유근통 증후군이라는 질병이 드리운 그늘에도 불구하고 내 영혼은 긍정성을 유지하려 여러가지로 노력했다. 그리고 나이 오십 즈음의 인생들이 겪게 되는 몇 가지 일들(예를 들면, 이혼이나 사업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변화와 자유를 꿈꾸며 뉴질랜드까지 오게 되었다. 


하지만 이민정착의 레이스 막바지에 찾아온 극심한 신체적 통증과 우울증은 정말 이번에야말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게 만들었다. 이 세상을 하직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너무 어린 아들들은 키워야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내 인생 처음으로 우울증 약을 처방 받았다. 


신이 베푼 친절이었을까? 우울증 약을 복용하고 며칠 지나지않아, 예상치 못한 효과가 나타났다. 우울한 기분이 나아진 것은 물론이고, 섬유근통증후군 때문에 느껴지던 온 몸의 통증이 말끔하게 사라져버린 것이다. 우울증 약에 진통제 성분이 들어있는 것도 아니었다.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통증 없는 날이 일주일 동안 계속되자 정말 살 것 같았다.


'우와, 이런 세상이 있구나. 통증이 없다는 것은 이런 느낌이구나!' 


세상을 다 얻은 느낌, 혹은 새로운 몸으로 다시 태어난 느낌이었다. 하지만 내가 이 우울증 약을 평생 복용해야만 하는가는 생각해볼 문제였다. 만약 우울증이 나아지면서 내게 새롭게 생겨난 긍정적인 에너지가 내 몸에 변화를 만든 거라면, 앞으로 이 긍정적인 마인드셋을 어떻게든 유지하면 되는 것 아닐까? 여기까지 생각이 닿자 더 이상 고민해볼 것도 없었다. 나는 일단 약을 끊고, 내가 내 몸을 바라보고 대하는 시선을 바꿔보기로 했다. 몸의 기능을 믿고 통증에 대한 염려를 완전히 버렸다. 그리고 통증이 없는 삶을 태어나 처음 느꼈던 때의 기쁨을 생생히 떠올리려 노력했다. 


긍정적인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명상을 하고 동기부여가 되는 강의들도 찾아들었고, 의식적으로 더 많이 웃고 부정적인 생각과 마음이 떠오를때마다 최선을 다해 밀어냈다. 그리고 한 달 뒤, 약을 복용했을 때와 똑같은 통증이 없는 삶이 다시 내게 찾아왔다.






여명은 서서히 하늘을 퍼져나간다


생존에만 집중하던 에너지를 통증이 없는 지금은 내 인생을 보다 창의적으로 살아가는 데 집중시켜 나가고 있다. 이제서야 다시 내 삶을 살기 시작한 느낌이다. 


동트기 바로 직전, 세상은 칠흑처럼 어둡다. 여명이 서서히 하늘을 퍼져 나가면서 갑작스레 온 세상에 아침이 밝아 오는 것처럼, 그렇게 내 삶의 가장 어두운 순간에 태양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처음 뉴질랜드에 올 때 충만했던 자신감을 회복했을 뿐 아니라, 지난한 어려움을 겪어낸 영혼이 가질 수 있는 견고함도 느낀다. 바닥을 디뎌 본 자의 비상(飛上)에는 두려움이 없다. 그동안의 아픔의 시간들은 삶의 지혜로 쌓여, 앞으로의 내 발걸음에 힘을 더해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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