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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 19. 2023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행복함을 수치로 나타내어, 개개인의 행복 지수를 사람들이 알 수 있는 세상이 온다면 어떨까?
스스로에게 되뇌어 본다.
그렇다면 나는 현재 행복한 사람인지 말이다.
불과 4~5년 전까지만 해도 행복에 대한 기준치가 없었다.
아니, 행복이 무엇인지 조차 인지하지 못했다고 표현하는 게 보다 정확할 것이다.
뻔한 클리셰 같겠지만 매우 가난한 환경에서 자라왔다.(왔다고 생각한다)
유년시절을 떠올려 보면 되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도 많았고 꿈도 다채로웠던 것 같다.
하지만 고기도 먹어본 놈이 맛을 잘 안다고 했던가.
비루한 현실 앞에서 좌절하고 꿈과 이상이 사치라는 것을 반복적으로 학습한 삶이 전개되다 보니
어느덧 나는 행복 앞에서 행복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나만 덜 행복하면 되는데, 주변에 행복함을 느끼는 사람들을 보면 부아가 치밀어 오를 때도 있었다.
물론 좋은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기에 대놓고 감정을 표출한 적은 없다고 생각한다만... 아마도 내 성격상
감정이 얼굴에 여실히 드러나기에 가까운 지인들은 알고 있지 않을까 싶다.
며칠 전 흙수저 부모의 문제점이라는 유튜브를 본 적이 있다.
어떤 알고리즘으로 노출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무의식적으로 유사한 콘텐츠를 접했겠지만서도)
여러 가지 이유 중에서도 유달리 내 가슴을 후벼 파는 사유는
"흙수저 부모는 자식의 감정과 욕구를 존중할 줄 모른다."라는 말이다.
그렇다. 내가 유년 시절에 겪은 좌절감과 시련은 사실 특정 사건 때문이라기보다 내 정당한 욕구를 부모 본인들의 무능력으로 해결해 주지 못함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것을.
나는 여전히 세속적인 관점에서는 부족한 사람이지만, 내가 느끼는 결핍의 온도에 비해 남들이 보기에 그럴싸해 보이는 업무를 하고 일면식도 없는 사람과도 사주 명리로 1시간 이상 대화가 가능한 사람이다.
(애석하게도 내담자의 고민에 이입, 공감을 몹시 잘하는 편이다)
타인으로부터 켜켜이 쌓인 결핍의 온도를 오롯이 나 스스로 조절해야 함을, 결핍마저도 행복으로 승화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이번 생에 해결해야 할 숙제로 여겨지기에
앞으로 행복의 온도를 높여가는 삶을 살기를 다시금 다짐해 본다.
P.S
사람의 대운은 10년마다 주기적으로 바뀌는데, 어떻게 우리 부모님은 두 분 다 6번의 대운이 바뀌었는데 도통 바뀌실 생각을 안 하신다. 뭐 어쩌겠나 내가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꿀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