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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공비행 Aug 03. 2023

 축구와 함께인 삶으로부터.

자칭 축구철학도의 글. 

철학과.

축구.


그것이 뒤섞인 채 방황하는 과정 중


과거와 현재에 대한 


기록 및 정리.


그리고 포부랄까.


하는 것들의 모음으로 만든 시작.





<축구와 함께인 삶으로부터>



2021 ~ 2022 



매끄럽게 이어지는 과정을 열정으로 만들어내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사는 요즘, 아무리 바빠도 공은 계속해서 찬다. 항상 공을 차러 가면 매 게임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매번 새로운 경험을 얻는다. 그 과정을 통해 성장하는 중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축구가 좋다. 공부하고 생각하며 가만히 보는 것과 직접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다르다. 그리고 같은 카테고리 안에서도 무수히 많은 요소들과 거기에서 비롯되는 경험의 차이가 있기에 많은 사람들이 이 공놀이를 저마다의 이유로 사랑하는 것이지 않을까?



22년 전반기 축구인생



약 4개월 동안 축구에 대한 스스로의 열정을 끊임없이 테스트했다. 아직까진 무사히 치르고 있는 중이다. 다행이라 생각한다. 여름과 그 이후의 남은 22년 내내 끊임없이 육체적, 정신적 노력을 병행하여 더욱 발전하고 싶다.



2022 ~ 2023



1. 어린 시절부터 10년 이상의 고민의 시간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정하지 못했던 22년이었습니다.


한 해를 열심히 보내며, 축구를 포함한 스포츠의 모든 산업에서 마케팅과 관련된 일이 내가 하고자 하는 것과 다르단 사실을 몸소 깨달았습니다. 따라서 전공인 철학과, 관심 분야로서의 인류학을 겉핥기로나마 공부하면서 스포츠와 접목해보고자 하였는데, 너무 재밌고 저와 잘 맞더군요. 


이것이 이 축구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지, 아니 그전에 나의 삶에서, 사회에서 어떤 생산성을 만들고 가치를 창출할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22년 월드컵을 통해서, 98에서 100이 되어버린 스스로의 열정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10년 동안 삶 전체를 아우르는 비전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2. 365일, 해를 나누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느꼈지만 생각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서로 덕담을 주고받고 행복을 얻는 사람들, 별 것 아닌 하루가 지나갈 뿐이지만 새로운 결심과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 또한 기회랄까요.


일종의 새해라는 키워드가 주는 힘일까요? 그 힘이 단순한 미신일지라도 한 번 믿어보고 가볍게 따르자면, 집착을 버리는 시간이 시작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즐거움과 강박, 쾌락 그 모든 집착이 될 것이고요.


3. 공놀이의 노예가 되어 주도권을 상실하는 그런 삶을 배제하는 노력도 포함될 것 같습니다. 앞서 이야기하였듯, 확신과 비전이 저의 무기입니다. 비록 그것뿐이지만요. 그래도 지난해에 배운 점이 많아서요.


4. 발 닿는 곳이 길이고, 걷는 곳도 길이고, 만들어지는 것이 길이라는 점을 항상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떤 길을 걸을지는 모르겠지만, 제자리에 서 있지 않고 걸을 것이란 점은 확실하니 다가오는 시간들 또한 미친 발걸음으로 일관된 삶을 가지기를 소망해 봅니다.


인생의 큰 축으로 삼을 23년을 만들겠습니다.



2023



(본글은 모 인터넷 매거진에 수록된 글로서, 직접 작성한 글임을 알립니다.)

 


대운동장 




“좋아합니다.”



연세대학교 남문을 지나거나, 서문에서 아래로 걸어 내려올 때 펼쳐지는 장소. 대운동장.



20살의 신촌


어느 유명한 스페인 영감님이 그러셨다. 인생은 공과 함께하는 여행이라고. 그 말이 뇌리에 박혔으나 아직도 이 문구를 온전히 이해했다고 자부하지 못한다. 


어쨌든 인생은 이 놀이와 상당히 유사함을 보인다. 일단 웃음이 꽤 많다. 때로는 세상 누구보다 행복하면서도 분노에 찬 몸을 가누지 못하기도 한다. 감정을 쏟아낼 수 있는 어떤 창 아니면 자신을 보는 거울. 물론 이 삶은 폭력으로 가득 찰 때도 있다. 개강과 함께 쏟아지는 과제와 풀 학점도 그렇고.


그 폭력을 버티는 이유는 각자의 목표나 어떤 작은 골이 있기 때문일 것이라 추측한다. 대충 살다 보면 주변의 분위기에 휩쓸리기도 하며, 스스로의 힘으로 판을 뒤집을 때도 있다. 원하든, 원치 않든 소소한 개인의 결말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어떠한 의무가 있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는 저마다의 시작과 끝을 새롭게 작성해야만 한다.



타지의 삶 그리고 성인의 삶. 그 20대의 시작점에, 나는 이곳에 서 있었다. 


중앙의 작은 점. 가벼운 마음으로 즐기는 자. 인생을 바쳐 열정을 불태우는 자. 놀이의 사람들. 그들 모두 소소한 목표에 골인을 해내거나 작은 실패를 맛보더라도 다시 이곳으로 돌아온다. 다시 와야만 한다. 


처음 만난 서울의 사람들. 첫 신촌과 성인으로서의 첫 경쟁. 지금은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승리의 조각들과 기쁨. 원하는 만큼 달성하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어떤 승리를 원했다.


어떤 여신의 의미를 담아낸 브랜드의 로고가 담겨 있는 이곳. 승리에 대한 의지와 공으로 하는 놀이가 주는 즐거움이 담긴 복합적인 공간. 이 대운동장이 다른 학교의 장소들과 비교했을 때 가지는 특별함. 


신촌의 젊은이들이 땀을 흘리는 장소에 걸맞는다.



이름과 나이, 전공과 고향을 모르는 사람들이 나를 보고 웃으며 손을 내민다. 


“짜—악"

찰진 소리가 날 정도로 신나게 하이파이브했다. 


그들을 다시 만나는 일은 없었다.


22년 전반기 축구인생. 


약 4개월 동안 축구에 대한 스스로의 열정을 끊임없이 테스트했다. 아직까진 무사히 치르고 있는 중이다. 다행이라 생각한다. 여름과 그 이후의 남은 22년 내내 끊임없이 육체적, 정신적 노력을 병행하여 더욱 발전하고 싶다.

운동장은 어쩌면 중간 지대. 이곳을 거친 후의 다음 목적지에 대한 고민.


집으로 돌아갈 것인지 혹은 식당이나 술집으로 향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시선을 저 먼 곳, 우리가 이야기하는 신촌에 두게 만든다. 신촌의 거리는 보이지 않으나 저 멀리, 만 냥 하우스가 눈에 들어온다.



화장실의 오른쪽에 위치한 코트, 농구를 하는 이들이 눈에 쉽게 띈다. 친구들과 작은 게임을 하는 경우도 있으며, 홀로 후드를 뒤집어쓴 채 자신의 행위에 무아지경으로 빠져드는 사람 또한 보인다. 포기를 모르는 남자의 붉은 옷을 뒤에서 보니 마치 불꽃과도 같다. 

.

.
(알고 보니 진짜 아는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 밥도 먹지 않은 채 발로 차는 운동만 하던 나를 보고 부모님은 한 가지 묘안을 생각해 내셨다. 농구 클럽으로 아들을 보내면, 위 문제의 해결과 빠른 키 성장을 동시에 해낼 것이라는 일석이조의 묘책. 아쉽게도 아들은 180을 넘지 못했으며 급식소의 기억은 가물가물하다. 여전히 신촌에 서서 공을 차며, 가족에게 그 사실은 말할 수 없는 비밀로 남긴다.



이곳에서 운동을 하는 이들의 마음가짐과 능력은 천차만별. 그럼에도 그들의 공통점은 바로 ‘좋아한다'라는 것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은 매우 자유롭고 아름다운 일이지만 그만큼 힘들기도 하다. 셀 수도 없는 난관에 부딪히게 되며 타인의 눈초리는 덤이다. 그럼에도 그러한 일을, 놀이를 계속해 나가고자 하는 그 의지는 무엇보다 젊음의 상징이자 순수함의 극치다. 신촌, 그리고 대운동장이 품어야만 할 삶의 태도이다.



부정적인 시선들이 존재한다. 공처럼 통통 튀는 꼬맹이들은 공과 같이 차일 때가 있으며, 모두가 그 움직임을 억제하려고 한다.


물론 어린 시절 내내 야외에서 공에 미쳐 사는 아이보다 얌전히 숙제하고 책을 읽는 아이가 칭찬을 받을 가능성이 더 크다. 하나 먼 과거의 글 그리고 여러 기록들에서 드러나는 것과 같이, 연세의 대표적인 시인 또한 학창 시절에 공을 발로 찼으며 철학을 전공한 위대한 문학가도 공 차는 일을 업으로 삼고자 하였다.



놀이를 놀이라 부르며 코웃음 치는 이들에게. 


멸시의 순간을 셀 수 없겠으나 전혀 개의치 않는다. 그대들 또한 지난해의 끝자락에 집단의 열광 속에서 일상을 보냈을 것임을 안다. 너희는 모를, 어쩌면 벌써 잊어버렸을 그 기쁨 속에 파묻힌 채, 나는 괜찮다는 말을 전한다.



혼자만의 성취는 없다. 대부분의 순간 우리는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며, 잠시 숨을 고르는 순간 또한 이에 더해진다. 그럼에도 초점은 메인 캐릭터에게만 향한다. 모두의 시선은 플레이그라운드, 저 가운데에 머문다. 그 외곽에 놓인 사람들은 무대에서 사라진다. 묵묵히 남을 돕거나 잠시 휴식을 하며 때를 기다리는 것도 충분히 멋지다. 그곳 또한 감히 플레이그라운드라 할 수 있겠다.



러닝 크루 또한 심심찮게 보인다. 깔끔한 운동장의 환경과 뻥 뚫린 시야는 도심의 젊은이들에게 안성맞춤인 장소일 것이다. 대학생들, 직장인들, 그 외 여러 사람들이 모여 이루는 작은 무리는 구호에 맞춰 달린다. 페이스에 맞춰 무리는 갈라진다. 그 안에서도 개인의 편차는 존재할 것이나, 함께한다는 것은 자신의 페이스를 조절해 준다. 혼자가 아니라는 점은 참 편하고도 감사한 일이다.


건강 증진, 체력 단련, 혹은 기록 경신. 그 무엇을 목표로 하는지는 몰라도 숱한 사람들이 발을 옮긴다. 음악을 듣거나 자신의 호흡에 집중하는 학생, 젊음을 아끼고 아껴 학업에 열중하다 달궈진 머리를 식히기 위해 바깥으로 나온 학생도 있다. 그들은 아무 생각 없이 달릴 때도 있으며, 너무 많은 생각 속에 잠시 걷기도 하는 듯하다.



종종 이곳에 설 때마다 어린 꼬마 아이들을 볼 수 있었다. 부모님의 손을 잡고 온 아이, 자신의 상체보다 큰 공에 몰입하는 아이. 때때로 유모차에 탄 아이도 보았다. 그 옆에는 아이의 가족이 있었다. 이들은 일상의 나들이를 위한 장소, 잠깐의 쉼터를 목적으로 이곳을 찾은 것처럼 보였다. 방학이라 미처 몰랐으나, 오늘이 주말임을 곧 깨달았다.

연세대 과잠을 입은 채,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는 학우들 또한 보았다. 청력도 안 좋을뿐더러 모르는 이들의 이야기를 엿듣는 것은 취미가 아니기 때문에 큰 관심을 갖지는 않았다. 하나 그들의 좋지 않은 안색을 보아하니, 다가오는 개강이 심히 걱정이 되는 듯하다. 나도 무섭다.


아무리 걸어도, 어떤 순간에는 쉼 없이 달린다 하더라도 자신의 예상보다 긴 거리를 지나오지 않은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을 것이다. 심지어 어떤 것도 해내지 못한 듯한 인상을 받을 수도 있겠다. 이러한 순간들은 너무나도 슬프지만 제자리에 머문 듯한 느낌은 허상이다.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긴 숨을 들이마신 뒤, 고개를 뒤로 돌릴 때 비로소 보일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미친 발걸음이 그 길에 머무르고 있다.



마치 공놀이와 같은 이 삶은 일종의 리그와 같다. 하나의 라운드가 끝이 났을 뿐, 앞전의 결과는 묻어둔 채 다시 시작하고 움직여야 할 것이다. 신촌이라는 익숙한 플레이그라운드를 언젠가 벗어나야만 할 때도 찾아올 것이고. 


그럼에도 이야기는 진행된다. 종료 휘슬이 울리기 전까지. 구르는 공처럼, 그 긴 시간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에 대해선 누구도 단언하지 못하리라. 신촌과 연세, 대운동장이 나의 그라운 드였듯, 언젠가 미지의 세계로 떠나거나 차가운 공간에 발을 딛는 날에도 그곳이 나의 홈그라운드가 되길 바라며.


사람들이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고 잊을 수도, 지나쳐버릴 수도 있다. 모두가 알지만, 모두가 잊고 있는 곳. ‘대운동장’, 영어로는 Playground. 평소에 우리가 ‘삶’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않고 매 순간을 흘려보내는 것처럼 이곳 또한 눈에 띄지 않게 자리한다. 참으로 흥미로운 일이다. 플레이를 한다는 자들이, 자신들이 살아가는 그 배경의 장소를 무의식에 버려놓다니.



3월의 주말, 수많은 사람들이 운동장을 가득 채우며 자신들의 움직임을 보인다. 중학생에서 고등학생까지 어린아이들 또한 자리를 한다. 평범한 대학생들부터 외국에서 넘어온 친구들이 혼재한 집단도 있으며 신촌 주변에 거주하는 주민들도 포함이다. 교수님으로 추측되는 분들도 계신다!

별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운동장. 그러나 운동 이외에도 신촌의 일상이 녹아들어 있는, 살아 움직이는 공간.


모두가 플레이그라운드를 그들의 혼잡한 발자국으로 메운다. 나는 이들의 넘쳐흐르는 사랑을 사랑한다. 웃고 떠드는 사람들의 소리가 가득한 이 캠퍼스 외곽의 밤이 아름답다. 


신촌 대운동장 끝.



2023 여름



상당한 횟수의 물리치료들과 시술을 보험으로 처리했음에도 올해의 전반기에 정형외과에 쓴 돈은 50만 원을 훌쩍 넘는다.


8월 현재 기준으로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지만, 당시에는 나름의 '라스트 댄스'라고 생각하고 임했던 교내 대회는 8강에 그쳤다. (조별리그 4전 4승, 16강 토너먼트 직행, 8강 탈락)


독립 구단에서의 짧았던 활동도 그쳤다. 원하지 않았던 포지션에서, 기대보다 덜 했던 강도와 체계의 훈련 및 경기 스케줄들을 소화하고, 바쁘게 수도권을 오가던 일상에서 힘겨움을 느꼈다. 육체적 배움을 얻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정신적 배움은 충분하였다.


다시는 지고 싶지 않다는 것과 이기는 게임을 해야 하다는 것. 

'즐기는 게임(즐겜으로 보통 칭하는)'이나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의 줄임말)는 없으며, 이겨야 배우고 이겨야 실력이 향상된다는 깨달음. 조언.


무더운 여름 속에서, 완전히 낫지 못한 무릎과 장거리 경기 참여의 어려움이 있음에도 나라는 사람의 내외로 미약하지만 발전을 이어나가고 있음을 안다. 


그렇게 발전하고 있다.


그럼에도 머무르기도 한다.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싶다는 내적인 외침이 언제나 강렬했으나, 막상 그러한 기간이 그 거대함으로 나를 찾아오자 망설이기도 하였고, 허둥지둥 움직이다 시간을 날려버리기도 하였다. 그 과정에서 우선순위로서 배제되었다는 이유로 구석에 밀어 넣은 분야도 있으며, 오히려 기억의 무의식으로 가라앉아버린 과거의 배움들도 있다.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은 언제나 내게는 매우 쉬운 질문이라 생각되었으나, 그 대답의 실천이 온전한지에 대해선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일 수가 없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이루고 싶은 꿈이 무엇인지와 같은 것들.


여러 의미가 중첩된 제목인 

'축구와 함께하는 삶'


그 삶을 살아가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러한 자세를 유지하고 싶은 사람이기에

지난 약 2년의 기록과 스스로의 다짐을 모아 엮었다.


이 글은 시작이다. 

시작에 앞서 외치는 마지막 다짐이다. 

언젠가 다시 돌아볼, 미약함이다.


앞으로 축구와 연결된 행보를 계속 기록하며, 미친 걸음을 이어나갈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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