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축꾼

총장배의 계절이 밝았다

by 고공비행


그래, 축구는 폭력이고 들이받으면서 승리를 거둬야 할 때가 온다. 그런 적극성이 결여된 상태로 승리를 외치는 것은 루저들의 헛된 망상이다. (2024.11.07)


독수리의 상징을 내세운 배움의 장. 기묘한 역학 관계를 맺고 있는 팀들의 틈. 망설임과 설렘. 질투와 손가락질. 성장과 도약. 싸움과 경쟁. 고통에 몸부림치는 고독한 이들의 투쟁. 즐거움을 향유하며 삶을 아름답게 포장해 나가는 젊음.


거쳐간 자들이 있고, 남아있는 자들이 있다.


때로는 뭉치고, 때로는 흩어지며, 이들은 그 관계를 강화한다.





긴 시간이 흘렀다.


가장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2024년 중 가장 고통스러웠던 11월의 마지막 날. 수십 명의 남자들이 한 곳에 모였다. 이들은 모두 남아있는 자들이다. 상민을 비롯하여 거쳐간 자들은 함께하지 못했다. 자격지심, 질투, 명분, 소속 등 다양한 원인을 라벨링 하여. 거쳐간 줄 알았으나 사실은 애증의 끈이 묶여있던 나는 다시 발을 들였다. 그렇게 모두가 모였다.


강서구청에서 이뤄진 술자리. 유민이 건넨 단어의 모음. 상민에게 던진 푸념. 지난해의 후반부에 가졌던 다양한 자리에서 끊임없이 이뤄진 논쟁과 화합의 시간을 안고 운동장에 섰다. 시작은 언제나 그렇듯, 짧게는 수 달부터 길게는 수년간 미처 만나지 못한 이들 사이의 안부인사였다. 공손히 손을 모으고 서 있는 새로운 멤버들과 졸업과 취업을 논하는 꽤나 늙은 20대(유머로 간주하자), 육아의 기쁨과 어려움을 토로하는 사람까지. 어느덧 10주년이 되었다.



승리의 여신을 뜻하는 아메리카 브랜드의 로고를 중앙에 둔 채로, 40인을 넘는 남자들이 각자의 소개를 시작했다. 출신들이 꽤나 다양해졌다. 하얗고 따스하여 청춘의 향을 물씬 풍기는 듯한 백양로를, 매일 걸어 다닐 게 분명한 경영학도와 공학도들을 제외하고는 얼추 다 모였다. 내 최고의 벗들과 '필트오버'로 이름 붙인 그 거리는 아무나 걷지 못하기에. 외부인 중 내부인의 모임이라 칭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살살 해라"는 말을 들었다. 여느 행사와 마찬가지로 모두가 즐기고, 인사를 나누며 웃음을 입에 그렸다. 장난을 받던 나는 기묘한 변화를 느꼈는데, 그것은 거쳐간 자와 남아있는 자의 경계에 서 있는 모호한 정체성 때문임이 자명하다.





겨울이 찾아왔다.


이번 겨울은 참으로 추웠고, 눈이 꽤나 많이 내렸으며, 많은 축구화를 잃었다. 상암을 찾는 빈도를 늘렸으며, 용산을 주둔지로 삼은 새로운 풋살 팀에 합류하기도 했다. 이 시기에는, 축구와 거리를 조금 두었다. 여전히 공과 함께 하는 삶은 이어가고 있었지만 축구를 통한 경기, 경쟁에 치를 떨었거나, 지난 11월의 상처가 아직 여물진 않았던 것 같다.


언제나 취기에 쌓여 숨을 쉬곤 했다. 많은 돈을 벌고 쓰며, 20대 후반의 시작을 방탕함으로 장식했다.




지난 11월은, 나에게만 상처로 다가온 것이 아니었다. 같은 이름을 지닌 두 명의 동생과, 내 스트라이커와 함께 넷이서 자리를 가졌다. 시작은커녕 참가 신청조차 꽤나 남은 시기였으나, 결국 '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였다.


'나는 축구를 안 한지 꽤 되었는데'


그럼에도 사람 마음이 얼마나 간사한지, 단순한 결심은 몇 달이 채 지나지 않았음에도 빠르게 부서지고, 결국 마음 깊숙이 자리한 본능만이 발동되는 것이 전부다.


누구는 떠났고, 누구는 남았고, 누구는 돌아왔다.


알 놈은 알 만한 총장배의 계절은 결국 신촌에 뿌리를 내린 독수리 사내들의 마음을 흔들 수밖에 없지 아니한가? (2024.11.26)





상민도, 유민도, 혹은 내 최측근 철학도 모두도 마찬가지다. 결국 이 세계에서 나만이 이해할 수 있는, 나와 축구의 관계는 결국 끝맺음을 내가 정의해야 하며, 그 선택의 주체는 오로지 나다.


다시 처음의 문제로 돌아오자.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이 문제의 답을 YES로 정했다면, 다음으로는 '어느 곳'인지의 문제가 이어진다. '한다'는 행위는 결국 그 목적이나 최종적인 GOAL이 있을 것이며, 그곳으로 나아가기 위한 길을 선택해야 한다.


우린 결국 내년의 계절을 맞이할 테고, 또 어느 필드로 나아갈지 선택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2024.12.04)


언제나 우승을 노리는, 내 팀.

오랜 시간의 전술 훈련 성과와 타고난 야수의 본성을 지닌 내 팀.

수년을 함께 하며 울고 웃고 축구를 사랑했던, 늙은이들의 라스트 댄스를 위한 팀.


평생 잊지 못할 상처를 내게 준, 내 시작의 팀.(이자 어쩌면 새드 엔딩으로 끝날 내 팀)




나는 안주하거나, 잔잔한 호수의 삶을 살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다. 나라는 한 남자의 삶이 어떠한 엔딩으로 마무리가 될 것인지에 대해선, 미리 낙관할 수 없다. 새드 엔딩이거나, 최악의 결말을 맞이할 수도 있을 것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그 과정에서 뜨거운 불의 형태를 드러낼 수 있는 삶을 살 때, 나는 비로소 불의 삶 그 자체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게 가르침을 준 무수한 스승들의 철학과 삶의 형태를 본받고, 이 세상 모든 내 형제들에게, 너무나도 뜨겁게 타올랐던 내 삶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다. 내 철학을 세상에 드러내겠다는 목표를 지닌 채, 미친 발걸음을 남기고자 한다. 나는 내 모든 것에 불을 질러, 그 열기를 내뿜고자 한다.





그렇게 2025년 3월이 되었다.


돌아왔다. 돌아오라고 형제들이 요구를 했다. 수십 명의 동생들이 합류를 했다.


나는 다시 중심에 서서, 내 팀을 이끌게 되었으며, 진정으로 '내' 팀을 만들고 싶단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여전히 미친 발걸음을 지닌 채, 그 어떤 목표로 가기 위한, '나아가기 위한 길'을 정했다. 이 집단을 오랜 시간 이끌던 18들은, 독수리상을 등 진 채로 모두 떠났다. 이젠 정말 혼자가 되었고, 모두가 나를 바라보는 듯하다.


여전히 뜨겁게 타오르는 마음속에서는, 내 모든 뇌와 근육과 세포 하나하나를 태워, 그 흔적을 땅에 새기려는 의지가 자리하고 있다. 여전히 '승리'의 조각을 간직하고 있으며, 그 실천의 수단으로써 내 두 다리는 튼튼하게 땅 위에 서 있다.


뜨거움의 발현 방식에 따른 최종적 목표, 그 어떤 목표에서는 시간에 따른 필연적 변화가 있다.


나는 결과에만 목을 매는 남자가 되고 싶은 게 아니다. 오직 승리만을 갈구할지라도, 그 기저에 깔린 태도나 본성은 엄연히 차이를 지닌다. 마키아밸리적 리더의 삶은 타오름과의 거리를 쉽게 좁힐 수 없다. 이제 나는 '내' 팀을 완성하여, '나'를 배제해도 좋으니, 나의 여집합으로서의 그 모든 수십 명의 이들에게 뜨거움을 전도할 것이다. 그것이 내가 살아왔고, 앞으로 살아갈 방식이라 굳게 믿는다. 나는 나를 믿는 무수한 동생들에게, 내 에너지와 철학을 전달하고, 스피릿의 존재를 몸소 보여줄 것이다. 이 팀에서 과거 무수하게 거쳐간 이들이 만들고 쌓아온 서사를 보여줄 것이다. 단순한 한 경기의 승패나 대회의 최종적인 우수한 성적도 만들지 못하는 단 하나의 진리는, 수년이 지나도 우리의 기억에 남는 것은 땀에서 비롯된 미치도록 뜨거운 순간들이다. 그 타오름은, 명확히 인지하지 못한 이들에게도 무언의 메시지를 전달하곤 한다.



처음 트리고리아에 도착한 무리뉴는, 공감의 중요성을 강조함과 동시에 승리에 대한 의지가 자신의 본성과 역사에 놓인다고 말했다. 본성과 역사. 애초에 타고난 기질이 다른 우리였다. 저마다의 역사를 쌓아 20대의 나이로 형성한 '팀'이었기에, 아마추어리즘이 중심이기에, 완벽할 수 없었다. (2025.01.07)


이제 승패라는 결과의 껍데기는 과거처럼 중요하지 않다. 승리에 대한 의지만이 남아 있다.




패기 넘치고, 뛰어난 실력으로, 기량을 마음껏 펼치며 상대를 압도하던 에이스이자, 신입 막내였던 나는

수십 동생들의 최전방에 서서 목소리를 높이는, 최후의 18이자 큰 형님이자 주장이 되었다.


앞서 언급한 무수한 '내' 팀들 중에서. 성적을, 체계적 플레이를, 나와 친구들의 (현재적) 낭만을 얻고 즐기는 것도 물론 행복하며, 꽤나 많은 기억을 쌓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라는 한 남자의 인생에서, 20대라는 한 챕터만을 눈여겨보았을 때, 시작과 끝이 다시 한번 같은 이야기였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강하다. 그 과정과 스토리와 별개로, 그러한 구조를 먼저 갖추고 시작한다. 나아가 뜨겁게 타오르는 마음을 기반으로, 미친 발걸음을 보이며, 그 불씨를 뒤의 애들에게 전달했을 때, 진정한 라스트 댄스라 스스로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최악의 결과를 상정해도, 나는 암흑기의 '주장'이 되는 것뿐이다. 허나 암흑기란 필연적으로 전성기로 가기 위한 단계다. 나는 그 단계의 주장으로서, 언젠가 찾아올, 미래의 전성기를 위해, 타오르는 마음을 모두에게 전달할 것이다. 불태우고 또 불태워서.


오랜 시간, 많이 배웠고 성장을 함으로써 이제 나는 내 길에 변화를 줄 수도 있는 사람이 되었다. 이제는, 다소 '개인'적인 목표나 비전을 품고 팀원들에게 전달하는 리더가 아니라, 그들을 위하고 그들의 땀을 바라보는 리더가 될 준비를 마쳤다. 나는 모두의 마음을 이해하고자 노력한다. 불을 지를 준비가 되었다. 제대로 포장지를 가려내지 못한 채, 껍데기에 휩싸여 위대함을 함부로 입에 올리는 이들의 훼손을 회피하며, 영웅이 되고 싶다.


"자고로 영웅이란 그 행동이 당대 사람들의 찬사를 받고 후세의 귀감이 되는 사람을 일컫는 것입니다."

* 김용 <사조영웅전>, 곽정이 테무친과 대화를 하며.


이것은 20대의 나 스스로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이자, 내가 이 팀 그리고 과거와 현재 미래 모두를 합쳐 팀에 발을 들일 모든 사람들에게 주는 선물이다.


총장배의 계절이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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