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문제가 있어도 그럭저럭 살아지면
그대로 두어라! (이호선)
본인에게 어떤 문제가 있더라도 그럭저럭 살아지면 그대로 살아도 괜찮다.
또는 상대에게 어떤 문제점이 있어도 그럭저럭 봐줄만하면 그대로 살아도 괜찮다는 말로 이해된다.
미장이가 삐죽 튀어나온 벽돌을 깨부수려고 했다. 이미 완성한 벽에 삐죽 튀어나온 벽돌 한 장은 미장이의 신경을 거슬렸다.
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그 벽돌을 향했다.
튀어나온 벽돌 한 장은 지나가던 모든 발걸음을 머물게 했다.
사람들은 튀어나온 벽돌 한 장 때문에 그 벽을 기억했다. 그 벽은 평범한 벽이 아니라 특별한 벽이 되었다.
누군가의 눈에는 신경을 거슬리는 튀어나온 벽돌이지만
그 벽돌은 그 벽의 정체성일 수도 있다.
부부가 원수처럼 싸우는 원인은 대부분 '정체성'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남이었던 사람들이 만나 '님'이 되어, 긴 시간 함께 살다 보면 '도로 남'이 되고픈 순간이 온다.
사랑했던 그 사람이 변했을까.
대부분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설령 변했다면 그것은 억눌려 있던 본래의 성향대로 돌아갔을 것이다.
성향은 한 인간의 몸과 마음이 가장 편안한 상태인 방향이다.
집에 오면 누워있는 자세, 집밥을 먹는 태도,
혼자 걷는 길에서의 발걸음은 가장 편안한 상태를 추구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심장이 뛸 때는 불편한 옷을 차려입고 만나도 그 불편함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서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사랑' 앞에서 자신의 성향마저도 포기했지만 오래가지는 못한다. 누구나.
심장이 계속 불규칙하게 뛴다면 심장 과부하 상태가 될 것이고,
불편한 옷을 계속 입는다면 머지않아 소화불량의 속쓰림이 시작될 것이다.
그래서 안정을 찾으려고 부부가 된다.
자신의 성향대로 살 때 가장 안정감을 느낀다.
성향은 개성이고 취향으로 나타난다.
개성과 취향이 독특하면 '튀어나온 벽돌'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개성은 한 사람의 정체성이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극명하게 달라진다.
특별함이냐, 찍어내야 할 벽돌이냐.
자칫하면 튀어나온 벽돌 한 장 다듬으려다 벽 전체를 무너뜨리는
위태로운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튀어나온 부분을 자꾸 들추지 않고 살아온 시간들이 쌓였다면
그냥저냥 살아볼 만하지 않을까.
튀어나온 벽돌이 눈에 거슬려서 그 부분을 찍어내려고 애쓴 시간만큼
미움으로 쌓인다.
거슬리는 것과 미움은 전적으로 다르다.
부부는 타인에게 적용하지 않는 감정을 서로에게 적용한다.
객관적으로 전혀 상관없는 감정들이 적용되어 애증을 넘어 미움만 남는다.
그래서 음식을 씹는 소리, 양치하며 쾍쾍대는 소리, 코 고는 소리 등의
상대방의 무심한 성향이나 습관을 미워하기에 이른다.
튀어나온 벽돌인지, 합당한 미움인지 무심하게 생각해 볼 시간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