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로 살아남기 1] 주식과 남편

주식을 팔 때와 살 때를 판단하는 안목은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의 태도와 직결된다.

주식을 잘하는 안목이 세상을 살아온 경험치의 반영이라고 한다.

주식 시장은 사람들의 심리적 움직임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식을 팔 것인가, 살 것인가를 결정하는 타이밍은

본인이 살아온 경험치의 결과라고 한다.

이러한 주식에 대한 식견은 주식을 안정적으로 움직일 줄 아는 동창의 의견이다.

세상을 살며 경험했던 사회의 변화, 인간의 다양성, 경제적 상황 등을 고려하여

주식의 매도와 매수를 결정하는 타이밍에 의해서 흥망이 갈린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주식의 매도와 매수를 결정하는 타이밍은 삶의 반영이다?

수없이 많은 결정들이 각자의 삶을 이루듯이 주식도 그렇다고 한다.

동창에게 주식에 대한 의견을 들으며

뜬금없이 남편을 떠올렸다.

남편과 수없이 많은 갈림길에서 서성거린 적이 많았다.

작은 갈등은 동네 한 바퀴를 산책하고 집으로 발길을 돌리고,

좀 큰 갈등은 기차를 타고 휑하니 경남을 일주하고 집으로 돌아오고,

두 번은 법원에 이혼신청서를 접수하기도 했었다.

주식을 잘 모르지만 이혼과 부부 유지를 결정하는 고민은 어려웠다.

왜냐하면 주식을 매도(매수)하는 타이밍처럼 내가 살아온 전반적인 삶이

동원되는 판단력이 절실히 필요했기 때문이다.

한 번은 이혼숙려기간에 딱 걸렸다. 이 기간은 심사숙고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인 줄 알았는데

묘한 타이밍으로 남겨졌다.

숙려기간은 이혼의 타이밍을 놓치게 했는지, 부부로 살게 한 기회의 시간이었는지 아직도 알 수가 없다.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아마 10년이 지나면 인생의 굵직한 의미로 부각된다는 사실만 확실하다.

숙려기간에는 국가가 개입하여 현명한 판단을 유도했다.

가정법원에서 제공하는 영상 강의를 듣고, 부부 상담을 했었다.

법원에서 상담을 하고 나와서 남편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3개월 이혼 숙려기간 내내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카페에서, 공원에서, 거실에서, 사무실에서 치열하게 대화를 하는 시간이었다.

늘 대화를 하자고 카페나 음식점에서 결정적인 말을 하는 순간,

먼저 일어났던 남편이 3개월 동안 대화에 제법 집중력 있게 참여했다.

3개월의 대화를 하며 충분히 부부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하지만 어느 순간 우리는 각자의 정체성대로 생활하고 있었다.

남편은 남편대로 나는 나대로 억압된 '또 하나의 나'가 다시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칼융의 분석심리학에서 말하는 자아에 의해 억압된 '그림자'가 행동하기 시작했다.

사회에서 억압된 개인무의식의 '그림자'의 활약이 점차 다시 입체화되기 시작했다.

자기 자신도 모르는 그림자이지만 '원형' 패턴은 분명히 존재했다.

남편의 담 밖에서 명예롭고 복작지근하게 살고 싶은 그림자,

나의 담 안에서 보호받으며 소담스럽게 살고 싶은 그림자.

역시나 몇 가지 일로 큰 충돌을 피할 수 없었다.

크게 충돌했던 내용은 다른 제목에서 다룬 내용들이라 생략하겠다.

드디어 두 번째 이혼을 접수하게 되었다.

이혼 사유는 단순하고도 거대했다.

나의 시선으로 봤을 때 남편은 명예롭고 복작지근한 삶을 추구했다.

작은 주말 농장에서 잠시 쉬며 푸성귀들을 가꾸기로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곳은 남편의 사회적 네트워크가 형성되었다.

20년째 이어지는 종친회의 간부로 거들먹거리는 행보를 보는 것만으로 지겨웠다.

이미 한 번의 이혼 타이밍을 놓쳤기 때문에 남편의 그림자에 더 이상 개입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주말 농장에서 선택적 고립의 장소로 삼고 싶었지만 더 이상 그럴 수 없게 되었다.

어느 때든 사람이 드나들어 집보다 더 번잡스러웠다. 그곳은 사회생활보다 더 번잡스럽게 변해갔다.

농장으로 향하는 나의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줄어들었고 남편의 발걸음은 더 빨라졌다.

점차 남편의 일 주일은 농장 3일, 종친회 2일로 정해졌다.

남편이 빠진 공간을 내가 조용히 채우고 있다는 사실을 서로 까마득히 잊은 채

농장 3일, 종친회 2일의 생활이 당연시되었다.

가정에도 앞으로 치러야 할 큰일들을 계획해야 하는데

남편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농장에서 생산되는 사소한 농작물들을 나 몰래 거래하며

그 작은 돈들을 모아서 종친회 이사회비로 내고 있었다.

다툼을 피하려고 내가 방심했던 시간만큼 남편은 달라졌다.

나와 너무도 다른 형태의 이질감은 극도의 화를 불러일으켰다.

차마 글로도 표현할 수 없는 치졸한 일들이 눈 앞에서 반복되자 치열한 전투가 시작되었다.

그 과정에서 경찰과 병원을 오가는 일까지 발생했다.

나는 다시 한번 대화의 시간을 벌기 위해 이혼 접수를 강행했다.

협의 이혼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이혼 접수 후, 협의이혼 의사 확인으로 '협의이혼 의사 확인서'가

발급되었다. 이 확인서를 3개월 이내에 관할 구청에 신고하면 이혼이 확정되는 절차였다.

협의 이혼을 접수하고 상담을 하며 상담 도중에 너덜너덜한 남편의 진심이 또 보였다.

상담에 참여한 두 분의 상담사는 남편과 나의 입장을 잘 정리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6시간 동안 상담이 진행되었다.

나는 그 상담이 진행되는 동안 2번째 이혼의 타이밍도 놓치고 있음을 직감했다.

내가 30년간 결혼 생활을 유지하면서 선택하고 결정했던

세상의 변화, 인간의 다양성, 경제적 상황들이 2번째 이혼을 보류하는 결정을 하게 했다.

결혼하기 전, 나의 출생부터 2번째 이혼을 보류하는 이유를 이루었다.

이혼 보류의 결정에는 보이지 않는 변수보다 이미 확실하게 알고 있는 상황들이 주식의 전망보다 뚜렷했다.

내가 두 번째 이혼을 보류할 때 우연히 주식 계좌를 개설했었다.

공부 삼아 주식 몇 개를 매수, 매도를 직접 해 봤다.

주식을 잘 모르지만, 이혼을 두 번씩 결정하는 일보다 주식이 쉬울 것으로 전망된다.

나희덕 시인의 시 구절처럼 부부로 살아가는 일은 두레박질의 연속이다.

"사랑에서 치욕으로, 다시 치욕에서 사랑으로, 그러나 매양 퍼올리는 것은 수만 갈래의 변수를 퍼올릴 뿐이다."

푸른 밤(나희덕)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


까마득한 밤길을 혼자 걸어갈 때에도

내 응시에 날아간 별은

네 머리 위에서 반짝였을 것이고

내 한숨과 입김에 꽃들은

네게로 몸을 기울여 흔들렸을 것이다


사랑에서 치욕으로,

다시 치욕에서 사랑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네게로 드리웠던 두레박


그러나 매양 퍼올린 것은

수만 갈래의 길이었을 따름이다

은하수의 한 별이 또 하나의 별을 찾아가는

그 수만의 길을 나는 걷고 있는 것이다


나의 생애는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네게로 난 단 하나의 에움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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