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어 죽어도 좋았다
아이가 자극적인 말과 행동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죽음, 욕, 자살, 쌍욕...
부모가 원인이다.
부모가 아이의 말을 잘 들어주지 않았거나
무관심으로 일관할 때, 아이는 말하고 싶은 갈증이 생긴다.
그런데 우연히 자극적인 말을 했을 때 부모가 반응하는
경험은 기억된다.
이 자극적인 기억은 자극적인 아이를 만든다.
그러한 언어 사용은 아이의 화법이 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그 화법은 한 사람의 생각의 발상으로 이어진다.
나 역시 기억 저편에 화끈한 말의 맛에 대한 자극이 남아있다.
나는 엄마와 38세의 나이 차이가 난다.
그래서 학교의 친구들은 내가 할머니와 사는 아이로 알고 있었다고 한다.
나와 엄마를 '손녀와 할머니'의 관계로 아는 아이들이 많았다.
엄마는 6남매를 건사하기에 바빴고, 게다가 과부였다.
자식들과 알콩달콩한 대화를 나눌 여유가 없었다.
어릴 적 엄마와 생존어 이외에 대화를 나눌 시간이 없었다.
엄마를 향한 나의 말은 허공으로 흩어졌다.
그러나 무슨 말이라도 엄마와 나누고 싶었다.
특히 중간치였던 나는 이래저래 엄마의 관심 밖이었다.
어느 초가을에 신작로에 위치한 논의 참새떼를 쫓다가
지나가는 버스 사고를 목격했다.
친구의 동생이 버스에 스치며 이마에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버스 기사는 허겁지겁 이 아이를 안고 버스 바닥에 눕히고 출발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울면서 이 사실을 엄마한테 말했다.
엄마는 나의 눈물을 닦아주며서 나의 말을 열심히 들어주었다.
나는 계속 울면서 교통사고에 대해서 말했다.
저녁 밥도 먹지 않고, 계속 울었다.
내가 울었던 이유는 친구 동생의 교통사고 때문이 아니었다.
엄마가 처음으로 나의 눈물을 닦아주며 나의 말에 경청해 주는
그 분위기에 격한 감동이 올라왔다.
그 분위기를 계속 유지하고 싶은 열망에 계속 울었다.
저녁 밥을 먹지 않자, 생애 최초의 엄마의 관심이 나에게 쏠렸다.
배는 무척 고팠지만 엄마의 사랑에 비하면 굶어죽어도 좋았다.
나는 그후, 엄마에게 말하는 방법을 확 바꾸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자극적인 일들을 수집하여 화끈한 화법으로 바꾸어
엄마에게 이야기했다.
역시나 통했다. 엄마는 그런 자극적이고 화끈한 화법에 귀를 기울였다.
소득은 이뿐만 아니었다.
친구 동생의 교통사고로 얻는 것은 한 가지 더 있다. 나의 밥은 쌀밥으로 바뀌었다.
끼니 때면 밥을 먹지 않고 깨작거리며 엄마의 관심을 끄는 방법도 터득했다.
나는 일부러 밥을 두어 숟갈만 먹고 수저를 놓았다.
가끔 더 먹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엄마의 관심이 밥보다 훨씬 좋았다.
그런 마음 때문에 어느 날부터는 진짜로 밥이 먹기 싫었다. 먹는 양이 줄었을 수도 있다.
내 얼굴에는 눈, 코, 입술만 빼고 허연 버짐이 피어올랐다.
걱정이 된 엄마는 끼니마다 나를 지켜봤고, 급기야 내 밥을 따로 펐다.
내 밥을 제일 먼저 퍼서 담기에 이르렀다.
주걱으로 보리와 쌀이 잘 섞이도록 휘젓기 전에 내 밥그릇에 쌀 부분만 골라서 담았다.
특별히 쌀밥이라도 먹이고 싶은 애타는 엄마의 마음이 느껴졌다.
얼굴에 허연 버짐을 뒤집어 쓰고, 키가 자라지 못해도 엄마의 관심이 좋았다.
나는 한동안 그렇게 억지로 엄마의 관심과 사랑을 독차지 한 적이 있었다.
나는 어쩌면 지금도 이러한 방법으로 사회적 관계와 소통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마음에 들지 않는 분위기에서 식사를 하지 않는 습성도 엄마와 소통했던
기억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자극적인 말, 허언증이 있는 아이들은 분명 부모의 사랑이 결핍되었다.
이유없는 불평, 불만의 표현도 모두 이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