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시집 '바람의 언덕'
고향
권태주
고향을 떠나온 지 40년 세월
옛집은 허물어져 빈 바람만 드나들어
함께 웃고 울던 가족들 뿔뿔이 흩어지고
옛사람들 북망산으로 떠났구나
앞마당 하얀 민들레는 세월 따라 피고 지며
하얀 그리움들만 파도 위에 날려 보내는데
부초처럼 떠다니다 돌아온 나그네야
고향을 떠나지 말고 댓잎 소리 베개 삼아
세월이나 낚아보시게.
모감주나무꽃
권태주
그리움 올올이 엮어두면 보고픈 그님 오시려나
아무도 찾지 않는 바닷가 언덕이나 산기슭에서
노랗게 피어 사랑하는 임 기다리다 제풀에 지쳐
단단한 사리 만들어보는 유월의 새색시
꽃 진 자리에 꽃이 핀다
권태주
꽃 진 자리에 꽃이 다시 피듯
악의 꽃*은 역시 악으로 필 것이고
가브리엘의 꽃은 천사의 꽃으로
천 번 만 번 다시 필 것이다
*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보며
봄에 피는 꽃
권태주
빨간 철쭉꽃을 보면
풋풋한 처녀의 붉은 입술이 생각나고
화사하게 피어난 복사꽃을 보면
어머니 입으셨던 연분홍 치마가 생각나네
봄꽃들은 저마다의 색깔과 향기를 뽐내며 피어나
벌 나비를 유혹하는데
그렇게 봄날은 가네
떨어진 꽃잎은 하염없이
시냇물 위에 떠서 흘러가네
사랑하는 이여
우리도 저 꽃들처럼 곱게 곱게 늙어가세
잊고 산 것들
권태주
앞산에 진달래 붉게 피어
그리움 전하는 것을 잊고 살았네
너와 나 함께 어울려 봄나들이 가서
숨바꼭질하고 보물찾기하던 즐거움도 잊고 살았네
거리는 조용해지고 하얗고 검은 마스크의 사람들만
표정 없이 총총걸음으로 사라져가는 저녁
잊고 살았네
남쪽 바다 사연 담은 동화작가의 이야기까지
봄을 수놓았던 꽃들도 지고
초록의 잎들 온산 가득 채워가고 있음에
문득 잊지 말고 살아야 하기에
오늘은 남녘 친구에게 손편지 한 장 써서 보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