ㅈ차 례
Ⅰ부 그냥 꽃
꽃마리
그냥 꽃
우리나라 꽃
비 오는 날에
어떤 시인
새들의 집
벌써 여름인가요
개구리 반상회
질경이
밀밭 사이로
조물주 마음
반만년 역사 위에
지렁이
그리운 고향
궤짝 카페
꽃이 지다
꽃마리
봄이다 봄
네게도 찾아온 봄
낮은 풀밭에서 기지개를 켜며
봄을 맞이하는
작고 예쁜 꽃
스쳐 가는 바람에도 흔들리지만
나 여기 있어요
꽃이라고 불러주세요
내 이름은 꽃마리예요
그냥 꽃
설명하지 않아도
꽃은 꽃이다
배꽃
복숭아꽃
앵두꽃
내 밭에서 피는 나의 꽃들
우리나라 꽃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우리나라 산과 들판 풀밭에는
제각각 피어나는 꽃들
누가 가꾸지 않아도 어김없이
피어나는 꽃들
색깔도 다양하게
모양도 다양하게 피어서
반겨주는 모습 또한 환하다
어디서 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은 우리나라 땅에 피어서
계절을 알리고 자신의 존재를 알리며
파고 지는 지고 피는
꽃들 다정하여라
비 오는 날에
비가 온다
비가 온다
꽃들은 바람에 흩날리고
내 마음도 바람 따라 날아간다
그대는 지금
안녕한가
바람 따라 흘러간
지난날의 사랑
꽃들의 이야기도
잎들의 소란스러움도
바람이 남긴
사랑의 흔적들은 지금
비가 되어
어디에서 떠돌고 있는가
어떤 시인
가을이면
우리나라 산과 들을 다니며
꽃씨를 모으는 시인이 있었지
예쁜 꽃씨만 모으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작은 들꽃씨마다 모아
봉지에 이름을 적어
겨울이 올 때까지 보관했지
겨울이 오면 배낭을 싸고
북반구든 남반구든 아무 나라에 가서
트래킹을 하며 길가에
노란 꽃봉투를 꺼내어
꽃씨를 뿌렸다네
누가 알았을까
그 꽃씨들이 봄이면 싹을 틔워
낯선 나라 낯선 땅 길가에서 초원에서
솟아올라 꽃을 피우는지
시인은 밤마다 꿈을 꾸며
이국땅 초원에서 노랗고 하얗게 만발한
구절초 세상을 보았겠지
꿈속의 나라에
우리 꽃들이 꽃밭을 이룬 들판을 거닐었겠지
하지만 그 틈사이 몰래 솟아나
하얗게 핀
개망초꽃도 바람에 흔들리고 있겠지
새들의 집
새집을 달아주었습니다
아침마다 짹짹대며 숲속에서 울어대는
새들에게 편안히 쉴 수 있는
안식처를 주고 싶었습니다
새들이 쉬어가고
아이들이 그 아래에서 뛰놀고
평화로운 숲속 풍경을 만들어주고 싶었습니다
오늘 밤도 편안한 밤이 오겠지요
새들의 밤
새들의 집
새집
벌써 여름인가요
봄인 줄 알았는데 벌써
아까시꽃이 피고
여름이 오나 봐요
이제는 황사 먼지도 사라지고
자동차 보넷을 덮었던 송홧가루도
빗물에 쓸려가니
벌써 여름인가 봐요
개구리 반상회
여름이 왔나 보다
정자에 앉아 듣는 개구리 소리
왁자지껄 함께 소리 내는 개구리들
가끔 두꺼비 소리도 있는지
목소리가 개굴 지다
요란하게 떠들어대며 짝을 찾는지
점점 커지는 개구리 반상회
밤늦도록 멈추지 않고
공원 물속에서 회의 중인
개구리네 반상회
질경이
왜 네 이름이 질경이인지
이름만 불러봐도 알겠다
질기고도 질긴 삶
그러나 아주 당당하게 살아왔다
사람들의 발길이 닿는 곳이나
콘크리트 도로 빈틈에도 솟아나 자라고 있다
잎은 낮게 바닥에 있으나
꽃대는 꼿꼿하게 서 있다
우리 아이들이 무심히 밟고 지나가는 들길에도
무수히 솟아 나와
때를 기다리고 있다
지금은 씀바귀도 민들레도 질경이의 영토에 밀려나 있다
토끼풀만이 너의 적이다
밀밭 사이로
밀밭에 가면
한겨울을 이겨낸 초록의 밀들이
짱짱하게 일어서려고 한다
봄이 지나갈 무렵
중앙아시아 초원을 지나온 바람이
밀밭 사이로 지나가면
어느새 이삭은 누렇게 변하고
모압에서 온 나오미의 며느리 룻*의
보리밭이 떠오른다
보아스를 향한 룻의 사랑
정결한 여인이었기에 보리밭의 주인 보아스는
이삭을 줍는 룻을 언제나 지켜보았으리
먼 옛날
단군과 동족들이 우랄산맥을 넘어
초원지대를 지나 만주벌판까지 지나올 때
함께 했을 우리 밀
오늘은 이 땅의 들판에서
수확을 기다리며 익어가고 있다
*룻-구약성경 룻기에 나오는 여인. 보아스와 재혼하여 훗날 다윗과 예수님의 조상이 된다.
조물주 마음
비행기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희뿌연 구름을 헤치고 솟아오르자 펼쳐지는
망망한 남극대륙 눈의 바다
조물주가 빚어낸 세상이 하늘 위에 펼쳐져 있다
저 구름의 향연 밑엔
내가 살아오던 땅과 바다가 있을 테고
그곳에 사람들은 오늘도 하루를 시작하겠지
비행기가 점점 고도를 높여간다
점점 드러나는 지구의 푸른 하늘
어느새 구름은 저 아래에서 흩어져 흘러간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선과 악을 이야기하고
사랑과 우정을 노래했다
그리운 것들은 하늘 아래 살아가고 있으니
지금은 조물주의 마음으로
펼쳐진 풍경을 본다
흑암을 뚫고 자연의 빛으로
세상을 창조한 날
이 우주의 빛이 별과 생명을 만들고 마침내
최초의 인간 아담에게 생기를 넣었다
지구의 역사가 수천 년에서 수십억 년이라고 추측하지만
매일 같이 변하는 하늘의 일상
창조와 변화는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다
비행기는 다시 목적지를 향해 800km의 속도로 전진한다
다시 나타나는 하늘 위의 설원
그 신비로운 풍경을 바라보며
조물주의 마음을 가져본다
공주고 55기 회갑기념 축시祝詩
반만년 역사 위에
공주에서 아니 충청도에서
대한민국에서 몰려온 인재들이
쌍수雙樹* 곧게 뻗은
공산성 바라보며 꿈을 키운
3년의 세월
봉황*의 기운을 가슴에 품고
학업에 정진하던 날들
너와 나 인고의 세월 참아내며
친구가 되었다
우리는 자랑스러운 55기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여
멋진 은행나무*로 자라났다
귀한 열매 맺어 많은 이들에게 베푸는
우리는 55기의 동기들
인생 고개 60 고개를 넘어
유월의 빨간 장미* 핀 오늘
회갑의 자리에 함께하니
그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친구여
이제 남은 세월 건강하게 전진하여
70, 80, 90의 고개까지 손잡고 넘어가세
사랑하는 나의 동기들이여!
사랑하는 우리 친구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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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수-공주고의 상징 나무
*봉황-공주고 교조
*은행나무-공주고 교목
*장미-공주고 교화
지렁이
지렁이 한 마리가
공원 길 콘크리트 위를 기어간다
본래 너의 집은 어디였느냐
땅속에 터를 잡고 살다가
어느 날 뜨거운 태양 아래 지열로
지렁이의 집은 더워지고
서늘한 곳을 찾아 떠나왔지만
세상 밖은 더 뜨거운 열사의 나라
그래도 사력을 다해 기어가려고 꿈틀대보지만
지렁이를 향해 달려드는 개미 떼들
개미들에게 지렁이는 일용할 양식이 되었구나
뜨거워도 살던 집이 더 나았던 것을
그리운 고향
고향이 어드메뇨?
내 고향은 서해 노을지는 곳
봄이면 종달새 날며 삐비꽃 피는 들판을 달리고
여름이면 소낙비 지나가는 논길
미꾸라지 통발에 걸려 꾸물대던 수로
가을에는 뒷산 후드득 밤알 떨어지면 몰려가
수풀에 숨은 밤 찾던 어린 시절이 있고
겨울에는 쇠죽 끓이는 아궁이 속 고구마 구워
동치미에 얼음 띄워 먹던 밤이 있는
그곳이 내 고향이라오
내 유년의 고향이라오
궤짝 카페
장호원에 가면 복숭아밭이 있고
복숭아밭 사이로 보이는 카페가 있다네
어릴적 할머니 방에 반들반들하게 놓인 궤짝
할머니의 인생사가 그곳에 들어있어
더욱 소중하게 다루시던 궤짝
논길을 건너 숲길을 지나 복숭아밭 속에
화가 한사람 터를 잡고 농사지으며 만들었다네
궤짝 안에는 무엇이 있나?
화가의 삶이 녹아있고
가족의 행복이 있고
따뜻한 커피 향과 복숭아스무디가 있다네
오늘도 땀 흘리며 복숭아를 따고
밤이면 멋진 그림을 그려낸다네
궤짝은 낡고 녹슬어 가지만
화가의 정신만은 더욱 또렷해져
장호원 밤하늘에 빛나고 있다네
반딧불이처럼 반짝이고 있다네
꽃이 지다
학교에서 자신의 목숨을 던진
한 여교사의 죽음의 항변이
긴 장마의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교사가 을이고
학부모가갑이 된 교육계
청운의 꿈을 안고 출발한 교직의 길이
불면과 불안으로 점철된 나날이 될 줄을
새내기 교사가 상상이나 했던가
학교 폭력과 그에 따른 학부모의 집요한 협박이 난무하는
교육계의 현실 앞에 교사들의 좌절은 깊어만 갔다
해맑기만 한 아이들의 눈빛이라고
사랑을 주려고 했던 새내기 교사의 열정도
사소한 아이들의 다툼에 관련된 학부모의 갑질에
몸은 야위고 정신은 황폐해져 삶의 의지가 꺾였다
편히 가시라
남은 날들은 살아있는 자들의 몫이니
영면하시라
그대가 펼치지 못한 사도의 길을
사랑과 존중 평화와 회복의 세상으로 바꾸리니
진실은 그대의 죽음을 외면하지 않으리니
변화의 거대한 물결이 지금 이 땅에 요동치고 있으니
안식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