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주 5시집
장승포에 닻을 내리다
산딸나무 아래에서
순천역
민들레 홀씨
잠 못 드는 밤에
문득
고구마 혹은 온기
파도
호박꽃
옥수수
기다림
고마운 비
고향
비 오는 풍경·2
커피 내리는 남자
강남 건강검진센터
결혼
꽃 진 자리에 꽃이 핀다
잊고 산 것들
바이러스 & 코로나19/우한
출근길
개심사
여름날
섬
물왕리에 가면
장마, 그리고 빗길
바람의 언덕
바람의 언덕·2
꽃 진 자리에 꽃이 다시 피듯
악의 꽃은 역시 악으로 필 것이고
가브리엘의 꽃은 천사의 꽃으로
천 번 만 번 다시 필 것이다
*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보며
앞산에 진달래 붉게 피어
그리움 전하는 것을 잊고 살았네
너와 나 함께 어울려 봄나들이 가서
숨바꼭질하고 보물찾기하던 즐거움도 잊고 살았네
거리는 조용해지고 하얗고 검은 마스크의 사람들만
표정 없이 총총걸음으로 사라져가는 저녁
잊고 살았네
남쪽 바다 사연 담은 동화작가의 이야기까지
봄을 수놓았던 꽃들도 지고
초록의 잎들 온산 가득 채워가고 있음에
문득 잊지 말고 살아야 하기에
오늘은 남녘 친구에게 손편지 한 장 써서 보내리
2020년 1월 어느 날
중국 우한시장 인근 바이러스 연구소에서
은밀하게 연구되던 살상용 바이러스
우연이었을까. 실험용 박쥐들이 폐기처분이 되어 시장으로 흘러 들어가서
마침내 시작된 우한 코로나바이러스
이를 알아챈 의사는 다른 의사들에게 위험성을 공유하지만
공산체제의 당국은 공개를 용납하지 않았다
또 다른 신천지교인들
우한에 숨어들어 포교활동을 하다가
한국 청도 대남병원 장례식장에 와서 바이러스를 전염시키고
신천지 대구교회 예배당에 모인 수천 명의 신도에게 감염시켜
온 나라를 혼란에 빠뜨렸다
전 세계에 퍼져나간 코로나19 바이러스
감기처럼 은밀히 들어왔다가 폐를 망가뜨리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도살자
사람들은 격리되고 도시는 텅 비었다
누구의 책임인가. 박쥐 한 마리에서 시작된 변종 바이러스
표정 없는 사람들의 마스크 행렬
2020년 봄날은 냉정하게 지나가고 있다
새벽이면 쏟아져 나오는 차들
하루의 삶이 있고
가족들의 생계가 달려있을 출근길
조금 바쁜 차가 있으면 양보하며 달려가는 길
하늘엔 뿌연 코로나 구름
길옆 산들은 어느새 우거지는 녹음
그 숲속의 생명은 무성함에 몸을 숨기고
하루의 삶을 살아가리.
그렇게 나의 출근길은 전진하는 삶이다.
가끔 졸음이 밀려와 가드레일을 심하게 들이받은 날도 있지만
핀란드산 껌 한 통을 다 씹으며
달려가는 인생아
달리고 달리다 보면 어느덧 종착지가 있을 테고
그곳에서 너를 만나 함께 웃고 싶구나
늦은 저녁 홍벚꽃 길을 따라 찾아간 개심사
돌계단 밟으며 오르는 산길
슬그머니 계곡을 따라 내려오는 산 어스름
어느덧 숨이 가빠오고 발걸음도 더뎌질 때
인간세계 해탈코자 극락을 찾아 나선 구도자의 길이던가
눈앞에 나타난 연등 행렬
홍벚꽃 청벚꽃 어둠 속에 환해지는데
숲속에서 울어대는 산새소리
계곡의 물소리까지 가슴에 담으며
내려오는 밤길
다시 오마 다짐하며 개심사를 등졌다
바닷가 해송 그늘에 누워
먼바다로 떠나는 뱃고동 소리와
해조음海潮音을 듣고 싶네
누가 찾지 않아도 상관없네
내겐 등 기댈 수 있는 천년 소나무에
파란 바다 물결
어차피 인생은 혼자서 가는 길
욕심 없이 살라는 바람소리 새소리
망망한 천공天空 위를 떠가는 뭉게구름 보며
바닷가 언덕에 눕고 싶네
내 마음속엔 섬이 하나 있지요
파도와 싸운 인고의 세월
수많은 은빛 자갈들 빛나고 있는
당신이 찾아내지 못한 섬이 하나 있지요
물왕리에 가면
작은 호수가 있고
새벽이면 물안개 수면 위를 떠올라
호수 가득 몽환적 풍경을 만들어낸다네
물왕리에 가면
연꽃들 피어
세상사 찌든 삶을 정화해 준다네
물왕리에 가면
젊은 날의 꿈들이 어느새
황혼의 그림자 되어
붉은 노을 드리우고 있다네
물왕리에 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젊은 날의 꿈들이지만
호숫가 촘촘히 솟아나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부들처럼
치열하게 살아온 젊은 날의 흔적들을 만나볼 수 있다네
물왕리에 가면
그녀는 이별의 눈물을 쉼 없이 흘렸다
칠월 칠석날 오작교에서 만난 두 연인
헤어짐이 너무 서러워 뒤돌아서 흘리는 눈물
인간계에서는 장마다
노아의 홍수인 양 50일이 넘게 내리는 장맛비
기후의 역습 자연재해라는 용어가
방송과 지면 SNS에 흩날리고
홍수를 피해 살고자 지붕 위에 올라선 한우 사진
몇 마리의 소들은 높은 산 암자까지 올라가서 뉴스를 탄다
언제쯤 장마는 끝날까
아침 출근길 쏟아지는 폭우는
와이퍼의 왕복운동으로도 앞을 분간하지 못하게 한다
비상등을 깜박이며 앞으로 나가는 차들
세상이 온통 빗물과 구름일 뿐이다
한때는 잡목들과 동백나무 숲으로
참새들과 풀벌레들 모여들고
바람만이 몰려왔다가 안부 전하고 돌아가던 곳
이 언덕에 큰 풍차 하나 세우고
바다로 난 계단에 의미를 주니
쉼의 공간이 된 바람의 언덕
푸른 바다 바라보며 온갖 자세를 취하며
사진을 찍는 연인들
바닷가 언덕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떠나간 동생 그리워 세운 누이의 비석
강아지풀 꽂대궁도 고개 끄덕이며 바라보는 한낮
* 바람의 언덕-거제도 관광지
바람의 언덕에 서면
끝없이 밀려와 귓볼에 속삭이는 바람의 이야기
먼 태평양 섬 두 남녀의 애련한 사랑 이야기도 전해주고
오대양을 누빌 거제조선소 용접공의 슬픈 가정사도 있다
바람에 낮게 흔들리는 이름 모를 풀꽃들
풀꽃들의 작은 사연들은 바람이 담아갈까
절벽으로 달려와서 온몸 부딪치고 부서지는 포말들
억겁의 흔적들이 바위에 새겨져 있다
동백나무 숲에는 박새들의 재잘거림과
홀로 붉게 피었다가 지는 동백꽃들
섬이 싫다고 도회지로 나간 딸 기다리는
노모의 패인 주름살만 늘어가고
풍차만 홀로 그리움을 날리며 돌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