Ⅲ부 가을 연시戀詩
깃발
섬마을 이야기
한겨울 어머니의 바다
고래
밤꽃
사제상師弟像
풀꽃문학관에서
가을
가을, 우체국 풍경
가을 연시戀詩
실야라인siljaline
고구마
감나무
어머니 나라
가을, 그 긴 밤에
살다 보면
행복
혼자 가는 먼 길
노을
우크라이나. 아픈 전쟁이여
아! 쇼트트랙이여
깃발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해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청마의 고향 거제도
그의 생가 앞에서 펄럭이는 깃발
그립고 그리워서 원망하던 파도*도
변함없이 출렁이건만
이제는 낯선 방문객들만
시인으로서 한 시대에 발자취를 남기고 떠난 그
인생은 짧고 예술은 영원하다는 것을
청마문학관에서 보고 있네
* 청마 유치환의 시 ‘깃발’,‘파도’
섬마을 이야기
내가 태어날 때부터 들었던
서해 파도 소리
철썩철썩 쏴아아~
그 이후로 떠나지 않고
내 귀에 들려오던 파도 소리
먼 객지에 나가 도시의 한 허름한 여인숙에서
쪽잠을 청할 때도
휴전선 비무장지대 철조망을 순찰하던 새벽녘에도
울려 퍼지던 파도 소리
철썩 쏴아아~
외도*가 보이는 집 앞 검은여에는
전복 소라 바지락 굴 청각 미역 톳들이 자라고
만선을 알리는 뱃고동 소리
잔잔히 들려오던 섬마을
어부들의 거센 풍랑 이야기도
해녀들의 물질 사연들도
낯설지 않던
꿈에서도 그리운
내 고향 섬마을
*외도: 충남 안면도 샛별해수욕장 앞에 있는 작은 섬
한겨울 어머니의 바다
새벽이면 똑같은 시간에 들리던
부엌에서의 딸그락 소리
겨울 새벽 어린 나의 잠결에 들리던 딸그락 소리
어머니는 새벽마다 바다에 가시기 위해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누룽지를 긁어 바구니에 담으셨다
시베리아에서 불어온 동토의 찬바람은
서해 바닷가 마을에도 와서
파도마저 성에를 만들었지만
어머니는 언제나 바다로 향하셨다
썰물이 빠지면 굴밭에는 버캐*들 천지
돌틈을 뒤집으며 따낸 버캐들
어머니는 찬물에 손이 부르터가며 버캐를 담으셨다
누룽지로 허기를 채우며
가끔은 동네사람들과 이미자의 동백아가씨와 서산 갯마을을 부르며
밀물이 갯골을 타고 밀려올 때까지
저 멀리서 아들이 소달구지를 끌고 올 때까지
그것이 겨울 어머니의 삶이었고 일생이었다
푼푼이 모아 객지 나간 자식 가르쳐 보려고
한겨울에도 바다로 나가신 어머니의 꿈
개천에서 용이 나는 것뿐만 아니라
바다에서도 용오름을 기대하셨기에
나는 괜찮다 힘들지 않다 아들아 하시던 어머니
*버캐ㅡ껍질을 까지 않은 굴
고래
검은 등에 흰색 배를 드러내며
깊은 심연을 헤엄치다
무엇이 그리웠는지 물 위로 솟구쳐 올라
울음 우는 혹등고래
보라색 바다 바탕에 분홍 꽃들 속을 헤엄치며
무엇을 찾고 있는가
귀신고래여
지느러미가 아닌 날개가 있다면
바다 위를 솟구쳐 올라
하늘 바다까지 날아가련만
그래서 더욱더 슬픈 혹등고래
밤꽃
유월은 살아 숨 쉬는 신화
녹음으로 숨차 오르는 고개턱마다
하얗게 피어서 전설 모으고 있는
지천의 꽃들
메마른 하늘 위로 날아간
꽃살덩이
백여 년 깊은 침묵이
이제야 깊은 뿌리를 드리웠다
누가 황토물 흐르는 저 산언덕
팽겨진 등성이로 피 뿌리며 쓰러져 갔는가
숱하게 밟힌 군화의 발소리 따라
풀잎 쓸며 숲으로 숲으로 가버린
주검 냄새 가득한 산천
돌아보니
산에는 흰옷자락 펄럭이며 뛰어오르던
동학농민군 함성이 메아리로 남아
피어서 피어서 자유의 향내만 풍기는
그 꽃
밤나무골의 밤꽃 잔치
사제상師弟像
80년대 중반까지
20대 젊음을 묶어두었던 곳
강산은 네 번이나 변해갔는데
은행나무 아래 사도상은 변함이 없이 독서중이다
스승과 제자 사이가 다정하다
가지는 멈추지 않고 뻗어있건만
젊은 날 청춘의 시계는 되돌아오지 않는다
그리움이여
막연한 미래의 모습들만 그려가며 스쳐 갔던 세월이여
이제 나 여기 서서 지난날을 반추해보니
인생 한낮 꿈길 속 빈 걸음이었구나
채워도 채워지지 않던 갈증의 잔들이
여기저기 깨어져 뒹굴고 있구나
풀꽃문학관에서
죄송합니다.
저희 문학관 진입로 포장공사 관계로 3일간 문을 열지 않습니다.
이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2022. 11. 10. 나태주 올림
공주사대부고 옆 시인의 문학관에는
시인은 없고 공고문만 눈에 들어오더라
뒤뜰 작은 풀꽃들만 반갑다 웃으며 고개 숙이고 있더라
늦가을 느티나무 잎들만 바람에 우수수 떨어지고 있더라
자전거만 혼자 우두커니 쉬고 있더라
가을
가을이 아프게 깊어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젊은 날이 신록으로 푸르렀다가
어느 날 문득 단풍으로 물들어 가고 있는 것을 봅니다
가로수 길을 걷거나
먼 산 숲 그늘 아래 떨어지는 낙엽들의 슬픔이
아파오는 오늘
삶이 참 아름다운 가을입니다
가을, 우체국 풍경
노란 국화 화분 입구에 놓인 우체국
멀리 기숙사에 간 막내아들 가을옷을
아비의 마음까지 더해 택배 상자에 담는다
사람들은 하나둘씩 어딘가로 소식 전하고
가을 속으로 총총히 사라져가는 한낮
색색으로 물들어 가는 단풍잎들
계절은 어느덧 지난여름을 잊게 하는데
툭툭 떨어지는 낙엽을 밟으며
너에게 쓰고 싶은 편지 한 장
잘 지내지. 건강하고 행복하렴….
가을. 우체국 소식 담은 제비는
창공으로 날아간다
가을 연시戀詩
가을에는
생각들을 주워야 한다.
봄부터 쏟아놓은 수많은 말과
여름날의 한숨들
쓸데없이 길거리에 내다 버린
소심했던 생각들 모두
거두어야 한다
땀 흘리지 않은 수확이 어디 있으랴
들판의 곡식들 곳간에 쌓이기 전에
흘려버린 생각들 낟알 줍듯
주워야 한다
나뭇잎들 하나둘씩 떨어져
거리에서 힘없이 이리저리 뒹굴기 전에
허한 말들과 뜻 없이 행한 것들 모두
거두어들여야 한다
밤바람 차갑게 살갗에 스미고
쉬 어둠이 온다
어둠이 안개처럼 저녁을 메우기 전에
겨울이 소리 없이 유리창에
성에꽃 피우기 전에
실야라인siljaline*
바람 불고 하늘 청명한 가을날
문득 핀란드 어느 항구에 들러
크루즈 여객선을 타고 싶네
올림피아 터미널을 떠난 커다란 여객선은
물살을 헤치며 앞으로 나아가리
20층 아파트 높이의 선상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상어 물고기 같은 핀란드의 경비정이
실야라인을 뒤따르겠지
육중한 선체는 넉넉히 받쳐주는 바다의 부력으로
스웨덴 스톡홀름 항구를 향해
전진해 나아가리
바닷길 옆 작은 섬마다 하얀 펜션들
저마다의 사연을 남기며 사람들이 살아가리.
그리움이란 것은 하얀 포말처럼
솟아올랐다가 부서져 가는 것
낯선 발트해 위에서 북유럽의 풍광을 보며
상념에 젖어보리
실야라인 여객선 뱃머리에서
빙하에 부딪혀 침몰해 갔던 타이태닉이나
맹골수도 바다 위에서 심연으로 빠져들어 간
세월호도 떠오르겠지
인생이란 깊은 수로 위를 떠가는 배처럼
목적지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가끔은 곁눈질하며 발걸음을 헛디디기도 하지만
항구를 향해 달려가는 나그네라네
그곳엔 나를 기다려줄 사람 없어도
이 길 멈추지 않고 가보려 하네
* 실야라인siljaline-핀란드 헬싱키에서 스웨텐 스톡홀름항까지 운행하는 크루즈 여객선
고구마
추운 겨울을 무사히 넘긴 어미 고구마
몸에선 수많은 새순이 자라나고
줄기는 어느 날 밭으로 간다
뿌리는 깊이깊이 수분을 찾아 번져가며
6월 가뭄 힘겹게 버티니
어느새 무성하게 번져가는 줄기와 잎들
비가 오고 햇빛이 빛나는 날들이 지나자
땅속에서는 씨알들이 자라
든든한 믿음의 열매로 자라났네
늦가을 수확의 시간
농부의 손에 올라오는 고구마들
혼자만 자라 비대해진 고구마
잎과 줄기만 무성해 잔뿌리만 무성해진 고구마
여러 형제 사이좋게 튼실하게 자란 고구마
우리 삶의 모습이었구나
너는 어떤 지금 고구마로 살아가고 있느냐!
감나무
감나무가 해거리를 하나 보다.
작년에는 가지가 늘어지도록 주렁주렁 달렸었는데
장마와 고온에 시달린 여름을 보내고 나니
가지마다 숭숭 바람이 샌다
감나무는 가지의 무게를 견디기 위해
감의 개수를 조절한다지
우리 삶도 힘 조절이 필요하다
너무 진을 빼면 몸이 느낀다
현재의 성과에 취해 에너지를 쏟으면
보충해야 하지만 인생은 쉽지 않은 것
또 다른 일들이 그를 기다린다
비록 몇 개 남지 않은 감들이지만
가을 햇살에 단맛 나게 익어가기를
누군가에게는 감빛 추억이 되기를
어머니 나라
밤이면 가장 빛나는 별 북극성
어머니 지금 그 나라는 어떠신가요?
아픔도 슬픔도 없는 나라
기쁨과 평안이 가득한 천국
지금 이 세상에서는 상상하지 못할
새로움이 가득한 나라
어머니 북극성 향해 천사들의 호위받으며
올라가시던 1989년 9월의 밤도
눈 깜짝할 사이 지나갔습니다
추석이라고 모인 자손들
차례를 지내며 젊은 날
부모님 사진을 바라봅니다
하늘 가는 밝은 길이 내 앞에 있으니
슬픈 일을 많이 보고 늘 고생하여도….
어머니 즐겨 부르시던 찬송가처럼
그 나라에서 영영 행복하소서
가을, 그 긴 밤에
산촌의 밤은 언제나 손님처럼 오기엔
맨발로 달려 나가 맞기에는
부끄럼 앞서는 것을
별과 달이 운행이 엄숙한 고요를 이루어
마당가 수수목 고개 숙여
성숙함으로 세월을 묶는데
돌아감이란 무엇이며
살아 있음은 무엇이랴
내 비록 살아 숨을 쉬나
그림자만 밝고 가는 길
아직 머물 곳은 창호지 사이로
등불 비치는 나의 보금자리
살다 보면
살다 보면 때로는
고난의 날들이 찾아오지만
아픈 기억들 모두 담아
호수에 던져버리면 잠잠해진다네
잔잔한 호수 위에 번져가는
물결의 파장
그 고난의 시간을 참고
이겨내야 한다네
친구들의 응원과 성도들의 기도까지
가슴에 담아 일어서야 한다네
살다 보면 찾아오는 고난이지만
잠잠히 하늘을 바라보면
왜 그 고난이 찾아왔는지
깨달음을 얻게 된다네
주님께 솔직하게 회개하고 기도드리면
고난이 오히려 기쁨이 되어
앞날을 축복한다네
행복
이른 아침
새들이 행복하게 짹짹거리는 것은
언제든 쪼아 먹을 수 있는
달콤한 과일이 있기 때문
처마 끝에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를
부담 없이 들을 수 있는 것은
저 멀리 구름 걷히고
따뜻한 태양이 비추어 주기 때문
행복은 언제나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소소한 삶의 일상에서 찾아야 하는 것
그것이 작은 행복이어야 함을
혼자 가는 먼 길
이 길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침잠하는 슬픔을 두레박으로 건져가며
꽃길도 아닌 폭우 내리는 길
머뭇거리지 말고 가라 한다
때로는 하얀 이빨 드러내며 밀려오는 파도를 만나고
천산天山에서 쏟아지는 눈사태를 만날지라도
나의 영혼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으리
지금은 깎아지른 절벽 길을 맨발로 걷고
빙하 아래 차가운 심해를 헤엄쳐나가지만
포기하지 않고 가리
혼자 가는 먼 길
그 길의 끝에 나를 기다리며 기도하고 있을
사랑하는 그대가 있으니
노을
계절은 어느덧 겨울로 가고 있습니다.
기러기 떼 줄지어 날아간 자리
하늘은 그리움으로 물들었습니다.
가슴 시리게 다가오는 이름 하나
어차피 함께 갈 길이 아니었기에
기러기 떼 지나간 자리처럼
희미한 기억으로 남았지만
생각의 그물 위로 떨어지는
차가운 빗방울들
오늘 밤 가슴 저리게
그대가 그립습니다
우크라이나. 아픈 전쟁이여
우리는 우크라이나를 잘 몰랐다. 다만
저 먼 동유럽의 곡물창고라는 것과
2차 대전 독일군 탱크가 우크라이나 습지에서
러시아군에게 패퇴한 정도만 역사시간에 배운, 하지만
백인 계열의 미인들이 많이 산다는
콩밭 매는 김태희를 쉽게 만나볼 수 있다는
술집 안주 정도로 웃어넘기던 우크라이나
푸틴이라는 공산주의 독재자가 짜르가 되어
영원히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의 러시아
올림픽에서도 약물과 반칙을 일삼아 퇴출당한 사회주의 국가
그 러시아에 침공당해 울고 있다.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사천삼백만 명이 평화롭게 살아가던 우크라이나 건물과 땅이
포탄과 포성, 미사일로 무너져 내리고 파괴되고 있다
공격하는 자는 승리하기 위해
방어하는 자는 조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던진다.
우리가 6·25전쟁에 삼백만 명의 희생자가 나왔듯이
얼마의 희생이 더 있어야 전쟁이 멈출 것인가
세계의 평화는 올 것인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며
우리를 노려보고 있을 북한군과 중공군들
그들도 미래의 대만과 한국을 향해
방사포와 미사일을 쏘아댈 상상에 빠졌는가
인류의 소망 평화 자유 평등도
한 독재자의 욕망과 오판으로 한순간 깨진다는 진리
우크라이나여. 마침내 승리하라
조국을 지켜내고 푸르고 노란 깃발을 대평원에서 마음껏 휘날리라
그곳에서 대한민국의 김태희 같은 아이들이
노랑나비 잡으러 뛰어다니는 그 날 오게 하라
우크라이나여!
우크라이나인이여!!
아! 쇼트트랙이여
짧은 원 안을 몇 바퀴 돌아야 결승점일까
선수들은 생각하지 않았다
부딪히지 않고 조심스레 빙판을 밟으며 나아갔다
4년의 세월 동안 추운 입김을 참아내며 그렇게 버텼다
하지만 무슨 일인가
중국 선수들의 반칙을 뚫고 들어 온 결승점
기뻐하기도 전에 편파 판정으로 승리를 도난당했다
대국이 아닌 중국 소국만도 못한
몰염치함으로 다른 나라 선수들의 아픔쯤은 무시하는 저들
억지로 만들어놓은 공산주의 체제 안 굴종의 역사가 부끄럽지 않은가?
세계인이 아닌 추잡한 국민으로 손가락질받으며 살고 싶은가?
평화 선의 공정 경쟁 모두 던져버리고
오로지 승부에 집착한 편파 판정으로
우스운 집안 잔치에 골몰한 늑대와 하이에나 좀비들의 축제인가?
양심이 없는 경쟁 반칙을 정당화하는 국민성
남의 것을 빼앗고도 당당한 그것이 공산주의 사상인가?
세계인이여. 깨어나야 한다
인간의 본성은 절제와 겸양에서 평화가 나타난다는 것을
탐욕은 패망이고 멸망이다
부끄럽지 아니한가 중국이여!
※ 2022. 2. 7일 베이징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000m 준결승에서 한국의 황대헌, 이준서 선수가 각각 조 1, 2위로 결승선을 통과하고도 레인 변경 반칙을 했다는 편파 판정으로 실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