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시인 권태주 우리문학 발행인 Dec 9.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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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가랑비가 내리는데 교회에서 대청소와 꽃심기를 한다고 해서 조금 늦게 도착해서 함께 도왔다. 비가 오는데도 비옷을 입고 꽃을 심고 마른 풀을 제거하는 멋진 총남선교회 회원 중에 심언회집사님과 정병식집사님도 계셨다. 한 공동체에서 함께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이 참 고맙고 반가웠다.
광교꿈의교회 나이가 여섯 살이고 대부도 밭에서 가져와 교회 울타리로 심은 벚나무들의 나이도 벌써 일곱 살이다. 깍지벌레들의 공격에 위기도 있었지만 승리하고 잘 자라주어 꽃을 피운 벚나무들이 고맙다. 나는 철쭉 화분 심는 것을 도운 후 포도나무 가지를 전정하고 거름을 듬뿍 주었다. 포도나무에 갑자기 생기가 도는 느낌이다. 모두 힘을 합쳐 계단에 화분까지 정렬하니 어느새 멋진 봄동산이 되어 있었다. 오전 행사를 마치고 여선교회에서 준비한 점심으로 바비큐를 먹으니 피로가 확 풀린다. 함께 모여 음식을 나누니 즐겁고 고기 맛 또한 최고이다.
오후 행사가 남아 있지만 지난번 강풍으로 대부도 밭에 피해가 있을 것 같아 차를 몰고 고속도로를 달렸다. 대부도 밭은 초등학교 교사로 대부도에서 3년을 근무하고 나온 후인 2004년에 구입한 땅이다. 비봉IC를 통과해 송산을 지나 대부도 밭에 도착했다. 역시나 울타리 일부가 바람에 날려 고라니가 들락거릴 정도였다. 준비해 간 끈으로 촘촘히 고정하고 나서 바람에 벗겨진 비닐을 덮었다. 땅이 질어 삽질하기가 힘들었다. 땀이 나기 시작했다. 혼자 일을 하려고 하니까 일의 능률이 오르지 않는다. 핸드폰에 저장된 멜론 음악을 틀어놓으니 힘든 것도 잊는다. 가요, 뽕짝, 클래식, 찬송가까지 다양하게 나온다.
먼저 쪽파를 한 개씩 쪼개서 심었다. 다음으로 양파를 솎아서 하나씩 심었다. 쑥쑥 자라서 튼실한 쪽파와 양파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밭에서 흙과 씨름하다 보니 벌써 시간은 4시를 넘어간다. 남은 일은 지난가을 떨어진 상추 씨앗이 자라 모종이 된 것을 밭두둑에 한 개씩 옮겨 심는 것이다. 다 끝내고 나니 허벅지가 아파온다.
마지막으로 과일나무 점검과 전정이다. 작년에 심은 아기사과 나무를 둘러보니 꽃이 피려고 준비하는 모습이 대견하다. 입에서 벌써 군침이 돈다. 이어서 아로니아 나무와 보리수나무를 전정해 주고 나니 저녁 시간이다. 하지만 구찌뽕나무, 뽕나무, 자두나무도 살펴보고 지난번에 심은 호두나무, 대추나무, 사과나무까지 눈도장을 찍어 주었다. 모든 일을 마치고 나니 오늘 밭농사도 끝이다. 컨테이너 옆에 빗물을 담은 큰 물통의 물을 이용해 삽과 장화를 씻었다. 옛날 농부들이 농사일을 마치고 나면 하던 호미씻기 놀이가 떠올랐다.
힘든 하루였지만 농사를 통하여 나에게 엔도르핀을 선사하는 기쁨을 주신 주님께 감사하며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마음은 벌써 다음에 올 날짜를 그려본다.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행복한 나는 성호 이익선생의 후예 대부도 농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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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부터 서둘러 동탄에서 대부도 밭에 도착한 시간이 8시 20분. 마음은 바쁘다. 먼저 감자가 썩기 전에 캐야 하고, 지난 바람에 쓰러진 고춧대도 세워야 한다.
수박, 참외, 오이, 토마토, 가지, 비트, 양배추, 여주, 호박을 수확해야 한다. 모두 자기 먼저 봐 달라고 아우성들이다. 세 시간에 걸쳐서 감자를 수확했다. 덥고 힘들었지만 장남이 도와줘서 가능했다. 어떤 감자는 토실토실하게 자라주어서 고마웠고, 다 크지 못한 작은 감자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오전 내내 밭에서 열기와 싸우며 일했더니 허기가 진다. 대부도 삼거리 제자 부모님이 운영하는 여정농원 칼국수 집에서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2000년부터 2002년까지 3년 동안 대부도에서 근무한 인연이다. 아마 평생 동안 이어질 귀한 인연이라고 생각된다. 파전과 함께 감자와 바지락, 호박이 들어간 칼국수가 맛깔스럽다. 수확한 호박, 수박, 노각오이를 나누어 주었다. 점심 식사 후 제자가 운영하는 농장인 여정농원에 대추방울 토마토를 사러 갔다. 한 학기 동안 수고한 선생님들을 격려하기 위해서다. 더운 비닐하우스에서 열심히 일하는 청년 농부 제자가 대견했다.
다시 밭으로 와서 지난번에 수확한 마늘을 정성껏 다듬고 오전에 캐서 햇볕에 말린 감자를 흙을 털어 박스에 담았다. 지난봄에 감자 반 박스를 심었는데 12박스 이상 수확이다. 어제 나눔 할 대상을 선정하는 것도 고민이다. 토요일마다 대부도까지 달려와 농사를 지은 농부시인의 노고를 알만한 분들이 나눔의 대상이다.
오후 농사일도 세 시간이 지나갔다. 아직 남아 있는 일은 지난 장맛비에 쓰러진 고춧대를 세워야 하고, 서리태도 심어야 한다. 힘든 일이지만 하루 일을 마무리해야 하기에 게으름을 피울 수 없다. 알레르기 때문인지 자꾸 콧물이 흐른다. 서리태까지 모두 심고 저녁 여섯 시 반이 지나서야 농사일이 끝났다. 농부의 삶이 참 고단하다고 느꼈다.
서둘러 정리하고 감자 상자를 승용차에 실으려고 하는데 좁은 농로 길로 승용차 한 대가 와서 비켜주려고 후진을 했다. 그런데 우리 밭 앞에 사는 노인네가 소리를 지른다. 후진하는 내 자동차 바퀴가 고추밭 입구에 조금 닿았다는 것이다. 기가 찼다. 자동차가 다니는 농로의 주인이 나인데 오히려 텃세를 부린다. 아마 저 노인의 특기인 심술이 발동했나 보다. 우리 설화에 나오는 혹부리영감이 그냥 나온 것은 아닐 듯싶다. 갑자기 농로를 폐쇄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지만 마음을 추슬렀다. 이 노인은 언제나 요주의 대상이다. 나이 들수록 마음을 곱게 쓰고 여유롭게 살아야 하는데 안타깝다.
하지만 저녁 어스름이 내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자동차가 수확물들로 묵직하다. 어릴 때 같으면 집집마다 저녁연기가 올랐을 풍경이다. 나의 노력으로 나누어준 농산물을 맛있게 먹을 이웃들을 생각하니 기분이 한결 좋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