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컨테이너 농장에서 작년 여름인가, 이00 수암봉문학회 회장 등 지금의 수암봉 동인이 된 회원들과 함께 이름 모를 채소류 모종을 하던 추억의 한 장면이 드론 항공 사진같이 이번 권태주 시인 농부의 사진을 통해서 VR 증강현실로 떠오릅니다. 대부도 바닷가 먼 파도 소리와 함께 네덜란드 시골 마을 같은 빨간 지붕이 생각납니다. 그때 현모양처형 교감 사모님이 우리에게 대부도 특산물 바지락 칼국수도 맛보게 해주었지요. 이렇게 우리 문우들은 어느덧 만주벌판 광복군 동지들같이 문학에 목숨 건 3년 차 끈끈한 수암봉 동인으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만주 광복군 지대장 같은 농부 권태주 시인님, 존경하며 또 사랑합니다. 이번 [수암봉 수필집]도 그대가 아니면 자칫 수렁에 빠질 뻔했습니다. 이 조그만 일에 너무 말이 많고, 두 달 넘게 시간도 지체되고 해서 대관절 내가 누굴 위해서 이렇게 비난을 무릅쓰고 심신을 낭비하는가, 그래서 안산시 지원금도 반납하고 그냥 포기할까 하다가 그대의 변함없는 미소를 떠올리고 '포기를 포기한 것입니다' 즉, 경주 신라 천년미소 같은 그대의 은근한 미소, 그러면서 진정한 그리스도의 미소를 봅니다. 경주 옛골에서 발견된 반쯤 깨어져 나간 기왓장 위에 새겨진 반쯤의 미소, 신라 천년의 미소 같은 미소 같은 거 말입니다.
그것보다 내가 정말 존경하는 것은 그대의 열정적인 삶의 자세입니다. 빨간 컨테이너 농장 앞 그대의 밀짚모자를 보면서, 대관절 '인간 권태주'는 몇 가지 얼굴을 갖고 있는가, 혼자 손가락으로 헤아려 보고 웃었습니다. 현직 초등학교 교장으로서 KTX와 같이 바쁜 일상의 업무 속에서, 신춘문예 출신 시인으로 지속적인 시집도 내고, 주말이면 꿈의교회 재무담당 장로로 헌신하며, 한중문예콘텐츠협회(한반도문학) 주요 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일별해 보면, 교장, 시인, 장로, 농부, 임원 어느 하나에도 확실하게 노력합니다. 그러면서 아빠이자 남편으로서의 가장입니다. 그리고 하나의 존재론적 인간으로서 이렇게 약 열 가지 몫을 혼자 해낸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지난 3월 초 대동서적 수필창작반, 첫 강의에 참석한 그대는 끔벅끔벅 졸았습니다. 졸린 눈을 치뜨느라 애쓰는 그대의 눈썹을 헤아리면서 아, 천사 가브리엘이 앉아 졸고 있구나,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새벽 4시면 일어나 일과를 시작한다는 그대의 눈썹은 얼마나 바쁘고 힘들겠습니까, 내가 그대에게서 받은 감동은 이런 열정과 진실이 아닙니다. 정말 소중하게 내가 본받아야 할 것은 그대는 한 번도 불평이나 이마 주름살을 보인 적이 없다는 점입니다. '진실한 인간'의 살아있는 모습입니다. 그대의 맑은 눈동자를 들여다보면 아, 나도 교회에 나가서 그리스도를 만나고 싶다는 경건함을 갖게 합니다. "그리스도는 존경하지만 크리스천은 싫어한다"라는 적잖은 매도 속에서 또 다른 거울을 발견합니다. 그대의 눈동자는 신라의 천년 미소처럼 늘 웃고 있었습니다. 사진보다 실물이 더 미남인 그대의 얼굴은 싯달타 같은 편안함도 줍니다. 늘 매사에 감사하고 무슨 일이든 늘 즐겁게 달려들었습니다. 이런 내용으로 내가 [조선문학]에 권두칼럼을 쓴 걸 보고 그대는 과찬이라며 목구멍을 보이며 크게 웃었지요.
유치원생 막내 손자의 발톱을 깎으면서 뜬금없이 '문학은 어린애 발톱 깎는 것 같은 잔잔한 기쁨이자 인류에 대한 철학적 서비스가 아닐까?' 엉뚱한 생각이 났습니다. 손톱깎이로 잠자는 어린애 발톱을 깎듯이 우리는 독자들에게 얼마나 조심스럽게 정성을 다해 글쓰기를 해야 하는가 하는 의무감 같은 거 말입니다. 자칫하면 잠자는 아기를 깨우면 안 되고, 더욱이나 자칫 살을 짤뚝 잘라 피가 나지 않게 온갖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자신의 엄지발톱을 물어뜯던 손자가 이튿날 아침 엉, 누가 내 엄지발톱을 시원하게 잘 깎아놓았네. 앙? 할베구나, 고마웡! 할 때, 지상최대의 기쁨 같은 거, 그런 거 때문에 내가 밤새도록 워드를 뚜드리는 이유가 아닐까?
가브리엘 천사의 빨간 컨테이너 농장 주인 권태주 농부 시인이 올린 사진을 보면서 이렇게 또 하나의 존재론적 인간의 참다운 삶을 읽어본다. 같은 안산에서 이런 시인들과 함께 숨 쉴 수 있다는 것도 나에게는 큰 행복이 아닐 수 없다.
-신상성(용인대 명예교수, (사)한중문화예술콘텐츠협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