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그리고 헌신
권태주(시인)
모든 만물이 기지개를 켜는 봄날
나도 몽우리를 터뜨리고
분홍 복사꽃을 피웠다
꽃을 찾아 벌과 나비가 내 몸속으로 들어와
화분과 꿀을 날랐다
나의 성장은 그치지 않았고
햇살을 맞으며 둥글게 몸을 키워갔다
폭풍우와 태풍까지 이겨내며 맞이한 초가을
나는 당당하게 붉은 과육을
모두에게 보이고 싶었지만,
아뿔사!
내 몸속에서 꾸물거리는 그것은
복숭아 나방의 애벌레 한 마리
너는 그렇게 소리 없이 들어와 내 몸을 파먹으며
커가고 있었다
하지만 내 몸을 희생해 네가 자란다면
그것으로 괜찮다
나는 관대하다
어미의 살을 파먹고
살아남는 우렁이 새끼들처럼
너도 언젠가는 멋진 나방이 되어
날개를 퍼덕이며
파란 하늘로 날아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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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도 해녀의 노래
너 거기 누워있었느냐
톨칸이* 건너편엔 성산봉이 듬직하게 서서
애절한 사모곡만 불러보는
당신과 나의 그리움의 거리
사람들은 이 땅에서 태어나고 자라
더러는 뭍으로 떠나 다시 돌아오지 않더라
내 사랑도 그렇게 더벅머리 사나이가 되어
떠나간 지 칠십 년
열릴곱 처녀 시절부터
물질하며 긴 세월을 이 섬과 함께
기다리고 기다렸다오
가끔씩 뭍에서 들려오는 동란 소식과
더러는 군대로 가서 상이군인이 되어
피골상접한 얼굴로 돌아왔고
어느 해는 월남이란 나라에 가서
전사통지서만 날아왔지만
그때 떠나간 그 총각은 영영
소식 없이 세월만 흘러갔다
우도 바다 뿔소라 톳 전복들 물질로
해녀의 살아가는 양식이 되었지만
내 주름은 깊어만 가고
손주들은 자라 성인이 되었다
저 옥빛 물빛은 변함없이 오늘도
큰바다로 흐르는 꿈을 꾸지만
아직도 그리움은 미련이 되어
바다만 바라보고 있다오
해녀의 노래만 부르고 있다오
*톨칸이ㅡ우도 사투리로 소의 여물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