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밀양’에서, 주인공 전도연이 자신의 아이를 유괴당한 슬픔을 어렵게 이겨내며 유괴범을 찾아갔을 때, 그는 자신이 이미 하나님께 용서를 받았다며 너무나 평온한 얼굴로 전도연을 맞이한다. 그 모습에 전도연은 이성을 잃을 만큼 분노하게 되고 세상의 어떤 것도, 심지어 신의 뜻마저도 받아들일 수 없는 극한의 절망 가운데 빠지고 만다.
용서와 복수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고민하게 되는 주요한 관심사이기에 수많은 문학과 영화의 단골 소재이다. 최근의 모범택시2나 더 글로리 같은 드라마도 복수에 대한 이야기이다. 다시 영화 밀양으로 돌아가서, 그 유괴범이 감사하는 용서는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바로 용서는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가 해야 한다는 것이다.
창세기 후반부의 주인공인 요셉은 용서에 대한 흥미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야곱의 12명의 아들 중 11번째인 요셉은 형들에 의해 극심한 시기를 받고, 살해의 위기를 간신히 넘기고 구덩이에 감금되었다가 이집트로 팔려간다. 그의 나이 17세에 노예로 팔려가서 13년 동안 노예와 감옥살이를 전전했다.
가장 가까운 가족인 형들에 의해 살해 위협을 당하고, 노예로 팔려갔다가, 13년 가까이 억울한 감옥살이를 한 사람이 있다면, 그의 마음에 어떠한 원한이나 증오, 복수심이 있다고 한들 이해되지 못할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요셉은 신앙의 힘으로 복수가 아닌 용서의 길을 선택하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반전은 그가 30세에 극적인 성공을 이루어 당시의 패권국가인 이집트의 총리가 되었다는 것이며, 변두리 가나안에 살던 그의 옛 가족들이 극심한 기근을 당하여 그에게 식량을 구하러 오게되었다는 것이다. 그의 나이 44세에, 자신이 이집트로 팔려간지 27년 만에 자신을 팔아넘긴 형들을 요셉은 재회하게 된다.
형들을 다시 만난 요셉은 원한을 갖지는 않았지만 아무 절차 없이 형들을 받아준 건 아니었다. 그는 아버지 야곱이 너무 아껴서 식량 구하러 오는 일행에서 제외되어 고향에 남아 있는 막내 아들(자신에게는 동생) 베냐민을 반드시 데려와야 한다고 조건을 걸기도 하고, 식량을 구매한 값으로 형들이 지불한 은잔을 몰래 다시 형들의 짐에 넣어서 형들이 당황하여 사색이 되게 만들기도 했다.
이런 요셉의 행동은 용서를 온전히 이루지 못한 사소한 복수였을까? 요셉이 계획한 이러한 일련의 당황스러운 일을 당한 형들은 먼 옛날 자신들이 한 행동을 사무치게 반성한다.
“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가 아우의 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창세기 42: 21)"
요셉은 이미 마음에서 용서를 다 이루었기 때문에 복수가 필요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그의 형들이 자신들의 행동을 철저히 반성(회개)하기를 바랐을 것이다. 진정한 용서는 가해자의 철저한 반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용서는 그리스도교 교리의 핵심이다. 모든 인간이 죄를 범하여 벌을 받아야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대신 그 벌을 받고, 하나님이 인간을 용서했다는 것이 그리스도교의 구원이기 때문이다. 그럴 때 용서받은 인간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가? 인간은 자신이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로서 용서받았음을 기억해야 하며, 만약 자신이 가해한 일이 있다면 피해자에 대해 진심으로 용서를 구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