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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5-1] 인터스텔라 촬영지, 바스콘셀로스 도서관

휘몰아쳤던 일정의 다음날, 멍함과 여유로움 그 사이

by 잡초

■ 멕시코시티 마지막 날의 아침

- 한숨 쉬어가기


아침에 일어나니 어제의 여파가 멍하니 남아있었다. 그래서 이 날만큼은 근교에 다녀오거나 촉박한 일정을 세우는 대신, 멕시코시티 안에서 아직 가보지 못한 곳들을 여유롭게 둘러보기로 했다.



숙소 바로 옆의 카페에서 Adele의 'Easy on Me'를 들으며, 우리는 잠시 멍 때리는 시간을 가졌다. 이름이 다소 이상하게 적힌 커피도 마시고, 그동안의 경비 정산도 하나씩 처리하면서 우리는 다음 행선지를 바스콘셀로스 도서관으로 정했다.


참고로 이 카페는 'Tierra Garat'이라는, 멕시코의 스타벅스 같은 커피 프랜차이즈다. 커피, 샌드위치, 베이커리까지 다양하게 있고, 좌석도 널찍한 데다 콘센트까지 있어서 노트북 들고 와서 작업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카페를 나와 도서관까지 가는 길에 슬슬 출출해져서, 아침식사도 할 겸 눈에 띄는 아무 타코 트럭으로 다가갔다.


이 날 타코는 남들이 먹는 걸 그대로 따라 주문했는데, 역대급이었다. 역시 멕시코에서는 '길거리에서', '가장 끌리는 타코를', '가장 끌리는 순간에' 먹는 게 가장 맛있다.


쇼핑몰에 들러서 간만에 현대적인(?) 쇼핑 타임도 즐겼다.


사실 목적은 바로 패딩을 새로 사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가지고 온 경량 패딩이 터져버리는 바람에, 이참에 아예 따듯한 패딩을 사기로 한 것. 나는 예쁜 흰색 숏패딩을 얻었지만, 이 날 쇼핑의 진정한 승자는 J였다. 지금까지 어디서도 보지 못했던 멋있는 주황색 나이키 운동화를 발견한 J는 망설임 없이 운동화를 구매했고, 그 신발은 남은 여행 내내 계속 눈길이 갈 정도로 J에게 찰떡궁합이었다.

(심지어 가격도 저렴한 편이었다…!)


혁명기념비와 45도 감성의 기념샷


꼬까옷과 꼬까신으로 채비하고 다시 발걸음을 옮기는 길에 야자수 길이 뻗어있는 혁명기념비가 보였다. 그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노는데, 한 외국인 관광객이 우리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영문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기뻐하시면서 우리의 사진도 찍어주겠다고 하셔서, 기꺼이 부탁드렸다.

비록 결과는 엉성했지만 무척 열정적으로 찍어주신 결과물은 45도 회전해 있었다. 이게 멕시코의 사진 트렌드인가…? 어쨌든 굉장히 밝고 유쾌하신 분이셨다.



영화관 냄새 찐하게 풍기는 팝콘 전문점도 지나고



바스콘셀로스 도서관 바로 근처에 있는 월마트도 들렀다. 마지막 날 어떤 기념품을 살지 미리 아이스캔도 하고, 베이커리 코너에서 허기를 달랠 빵도 몇 개 사서 나왔다.



월마트에서 산 빵을 지하철역 앞 벤치에서 먹으며, 오가는 멕시코시티의 현지인들을 구경했다. 반대로 그들은 길거리에서 빵을 먹으며 사진을 찍는 두 동양인 관광객을 구경했다.


모처럼의 여유를 만끽하며 우리는 빵을 더 먹고도 벤치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강렬한 햇빛을 더 이상 견디기 힘들어졌을 때, 우리는 늘어지는 몸을 이끌고 바스콘셀로스로 걸음을 다시 옮겼다. 도서관은 바로 근처에 있었다.



■ 바스콘셀로스 도서관(Biblioteca Vasconcelos)과 길거리 간식들, 수공예 시장




"바스콘셀로스 도서관(Biblioteca Vasconcelos)"은 멕시코시티를 대표하는 공공 도서관 중 하나로, 영화 <인터스텔라>의 배경지로도 잘 알려져 있다. 과연 들어가자마자 감탄이 나올 정도로 압도적인 공간이 펼쳐지는데, 천장 가까이까지 뻗은 금속 프레임 서가들이 공중에 층층이 매달려 있고, 중앙에는 거대한 고래 뼈 모양의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러한 독특한 구조 덕에 멕시코시티 건축 명소로도 손꼽히며, 도서관 특유의 묵직한 고요함과 어우러져 웅장하면서도 위압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사람들이 없는 틈을 타 포토스팟에서 사진도 찍고, 이 방 저 방 돌아다니며 책 읽는 컨셉샷도 찍었다.



정원을 비롯한 부대시설들도 둘러보았다. PC 좌석은 아래층을 내려다보는 구조로 길게 늘어서 있었고, 공부하거나 책을 읽을 수 있는 테이블도 군데군데 놓여 있었다. 해리포터의 호그와트 도서관 느낌도 났다.

과연 이런 곳에서 공부하면 더 잘 될까, 그 반대일까.



심지어 화장실도 남달라 보인다. 물론 아주 쾌적하고 편안한 시설은 아니었지만, 화장실조차도 이 도서관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달까.


이 근처 사는 학생이면 참 좋았겠지만, 이미 공부와는 먼 길을 몇 년간 걸어온 우리는 사진과 관광에 초점을 더 두었다. 대신 감탄만큼은 실컷 하고 나왔다.







도서관을 나서니 오후 3시쯤 되었다. 그런데 거리 분위기는 마치 퇴근시간 같았다—붐비는 인파, 그 사이를 헤집고 흐르는 따가운 햇빛까지.



또 다른 길거리 간식. "Gordita de Nata"라는 것인데, 안에 연유가 발라져 있는 달달한 팬케이크 같았다. 한 입 베어무니 기분 좋은 달큰함이 확 퍼지면서 단번에 당이 충전되는 느낌이었다. 너무 달아서 몇 입 먹고 또 KO 당하기는 했지만.



길거리 간식 중 도리토스 같은 감자칩에 라임과 각종 소스를 추가해 먹는 것이 있었다. 현지인들이 꼭 하나씩 손에 들고 다니기에 어떤 맛일까 계속 궁금했었는데, 이 날 한 번 시도해 보기로 했다. 마침 아까 사진을 찍은 혁명기념비 근처 광장에서 다들 털썩 앉아 무언가 하나씩 먹고 있어서, 우리도 이 미지의 간식을 사들고 합류했다.


그런데 세상에, 이 가게가 문제였을까, 아니면 이 음식 자체가 문제일까. 감자칩은 눅눅하면서 쩐내가 났다..! 혀만 살짝 댔을 뿐인데, 우리는 이건 도저히 먹을 수 없다고 판단해서 바로 버렸다. 다들 어떻게 먹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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