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아내(Charulata)>, 샤지트 레이, 1964
사티야지트 레이의 <외로운 아내>에서 신문 편찬 작업으로 바쁜 남편을 두어, 홀로 외로이 시간을 보내는 차루는 방 안 창문에서 망원경을 통해 바깥세상을 관찰한다. 그녀의 가정 내에서 바깥세상을 관찰하는 통로인 연속된 긴 창문들에는 반듯하고 튼튼하게 설치된 창틀들이 있는데, 긴 모양으로 여러 개 연속된 창문과 창틀들은 그녀를 보고 라푼젤과 같이 성 안에 갇혀있는 듯한 공주의 이미지를 연상하게 하며, 외롭고 답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녀의 감정과 상황을 한층 극대화한다. 또한, 창틀 사이로 망원경을 통해 거리의 대상들을 크고 자세히 확대하여 지켜보고 심지어는 대상의 움직임을 쫓기도 하는 그녀와 달리, 그녀가 관찰하고 있는 인물들은 그녀의 존재와 관찰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 이는 보는 입장에 있는 그녀가 보이고 있는 거리의 사람들보다 우위에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데, 차루가 창틀이 있는 창 앞에 서 대상을 보는 해당 장면은 앞서 말했던 공주의 이미지와 더불어 그녀가 사회적으로 권력이 있는 듯한 인상을 주어 부유한 그녀의 사회 경제적 지위를 실감 나게 한다.
<외로운 아내> 속에서 인물의 눈은 인물 그 자신의 눈이 되어 해당 인물의 시선이 되어주기도, 카메라라는 눈이 되어 인간이 가진 시선의 한계를 뛰어넘어 대상을 응시하는 것을 보여주기도 하며, 관객의 눈이 되어 인물의 내면을 꿰뚫어 볼 듯한 인상을 제공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눈으로서 변화한다. 그녀가 망원경을 들고 무언가를 관찰할 때마다, 영화는 망원경을 눈에 가져다 댄 그녀의 모습 뒤에 바로 망원경 모양의 틀과 함께 망원경으로 그녀가 응시하고 있는 대상과 풍경을 보여주며 그녀의 시선이 곧 관객의 시선이 되도록 이끈다. 홀로 방 안에 있을 때뿐만 아니라 차루는 아말과 함께 나들이를 나서 그네에 올라탄 후 망원경을 통해 실내에서 아이를 돌보고 있는 사람, 매트 위에서 글을 적고 있는 아말, 풀잎 등 그녀가 보고 싶은 주변 대상들을 확대해서 바라본다. 앞서 창문을 통해 차루가 방 안에서 거리를 바라보는 장면에서도 망원경을 통해 바깥을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시점과 같은 화면을 보여주어 관객 또한 마치 그녀처럼 외부를 망원경으로 관찰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었지만, 그녀가 그네에 올라앉아 바라보는 장면에서는 눈이 또 다른 기능으로 변화하는데, 바로 초점이 맞지 않던 대상에게 초점이 맞춰지며 인물의 시선이 사실은 카메라라는 정체가 드러난다. 이전까지 그녀가 망원경을 통해 지켜본 다른 풍경들을 망원경의 효과로 원래 크기보다 확대되어서만 보았다면, 해당 장면에서 아이를 돌보는 인물로 시선을 옮길 때, 초점이 이파리에서 인물로 자유롭게 옮겨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흐릿하던 관찰 대상으로 초점을 옮겨 뚜렷하게 볼 수 있게 함으로써 보고자 하는 인물의 욕망을 실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 인간의 눈으로는 할 수 없는 한계를 뛰어넘은 것으로써, 관객이 보고 있는 것은 그녀가 바라보고 있는 풍경이지만, 해당 장면에서 차루의 시선은 카메라라는 기계의 눈이 되어 관객에게 그녀가 보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뚜렷하게 보여준다.
이뿐만 아니라, 영화 속에서 인물의 눈은 관객의 눈이 되어 마치 해당 인물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인물의 감정에 함께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하는데, 이는 그네에 홀로 기대어 앉아 있는 차루의 모습과 신문 비용 관련 문제로 곤란한 상황에 놓인 부파티의 모습에서 찾아볼 수 있다.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후 홀로 그네에 기대어 앉아 관객을 바라보듯 정면을 뚜렷이 응시하고 있는 장면에서 차루의 눈은 점점 가까워지고, 이어서 그녀의 눈 위로 여러 이미지들이 겹쳐 등장하는데, 이는 앞서 그녀가 망원경으로 풍경을 보는 장면에 무언가를 지켜보는 그녀의 모습에 뒤이어 그녀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풍경을 등장시켰던 것처럼 그녀의 외적인 모습에 연이어 그녀의 응시 대상을 보여주는 것 같아, 스크린에서 점점 흐려지는 그녀의 눈 위로 등장하는 이미지들은 그녀의 혼란스러운 내면을 대변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이를 통해 관객은 그녀의 눈을 통해 그녀의 혼란스러운 내적 감정들을 만나게 된다. 차루의 눈이 그녀의 내면을 응시하게 하는 관객의 눈이 되는 것이다. 부파티가 신문 관련 비용처리로 인해 곤란에 빠진 상황 속에서도, 그는 상대방과 서류를 응시하던 시선을 돌려 비장한 음악과 함께 카메라를 응시하는데, 이때 마주하는 그의 눈빛은 마치 해결책과 도움을 원하는 것처럼 보이며, 앞서 차루의 등장 장면만큼 긴 시간 이어지거나 눈을 클로즈업 한 장면은 아니지만 그의 눈을 통해서 곤란한 상황에 처해 도움과 해결책을 요구하는 듯한 그의 감정을 마주하게 된다.
다양한 시선과 더불어 <외로운 아내>에서 또 하나 주목했던 점은 그들의 감정 표현 방식인데, 영화 속에서 아말과 차루는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지만 서로를 향한 두 인물의 감정은 결코 직접적인 대사와 행동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들은 문학과 노래라는 예술을 통해 교감하며 가까워지게 되는데, 이처럼 문학과 예술을 통한 두 인물의 감정교류는 인물의 중요한 감정이나 서사가 드러나는 부분은 안무 혹은 노래를 통해 전개하는 뮤지컬 형식과 유사하다고 느껴져 2차원 평면 스크린에 보이는 이야기에 입체감을 더했으며, 망원경을 통해 무언가를 응시하는 그녀의 행위와 더불어 간접적으로 표현되는 인물의 교류는 차루와 아말의 관계처럼 인물의 감정을 더욱 조심스럽고 은밀한 것으로 느끼게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차루의 경우 부파티와 아말에게 손수건과 노트, 슬리퍼 등 직접 수를 놓은 물건들을 통해 애정을 표현하는데, 이러한 직접 수놓은 물건들은 ‘사랑’이라는 차루의 보이지 않는 감정을 시각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하였다. 특히 손수건과 슬리퍼, 노트와 같은 사물들은 인물이 직접 접촉하여 사용하는 사물로서, 부파티와 아말이 직접 손으로 쓰다듬는 장면을 조명해 보여주기도 하는데, 이러한 장면과 사물들은 감정을 시각적일 뿐 아니라 촉각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하였으며 그로 인해 보이지 않는 인물들의 감정은 관객에게 한층 풍부히 전달된다.
이처럼 <외로운 아내>는 여러 기능으로 변화하는 ‘눈’과 인물의 은밀한 시선, 그리고 간접적인 표현방식과 사물을 통한 촉각과 시각의 동시성을 통해 인물의 내면과 시선, 관계를 한층 더 복합적이고 입체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하며, 영화의 기계적 성격과 신체적으로 밀접하고 예술적인 성격을 모두 발견할 수 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