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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봄 Jan 09. 2024

침묵과 무관심 속, 희망의 세상은 피어나지 않는다.

영화 <택시 운전사>, 모든 것은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 존재한다.

영화 <택시운전사>는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운동을 바탕으로 제작한 영화로 당시 탄압받던 광주의 모습과 민주화를 위해 뜨겁게 맞섰던 시민들의 열기를 담고 있으며 왜곡된 언론으로 당시 광주에 대한 사실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던 타 지역의 상황까지 드러내며 민주주의의 위기를 맞이했던 대한민국의 모습을 보여준다. 선교사로 위장해 광주를 취재하러 온 독일기자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취만)가 김만섭(송강호)과 함께 광주로 향하며 이야기가 전개되므로 로드무비로도 볼 수 있는데, 만섭이 광주라는 목적지로 향하고, 그 과정에서 이전에 알지 못했던 상황들을 경험하며 내적 변화를 겪는 모습을 통해 로드무비의 대표적인 특징이 드러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영화 <택시운전사> 만섭과 딸의 모습

 영화에서 만섭은 개인택시를 운행하며 홀로 딸을 키운다. 그는 파업과 휴교 예고를 들으며 손님이 없을까 걱정하고 금전적인 문제에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면모를 보이는데, 이러한 모습은 생계를 유지하는 것에 급급한 그의 경제적 상황을 보여주며, 당대 서민의 삶을 대변하는 인물로 볼 수 있다. 만섭은 언론의 보도를 순순히 믿고, 시위의 정황에 대해서는 자세히 모른 채 시위를 부정적인 행위로서 인식하며, 광주의 상황을 이해하는 것에서도 외국인인 힌츠페터보다 무지한 모습을 보이는데, 이것은 개인의 삶의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아 생계 외에 다른 문제들에 많은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었던 당대 시민들의 삶을 묘사한 것으로 생각되며, 앞서 언급한 그의 사회·경제적환경과 연관 지어 생각해 보게 한다. 맹자가 항산항심(恒産恒心) 이론으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일정 수준의 재산과 생업이 보장되어야 도덕적인 실천이 가능함을 주장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나는 개인의 정치적 관심과 참여 또한 일정 수준 이상의 생계, 즉 안정적인 사회경제적 환경이 보장된 후 생겨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따라서 외부요인에 의해 언제든 생계가 위협받을 수 있는 불안정한 환경에 놓였던 만섭이 높은 정치적 관심도를 보일 수 없음을 이해할 수 있다. 이는 바르텔즈가 경제적 지위와 소득의 정도가 시민들의 정치적 참여에 막대한 영향을 행사함을 언급하며 불평등한 민주주의를 경고했던 것과도 연관 지어 생각해 볼 수 있는데, 메르켈이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요인들이 작동하는 것에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민주주의는 사회경제적 환경에 내장되어 있음을 언급했던 것처럼, 만섭을 비롯한 영화 <택시운전사>에 나타나는 다양한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민주주의의 핵심 요소인 ‘시민참여’에 있어 개인의 사회경제적 상황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영화의 초반, 광주로 향하기 전부터 올바른 민주주의 체제가 성립되지 않고 있는 정황을 발견할 수 있다. Schmitter와 Lynn의 주장에 따르면,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표자들은 최소한 비공식적으로 선거 지지나 정책의 경쟁에 있어 패자들이 미래에 취임하거나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일시적인 권력이나 우월성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영화에서 이기자(정진영)는 상황을 묻는 페터에게 “계엄령 3일차, 김영삼은 가택 연금형을 받았으며 김대중은 구속되었다.”고 말한다. 실제 당대 신군부의 집권 이후 전국 학교 휴교령을 비롯해 시위, 집회 등 정치활동이 일절 금지되기도 했으며 김대중에게는 사형선고가, 김영삼에게는 가택연금이, 김종필에게는 보안사령부 감금 조치가 취해지는 등 정치적 경쟁자들을 탄압하는 일이 이어졌는데, 이는 권력이 오남용되고 있으며 민주주의가 올바르게 실천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뿐만 아니라 당시 정부는 광주라는 단어, 광주에 관한 어떠한 언급도 금지한다는 조항을 포함한 보도지침을 발령하는 등 언론 또한 강력히 탄압하였으며 이는 광주의 현장을 보도하려던 최기자의 계획이 실패하는 모습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영화 속 광주로 향하는 입구에서 눈에 띄는 “희망의 80년대로” 라는 문구는 광주 시내 곳곳에 걸려있는 “민주주의를 사수하자”는 현수막과 대비되며 민주주의가 붕괴된 당대 현실과 억압받는 시민들의 비극을 극대화시킨다. 로버트 달(Robert Dahl)은 현대의 정치적 민주주의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 절차적 최소조건에 대해 가장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목록들을 제시하며 시민들은 광범위하게 정의된 정치적 문제에 대해 엄중한 처벌을 받을 위험 없이 자신을 표현할 권리가 있음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당시 불공정한 선거와 권력 등에 반대하며 올바른 민주화를 꿈꾸었던 광주시민들은 군대와 경찰, 언론 의해 탄압받고 폭도와 빨갱이로 취급받았으며 그들의 권리를 위해서는 매일 목숨 바칠 각오로 나서야 했다. 출입은 물론 통신 또한 제한되어 완전히 고립되었던 80년 광주에서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인 자유와 평등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직 개인의 희생과 탄압만이 시민들의 삶에 파고들었다. 민주주의는 사람들이 자유와 더 나은 삶의 방식을 위해 고군분투할 때, 그들의 마음과 입술에서 울려 퍼지는 단어이다. 더 나은 삶과 자유를 향해 용기를 내 앞장섰던 시민들의 기대와 소망은 권력에 의해 처참히 짓밟혔다. 영화 속 진압당하는 시민들을 보고 있으면 ‘저렇게까지 해야만 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당대 정권은 왜 군대까지 동원해 진압해야만 했을까? 권력층은 흔히 민주화가 달성된 후 보복의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되면 민주화에 동의하지 않으려 한다. 좋은 민주주의를 위한 제도의 도입을 처음부터 봉쇄해 버림으로써 위협을 방지하고 권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사회경제적 상황은 시민의 정치적 관심도뿐만 아니라 권력자들의 집권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경제의 성장은 그렇지 않을 때보다 권력 유지에 불리하다. 따라서 독재자는 시장과 사회로부터 자원을 더욱 약탈하기 위해 군대와 경찰을 증강하고 투자를 위축시킴으로써 경제 활성화를 방해하며, 이렇게 경제성장에 필수적인 제도적 요건을 제한하며 권력을 유지하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1980년, 페터를 태우고 광주로 향하는 길인 3차선 도로 위에서 하행 방향 차량은 만섭의 택시 한 대뿐이지만, 현시대의 만섭이 손님을 태우고 광화문으로 향하는 길은 6차선 도로에 다양한 차들로 꽉꽉 차 있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는 광주가 당시 민주화운동의 중심지, 광화문이 현재 다양한 집회와 운동의 중심지인 것을 고려해 봤을 때 위험을 감수해 가며 외롭게 민주화를 꿈꾸어야 했던 과거와 위협받지 않고도 누구나 자유를 누리고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 현실을 보여주는 것으로 보여진다. 또한, 과거 만섭이 왜곡된 보도로 타 지역 시민들이 광주와 학생들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품게 되는 것을 지켜보는 장면을 통해 왜곡된 정보로 사람들을 선동하는 언론의 부정적인 역할이 드러나는데, 훗날 만섭이 페터의 소식을 신문이라는 매체를 통해 다시 접하게 되는 모습을 통해 언론의 긍정적인 역할도 조명해볼 수 있으며 언론의 양면적 성격과 올바른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메르켈은 2021년 독일 통일의 날 기념식에서 “민주주의는 그냥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것과 함께 살고 민주주의를 보호하기 위해 매일 노력해야 한다.”며 민주주의는 우리의 노력만큼 주어짐을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과거와 달리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민주주의 체제하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세대 시민정신은 그만큼 증대되지 못했다고 생각하며. 자유와 안정적인 삶이 보장된 만큼 민주주의 시민으로서의 역할보다는 오히려 개인의 삶과 선호를 추구하는 것에 더 치중한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우리는 민주주의는 유동적인 성격으로, 얼마든지 붕괴하거나 왜곡될 수 있는 것임을 인지해야 하며 현재 우리가 누리는 자유에는 영화 <택시운전사>와 같은 시민의 노력이 있었음을 기억하고, 민주주의의 시민으로서 비판적으로 사회를 바라보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능력과 의식을 함양해야 한다. 현재의 민주주의가 더 좋은 민주주의로 나아가기 위해서, 민주주의가 붕괴하지 않고 바르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 사회, 주권을 가진 시민. 바로 우리의 노력과 참여가 필수적임을 영화를 통해 다시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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