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도 못한 이직의 장점
나는 말랐다. 키가 큰 편이라(168이다.) 젓가락 같은 팔다리가 더욱더 도드라져보인다. 신체에 외관상 여성스러운 부분이라고는 하나도 없다는 게 콤플렉스이긴 하나 건강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오히려 또래들보다 더 건강하다고 자신한다. 작년에 받은 건강검진에서 심혈관 나이가 내 원래 나이보다 2살 어리다는 결과가 나왔다. 물론 이외에 다른 수치들도 전부 깔끔하다.
그러니까 누군가가 내 몸을 보고 난리법석을 떨지 않는다면 나는 그럭저럭 잘 살 수 있었다. 대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는 주변 사람들에게 '너무 말랐다'는 말을 종종 듣긴 했어도 그것이 심각한 스트레스로 다가오진 않았다. 그 빈도가 높지 않았으니까. 알바를 할 때에는 그래서 더 씩씩하게 일했다. 말랐다고 일을 못한단 소릴 듣고싶지 않았어서. 그리고 나의 '몸평'을 하는 성별도 여자로 한정되어 있었기에 심각하게 수치심을 느낄 일은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것만으로도 참 복이었구나, 싶어지지만.
내가 공무원으로 일한 1년 남짓의 기간 동안 나는 말랐다는 말을 50번은 넘게 들었다. 사람이 콤플렉스로 갖고 있던 부분을 50번 정도 자극당하면 공황이 찾아온다는 걸 나는 알고 싶지 않았지만 알게 되었다. 연령과 성별을 불문하고 같은 조직에 있던 모두가 내가 너무 말랐다며 농담을 하고('몸에 지방이 없어서 추위를 많이 타는 거 아니야?') 내가 뭔가를 먹고 있으면 간섭을 하고('이렇게 많이 먹는데 왜 살이 안 쪄?' '너 너무 야위었으니까 이것 좀 먹어봐.') 입고 싶은 옷을 입고왔을 뿐인데 나의 몸을 평가하고 ('어휴, 젓가락 같다.' 'ㅇㅇ님 N킬로 안 넘죠? 몸무게 몇이에요?') 나에게 어울리는 옷을 자기 멋대로 정해주기도 했다. (ㅇㅇ씨는 말랐으니까 이런 옷이 어울려.)
가장 기억에 남은 상처는 같은 과에 있던 8급 여자가 내가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더니 온 동네에 다 들리도록 소리를 지른 것이었다. '와... ㅇㅇ님, 진짜 삐쩍 꼴았다~!!' 그런데 이 사람은 이 사람대로 내가 말을 생각없이 한다고(?)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는 게 진정한 코미디다. (혹시 자기혐오?)
20대 청춘의 봄. 그래서 나는 예쁜 옷을 입어도 너무 말랐다, 이상한 옷을 입어도 너무 말랐다는 소릴 들을 거면 그냥 싸구려 옷만 입고다니자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덕분인지 아닌지 옷값을 많이 아꼈고 공무원 월급에 자취하면서 1년에 1,000만 원을 모았다.)
그런데 매일 똑같은 옷만 입고다니니 이제는 나보고 좀 꾸미란다. 내가 아끼는 셔츠를 입고온 날 나에게 왜이렇게 말랐냐며 나를 비웃던 사람이, 여자니까 좀 꾸미고 다니랬다. 여러 차례 내 몸을 만지면서 너무 말랐다고 하던, 나는 이 사람이 나에게 그런 말을 할 때마다 심장이 가슴 밖으로 터져나올 듯 빨리 뛰고 명치께가 답답해지고 토를 할 것처럼 속이 울렁거렸는데.
설마 남자들까지 그러진 않았죠? 라고 한다면, 당신은 보수적인 조직에 갇힌 사람들의 인간성을 과대평가한 것입니다. 다음에 자세히 풀 기회가 있겠지만 50대 남자 동장이 내 팔뚝을 주무르면서 왜 이렇게 말랐냐고 운동을 하라고 한 적도 있으며 초면의 40대 남자 8급이 나와 처음 만난 자리에서 살 좀 쪄야겠다고 한 적이 있고.
나와 나이가 비슷한 남자 8급이 나한테 여러 차례 운동을 하라고 하길래, 내 체력을 걱정해주는 말인가 싶어 그냥 '아 저 운동해요~ 산책도 많이 하고 등산도 하는데.'라 답했더니 굳이굳이 고개를 저으며 그 뜻이 아니라고 하더라. 'ㅇㅇ님은 키가 크니까 밸런스를 맞춰야 해요.' 나는 그에게 이성적으로 다가가고픈 마음이 하나도 없었는데 그는 내 외모를 헐뜯었다. 아, 내 몸은 사람들의 눈에 띄는 것만으로 그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종류의 것이던가? 내가 벌크업을 하지 않는 게 주위에 피해를 끼치나?
위에 적은 것 이외에도 내가 들은 수치스러운 얘기들이 많이 남아있으나 생략한다. 내가 이런 상처를 받은 것과 공무원 조직이 무슨 상관이냐고 정말 떳떳하게 반박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있다면, 당신은 공무원이 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다. 축하드린다.) 나의 트라우마를 거시적으로 바라보길 거부하는 이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직급이 낮고 젊은 여자의 외모는 가볍게 평가해도 되는 공공재로 취급하는 문화가 아직까지 그 조직에 살아남아있는 다른 이유를 댈 수 있는지.
내가 옮긴 회사의 구성원들은 대체적으로 조용한 편이다. 오히려 내가 말이 많은 편이라 가끔 자제할 때도 있다. 일할 때나 밥을 먹을 때의 분위기가 약간 삭막하다고 느껴 아쉬워지다가도, '사람들끼리 서로 다 친한' 공무원이었을 때 내가 겪은 공황을 생각하면 지금의 적막이 진심으로 감사해진다. 나는 세상 모든 곳이 다 그런 줄 알았다. 친하지도 않은 사람의 몸을 만지며 그 사람의 몸을 평가하고 그걸 이상하게 생각하는 나만 공황을 겪어야 하는 그런 문화가 당연한 줄 알았다.
그렇지만 아니었다. 내가 올 여름 들어 입고싶던 치마와 원피스를 대여섯 벌 구매한 게 그 증거다. 내가 이걸 입어도 아무도 나에게 뭐라고 할 사람이 없으니까. 이곳에선 그 누구도 내 외모를 평가하지 않으니까. 물론 지갑은 조금 얄팍해졌지만 돈은 건강한 정신으로 다시 벌고, 다른 곳에서 아끼면 된다. 오히려 십몇만 원을 써서 내가 이런 몸으로 걸어다니는 것 자체가 남에게 거슬리는 일이라는 삐뚤어진 자의식을 없앨 수 있었으니 남는 장사가 아닌가?
'어떤 환경에도 흔들리지 않는 자존감'이란 허상의 개념이다. 1년 동안 각기 다른 사람들로부터 50번의 외모비하를 당하니 나는 절대적인 무언가에게 '자존감은 됐으니까 제발 이런 소릴 들을 때 일시적으로 청력이 감퇴되게 해주세요.'라 싹싹 빌었다. 당연히 내 기도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나는 대신 환경을 바꿨다. 환경이 바뀌니까 몇 달에 걸쳐 마음이 천천히 회복되었다.
나는 더 이상 길을 지나다니다 예쁜 옷을 봐도 '어, 저 옷 예쁘네. 근데 나 같은 애가 입어봤자 돈낭비 옷낭비지. 어차피 저거 입고 가도 예쁘다는 소린 못 듣고 왜 이렇게 말랐냐는 소리만 들을걸. 나 같은 애는 감히 입으면 안 되는 옷이야.'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대신 '어, 저 옷 예쁘네. 근데 이번 달엔 옷 그만 사야지...'라는 아쉬움을 갖는다.
그러니 이제는 정상화된 자존감으로 돈을 현명하게 쓸 궁리를 하려 한다. 마른 체형의 스스로를 혐오하느라 시간을 낭비하는 대신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