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솔 Aug 14. 2022

면직에서 취직까지(2)

그날 만난 할머님이 내려주신 축복은 아니었을지


 이것은 부끄러운 고백이자 내가 인정해야만 하는 스스로의 업보이다. 나는 대학교 3학년을 끝마칠 때까지 어떠한 스펙도 쌓아놓지 않았으며 어떤 회사에 들어가고 싶은지, 어떤 직무가 나에게 잘 맞는지에 대한 고민도 하나도 해놓지 않았다. 이때라도 정신을 차리고 제대로 진로를 세웠다면 좋았겠지만 신체의 눈도 고도근시, 마음의 눈(?)도 고도근시이던 나는 내가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스펙을 보지 않는 9급 공무원밖엔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1년 만에 지방직 9급 시험에 합격했다.


 이후로 나는 학교를 졸업하기 위해 임용유예를 걸어놓고 1년 동안을 '예비 공무원' 신분으로 보냈다. 학교는 대충 다니고 알바를 열심히 했으며 노는 시간엔 블로그에 글을 쓰고 책을 읽었다. 사실 취업처가 정해지니 마음이야 편했다만, 이 안도감이 스스로에게 정말 도움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불과 몇 년 전이지만 그 어린 나이에 인생의 가능성이 여기서 마감되었다고 느끼며 끓는 물 속 개구리처럼 보낸 시간이었으니까. 학교에 갔을 때 9급 공무원 합격은 플래카드도 걸려있지 않은(=학교의 아웃풋으로는 쳐주지도 않는) 것을 보며, 나는 전문직과 7,5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동문들의 소식을 부러워만 하던 개구리였다.





 회사에 들어가기로 마음은 정했으나 이후로도 아주 큰 고비가 남아있었다. 그것은 바로 내가 공무원을 그만둔 이유를 '어떻게 꾸며낼지'에 대해서였다. 사실 별 대단한 사연 없고 젊고 머리 잘 돌아가는 나이에 이렇게 살기 억울해서 때려치웠습니다. 시험도 쉽게 붙어서 아까울 것도 없었고요. ...라고 솔직히 털어놓을 수는 없었으니까. '저는 이 회사의 이 직무에서 꼭 일하고 싶어서 공무원을 그만뒀습니다!'라 그럴듯한 이유를 꾸며내야 했는데 차라리 소설을 쓰는 게 낫지 '자소설'을 쓰려 할 때면 그때마다 뇌에 과부하가 걸렸다. 


 급기야는 '아, 차라리 3년 동안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는데 잘 안 되었다고 그래서 회사 취업을 준비하게 되었다고 뻥을 칠까? 어차피 공무원으로 일한 이력은 국민연금 확인서를 떼도 안 나오니까 나만 연기를 잘하면 아무 문제 없잖아?'라는 거짓말을 할 생각도 했다. 어차피 요즘 시험 준비하다가 잘 안 되어서 20대 후반에 신입으로 입사하는 사람들도 많다니까. 나의 내성적인 성격은 위와 같은 거짓말을 꾸며내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아 보였다.


 결과적으로는 내가 공무원을 그만둔 이유를 십분 공감해주는 대표님이 계신 회사에 들어오게 되었다. 안 그래도 연기도 못하고 거짓말을 하면 얼굴에 다 티가 나는 성격이라 걱정했는데, 내가 나로서 솔직하게 지낼 수 있는 회사에 들어온 것이 감사하다. 


  


 

 1편의 마지막은 인스타그램에서 채용 공고를 확인한 것으로 끝을 맺었다. 사람인도 잡코리아도 원티드도 아닌 인스타그램에서 공고를 발견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시에서 기업들에 청년을 신규채용하면 인건비를 지원해주는 사업이 있었고, 그 사업에 참가한 모 기업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내가 팔로우하고 있던 것이다. 지금의 회사도 해당 사업의 홈페이지를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찾아내게 되었다. 내가 향후에 계속 일하고 싶은 산업군에다 내가 염두에 두고있던 직무였다. 근무조건도 좋고, 채용 우대사항에 내가 몇 가지 해당되기도 하고! 이곳에 꼭 지원해야겠다는 느낌이 왔다. 


대표님과 면접을 보던 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면접을 1시간 30분 동안 봤으니까... 스타트업의 면접은 '사람을 확인하는' 자리라더니 그 말이 맞았다. 대표님께서는 일이야 배우려는 의지가 제일 중요하고 그것보단 팀에 잘 융화될 수 있는 사람인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신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공무원을 그만둔 이유를 주효하게 써먹을 수 있었다. 저는 이것저것 배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 공무원일 때도 다른 분들 일을 많이 익혀봤는데요. 거기 계속 있으니까 새로운 일을 배우는 게 무서워지더라구요. 감사하게도 대표님도 공감해주셨다. 


 얌전해보이는 인상과 성격 또한 큰 매력포인트(!)로 다가섰을 듯 하다. 기술 분야의 스타트업이라 다들 공대생인데, 대표님 피셜, 공대생들이라 재미없고 조용하단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간절히 원하던 근무환경이었다. 꼰대 공무원들의 사적이고 무례한 질문(느그 아버지 뭐하시노, 원룸 월세 얼마냐, 부모님한테 용돈 안 드리냐 등등...)에 질려있던 나는 개인의 영역을 서로서로 존중해주는 직장이 절실했다. 

 



 길고 길었던 면접, 혹은 일대일 수다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가 있던 버스에 거동이 불편해보이는 할머니 한분이 올라타셨다. 할머니께선 버스 기사님께 서울역에 도착하면 알려달라 부탁을 하셨다. 나도 마침 집이 서울역 근처라 버스에서 내리기 전에 할머님께 이곳이 서울역이라고 말씀을 드렸다. 그런데 할머니께서도 댁이 서울역 근처라 서울역에 내리신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경기도에서 서울까지 치과진료를 보러 오신 분이었던 거다! (십수년째 단골이라 몇 년 전에 경기도로 이사를 갔지만 아직도 치과는 같은 곳을 다니신다고.)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서울역의 버스 환승센터에 한번이라도 가보셨다면 그곳이 얼마나 지독하고, 복잡하고, 정신없고, 사람 혼을 쏙 빼놓는 곳인지 이해하실 것이다. 할머니께선 댁에 돌아가는 버스 번호는 알고 계셨지만 어디서 줄을 서야하는지 찾지 못하셨다. 할머니가 불러주신 버스번호를 검색해보니 도착까지 20분이 남아있었다. 20분 동안 서서 계시는 건 무리다 싶어 나는 할머니를 정류장의 의자로 안내한 뒤 함께 버스를 기다렸다. 그리고 틈틈이 배차정보를 확인하며 승강장 안내판에 버스가 3분 전에 도착한다는 알림이 뜨자 할머니를 그 자리로 데려다드렸다. 이미 버스를 기다리는 줄이 길게 늘어서있었으나 승객 분들은 거동이 불편한 고령의 승객에게 기꺼이 탑승 순서를 양보했다. 나는 그렇게 할머니께서 무사히 버스에 타시는 걸 확인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아, 오늘치 착한 일 할당량을 채웠다.' 하고 속으로 뿌듯해하기만 했지 그리 대단한 도움이 아니었기에 나 혼자서만 알고 있던 일이었다. 그럼에도 그날 면접을 보고 붙은 회사가 마침 일을 배우는 것이 재미있고, 동료들이 다 좋은 사람이라 이 사람들과 함께 오래 일하고 성취를 내고 싶단 생각이 들게하는 곳인 걸 보면 착한 일을 해서 보답을 받은 거라고 조금 어깨가 올라가도 되지 않나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면직에서 취직까지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