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은 그것을 모르는 젊은이에게 주기엔 너무 아깝다
이전 직장의 동료들 중 30대 중반인 여자사람이 한 분 있었다. 그녀를 A라고 칭하겠다. 다시금 언급하지만 A는 '30대 중반'임에도, 본인이 진심으로 늙었다고 믿고 있었다. 20대는 귀하고 30대는 젊고 40대가 가장 많은 비수도권의 지방직 조직에서 말이다. 혼자서 생각만 했으면 내가 이런 글을 쓸 일도 없었겠지만, A는 꽤 자주 본인이 늙어서 서럽다는 식의 투정을 부렸다. A보다 십수년은 더 산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도 당당하게.
나에겐 A와 동갑인 호적메이트가 있다. 그래서 나는 A의 나이가 왠지 모르게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걸 다 떠나서 고작 30대 중반이 거울을 보며 노화한 얼굴을 한탄하고, 밥이 잘 넘어가지 않는다고 울상짓고, 늙어서 하루하루가 빨리 가는 게 아쉽다고 한다는 게 이해가지 않았다. 그래서 하루는 내가 'A님이랑 나랑 몇 살 차이 난다고요. (왜 나한텐 어리다고 하면서 본인은 늙었다고 하세요?)'라 일침을 던졌더니 A는 그 말에 진심으로 발끈하더라. 그래서 나는 A가 사실은 40대 중반인데 나만 모르는 건가 싶었다.
얼마 전에는 나보다 네 살 어린 친한 동생 B를 만났다. 같이 카페에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B가 갑자기 '헉, 나 진짜 늙었다.'라면서 깜짝 놀라는 것이 아닌가. 그 나이가 늙은 것이면 나는 수의를 알아보러 다녀야 하고, 나보다 더 나이를 먹은 사람들은... (이하생략) 하지만 나는 관대하게 넘어갔다. 나도 B만할 때 내가 이제는 늙었고 가능성이 없는 나이라며 자책한 적이 있으니까.
TV 채널을 돌리다가 TVN의 <유퀴즈 온 더 블록>을 잠깐 보게 되었다. 코로나19가 창궐하기 이전에 촬영한 회차라 제작진들이 거리를 다니는 일반인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주제는 <청춘은 언제라고 생각합니까?> 였다. 사람들의 대답은 제각기였지만 특이점은 공통이었다. 바로 중년의 연배이신 분들은 '아직 몸도 건강하니 지금이 청춘 아닐까'라 답을 하시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은 '내 청춘은 끝난 것 같다.' '10대까지만 청춘이다.'라 답하는 것.
아일랜드 출신의 유명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는 이렇게 말했다. 젊음은 젊은이에게 주기는 너무 아깝다고. 영화 <비긴어게인>의 OST이자 마룬5의 보컬인 애덤 리바인이 불러 국내에서도 흥행한 노래 'Lost stars'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And, God, tell us the reason. Youth is wasted on the young. 신이시여, 왜 젊은이들은 젊음을 낭비하는지 이유를 가르쳐주세요.
위의 것들을 종합해 내가 얻은 통찰이 하나 있다면
사람들은 젊을 때엔 본인이 젊은 줄 모르고 살다가
나중에 이르러서야 젊음을 빼앗기고 싶지 않아한다는 것
이다. 나도 새파랗게 어릴 때는 내가 어린 줄 모르고 살다가 지금에서야 젊음이 주는 건강한 자의식을 한껏 누리려 하고 있다. 몇 년만 지나도 이 시절을 놓친 걸 후회하며 살 게 뻔해서.
사실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며칠전 SNS에서 본 어떤 문장 때문이었다. 정확한 표현이 기억나진 않으나 생각나는 것만 풀어놓아보자면 '젊은 사람이 본인이 늙었다는 말을 하는 것은 본인보다 나이가 든 사람에겐 무례이고, 본인보다 어린 사람에겐 저주가 되는 말이다.'와 같다. 아, 이 문장을 보니까 내가 왜 A처럼 나이 먹지는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는지 그 감정의 엉켜있던 끈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나는 나보다 어린 사람들에게 인생의 골든 타임을 놓치면 정신적 불구가 된다고 공포감을 주는 연장자가 되고 싶지 않다. 대신 나이를 먹어도 각각의 나이엔 그 나이 나름대로의 재미가 있으며 생각이 늙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알려줄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이 글과 관련해 내가 흥미롭게 읽은 기사를 첨부한다.
위 기사의 요지는 뇌의 기능은 20세에 정점을 찍었다가 내려오기는 하지만, 세간에 떠도는 말처럼 나이가 들수록 뇌가 정보를 처리하는 능력이 급감하는 것이 아니며 60세까지는 2,30대와 큰 차이가 없이 유지할 수 있다는 거다. 이 정도면 사람들이 나이를 먹어서 머리가 빨리빨리 돌아가지 않는다고 느끼는 것은 아주 작은 부분만 생물학적인 요인이고 본인이 본인의 한계를 그렇게 단정지었기 때문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요즘 어떤 책이든 읽고 이를 읽은 후엔 책의 내용을 곱씹으며 가만히 사색하는 '습관'을 가지려 노력하고 있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도 습관 심기의 일환이다. 이걸 좀 더 어린 나이에 시도했다면 내 삶이 더욱 풍성해졌겠지 싶은 아쉬움은 늘 존재한다. 하지만 고작 20대 초반에 이젠 머리가 쌩쌩하게 돌아가지 않는다고 느끼던 나의 과거를 생각하면, 모든 일엔 다 때가 있다는 말이 이런 뜻인가 싶다. 내가 나의 뇌 기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려 고군분투를 하는 지금이야말로 모두가 말하는 '때'가 온 것이다.
이것은 같은 실수를 두 번 다시 하지 않기 위함이기도 하다. 지금의 내가 몇년전의 내가 얼마나 어렸는지 몰랐던 걸 후회하듯이,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를 과소평가했던 걸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이런 나를 보고 조금이라도 희망을 얻고 용기를 내는 사람들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에서. 나는 오늘도 부지런히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몸을 움직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