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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솔 Sep 12. 2022

나는 시보떡을 돌리지 않았다

그치만 팀비는 냈다


 나는 시보떡을 돌리지 않았다. 신입 공무원이 시보 기간 6개월을 끝내면 그동안 적응할 수 있게 도와주셔서 감사하다는 의미로 상급자들에게 '돌려야만 한다는' 시보떡을 나는 돌리지 않았다. 시보떡이 국정감사의 도마에 올라가고 행정안전부 장관이 페이스북에 시보떡 관행을 타파하겠다는 글을 올리기 전의 일이었다.


 


 내가 '시보떡 관행'을 알게된 것은 일을 시작한 지 2개월쯤 지났을 때였다. 시보가 해제될 때가 되면 떡이나 피자, 치킨 같은 것을 돌려야 한다고 지나가는 소리로 들은 적이 있었다. 그땐 그런가보다, 싶었는데 6개월을 다 채워가기 직전이 되니 팀의 막내가 의무로 먹을 걸 사줘야하는 문화가 비정상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1살 차이 동생에게도 뭘 얻어먹기 싫어하는 사람인데, 나보다 십수 년을 오래 산 분들에게 적응할 수 있게(마치 이것이 대단한 선의라는 듯이) 감사하다고 주전부리를 사드린다는 게, 돈이 아깝기도 했고 내 상식 선에서 이해가 안 가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게 이상한 줄 깨닫기 쉽지 않다.


 나만 해도 처음부터 시보떡을 돌릴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나의 시보 기간이 끝났다는 공문이 올라오자 같은 곳에서 일하던 분께 '원래 신규들 이때 떡 돌려야 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다. (이 분을 탓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분은 6개월 동안 고생했다고 나에게 맛있는 걸 사주셨다.) 내가 무서웠던 건 후에 내가 어딜 가든 막내소릴 듣기 힘든 나이가 되었을 때, 막내에게 얻어먹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될까봐서였다. 나는 그래서 모 주민센터에 시보 끝났는데도 떡을 안 돌린 애가 있다는 소문이 퍼지길 바랐던 것 같다. 누구라도 단초를 마련해야 이게 부끄러운 문화인 줄 자각할 것 같았으니까.


 그러다가 정말 운명의 장난같이 1주일 정도가 지났을 무렵, 공무원계의 난쏘공이 된 '백설기 시보떡' 글이 인터넷에 올라오게 되었다.



 급기야 국정감사에까지 시보떡이 등장하자 내가 있던 시의 감사과는 부랴부랴 공문을 하달했다. 앞으로 신규에게 시보떡을 돌리게 하는 곳이 있으면 감사과에 적극 신고해달라는 공문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들 앞다퉈 시보가 해제된 공무원들에게 케이크를 사주고, 꽃다발을 안긴 사진을 찍어 업무보고를 올렸다. 역사가 바뀌는 지점에 서있던 사람으로서 그건 많이 웃기고 서글픈 모양새였다. 밖에서 한 마디 해주기 전까지는 아무도 이게 기괴한 관습이라는 걸 모른다는 게.


 그럼에도 과거의 나에게 '악습을 타파하는 투사' 정도의 후한 평가를 내려줄 수 없는 이유는, 나는 이 일이 나의 공직생활에 큰 장애가 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같이 일하는 분들과 다 친하게 지내고, 일도 성실하게 잘하는 나니까 시보떡 하나 안 돌렸다고 나를 삐뚤게 바라보진 않을 거란 자신감이 있었다. 누울 자리 보고 눕는다지 않나. 누울 자리 있는 모두가 눕지는 않겠지만. (사실은 칭찬받고 싶었던 걸지도.)


 실제로 나는 구청에 발령받자마자 팀비로 5만 원을 내라는 공지에 그 돈을 어디에 쓰는지도 모르겠는데 일단 내야만 했고, 이후 한 달 만에 면직을 했으나 내가 팀비로 낸 돈이 남아있는지, 남아있다면 돌려줄 수 있는지 서무에게 물어보지도 못했다. (다른 사람들은 사정을 모르니까 부정하겠으나) 계장은 날 싫어하고 서무는 날 탐탁치 않아하는 곳에서 바들바들 떨면서 5만 원을 받느니 그저 속에 묻어두는 편을 택한 것이다.


 따지고 보면 시보떡에 들어가는 돈(넉넉 잡아 10만 원)보다 팀비 5만 원이 더 아끼기 쉬운 장사(?)였는데 그게 안 되더라. 그래서 나는 아직도 팀비를 거둬서 어디에다 썼는지 그 행방을 알지 못한다. 지금은 그냥 물어라도 볼걸 하고 후회한다. 어차피 나에 대해 좋은 말 안 해줄 사람들에게 내가 너무 많은 신경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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