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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솔 Sep 21. 2022

폭우가 내린 날에 짬뽕밥에 밥이 없다고 화내던 그 사람


1. 

 그 날은 저녁부터 폭우경보가 발령됐다. 전직원의 4분의 1이 비상근무를 서야했고, 나도 비상대기조에 걸려 경보가 해제되기 전까진 사무실에 꼼짝없이 묶인 몸이 됐다. 직원들은 중국음식을 시켰다. 비가 정말로 경보처럼 쏟아지던 저녁이었다. 


 과 사무실엔 출입구가 두 개 있었는데 그것은 정문과 후문의 개념이 아니라 말 그대로 문이 두 개란 느낌이었다. 음식을 시킨 지 오래 지나지 않아 배달기사가 도착했다. 비에 쫄딱 젖은 생쥐꼴을 하고. 직원들이 둘러앉아 식사를 할 수 있는 큰 테이블은 기사가 들어온 문이 아닌 반대편 문 앞에 있었으므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음식을 받아가려고 했다. 그런데 내가 첫 발걸음을 떼기도 전에 A 계장이 말했다. 딱 봐도 20대 초반 같아 보이는 앳된 얼굴의 그에게.


"그거 저기(큰 테이블)로 갖다 놓으세요."


 그는 A계장의 말에 따르는 대신 조금 퉁명맞은 답을 돌려주었다.


"직접 갖고 가시면 되잖아요."


 이 말을 남기고 사무실에서 나간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A계장은 툴툴대기 시작했다. '뭐 저런 게 다 있노?'라는 생각을 육성으로 내뱉길 주저하지 않는 건 덤이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는 멀리서 봐도 스물다섯을 넘겼다곤 생각되지 않는 앳된 얼굴을 한 배달기사였다.


 더 큰 문제는 잠시 후에 터졌다. A계장이 짬뽕밥을 시켰지만 짬뽕 국물만 오고 밥은 오지 않은 것이었다. 이건 명백히 중국집의 실수가 맞았다. A계장은 어떻게 짬뽕밥에 밥이 없을 수가 있냐며 또다시 궁시렁거렸다. 구청에 6개월을 넘게 있었으면서 탕비실에 햇반이 쌓여있는 걸 모르는 사람처럼, 다른 계장님이 햇반을 갖고 와서 먹으라고 했지만 그 말은 못 알아듣는 사람처럼, 중국집을 욕하는 걸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가 기어코.


"야. 전화해서 밥 없으니까 밥 가지고 오라고 해라."


 맞은편에 앉아있던 8급 서무에게 위와 같은 명령을 내렸다. 폭우 경보는 해제되지 않았고 하늘이 뚫린 것처럼 비가 오던 날에 말이다. 


 결국 서무는 중국집에 전화를 했고 A계장의 없어진 밥은 다른 과에 잘못 배달이 간 것으로 문제가 해결되었다. 그토록 기다리던 밥을 받은 A계장은 그제서야 머쓱해지기 시작했는지 주변의 눈치를 살폈다. 앵무새처럼 어떻게 짬뽕밥을 시켰는데 밥이 안 올 수가 있냐는 말만 하면서.


 


2. 

 구청 건물 3층에는 어르신들이 바리스타로 근무하는 카페가 있었다. 같은 구의 시니어클럽과 연계해 운영되는 카페였다. 하루는 그곳에서 일하시는 할머님 한 분이 우리 과 사무실에 찾아와 부탁을 하나 하고 가셨다. 음료를 주문하고 돈을 내지 않고 간 손님이 있는 모양인데, 혹시 여기 직원이면 이야기를 좀 전해달라는 부탁이었다. 할머님이 돌아가시자 마자 A 계장은 사무실이 다 울릴 만큼 큰소리로 말했다. 


"야, 거기 커피는 돈 받고도 안 마신다고 해라~"


 이걸로는 부족했는지 한 번 더. 야, 거기 커피 우예 먹노. 돈 받고도 안 마신다고 가서 얘기해라~ 


 나는 그때 소시오패스가 별건가, 라는 생각을 했었다. 물건을 팔고도 돈을 받지 못해 안절부절못하는 할머니를 보며 '당신이 파는 물건은 돈을 받아도 안 가진다'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을 그 어떤 단어로 달리 표현할 수 있을까?



3.

 내가 일을 그만두겠다고 알리자 내가 면직을 하는 이유를 나름대로 추측한 A계장의 답은 걸작이었다.


"우리 딸은 있잖아. 솔직히 살면서 고생을 안 해봤다. 내가 집도 전세로 다 해줬고, 알바도 한번 안 해봤다. 학교다닐 때 알바 해보고 싶다길래 허락해줬는데 하루를 나가더니 못하겠다고 하더라. 우리 딸도 공무원이다? 근데 우리 딸도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힘든 줄 알고 맨날 엄마 나 너무 힘들어 전화하고 그런다."


 아, 이 사람은 본인 자식은 음식배달 같은 일을 할 리 없다고 믿으니까, 본인은 늙어서 시니어 카페 같은 곳에서 일할 리 없다고 믿으니까, 그럴 수가 있던 거구나. 



4.

 A계장은 젊을 때 서울로 파견근무를 나간 적이 있다고 했다. 거기서 같은 팀에 있던 직원과 사사건건 부딪혔는데, 계장은 그 이유를 '본인은 지방대를 나왔고 그 직원은 인서울을 나왔기 때문에 나를 무시한 것'이라 추측하더라. 그 직원이 대놓고 A계장의 학교를 무시했다는 소린 않았다. (만약 그런 일이 있었다면 누구보다 크게 얘기했을 사람이니까.) 그러니 그건 그냥, A계장의 자격지심인 거다. 


 배달기사와 중국집 사장과 바리스타 할머니는 무시해도 되지만 본인이 지방대를 나왔다고 무시당하는 건 추호도 참을 수 없는 사람. 이 문장에 담긴 모순을 A계장이 언젠가 깨닫기는 할까?




5.

 나에 대해서도 A계장은 '서울에서 대학 나와놓고 기안 하나 똑바로 못쓰는 9급'이라 헐뜯고 있을지 모른다. 사실 A계장이 보자마자 나를 불러 이게 무슨 소리냐고 혼을 냈던 기안은 A계장이 일전에 결재한 기안에서 숫자만 바꾼 것이었는데도, A계장이 눈치를 채지 못한 건 그땐 기안을 읽지도 않고 결재를 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전임자가 일하던 대로 똑같이 일했는데도 A계장이 나를 혼낸 건 전임자가 있던 6개월 내내 기안을 읽어보지도 않고 결재를 했기 때문이었다. 


 

6.

 그럼에도 나는 A계장의 딸이 부럽지도 않고 A계장처럼 부끄러운 말을 내뱉으며 살고 싶지도 않다. 음식점에서 직원들이 바쁘게 뛰어다니다 실수를 해도 위생상의 문제가 아니면 굳이 컴플레인을 걸지 않고, 사회적 약자들에게 수익이 돌아가는 사업엔 흔쾌히 돈을 내는 스스로의 인생이 훨씬 더 가치있다고 느끼니까 그런 걸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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