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느질
오늘은 일요일이다.
그동안의 일요일은 찔끔 겨우 한 장 문제집 풀어두고 (그조차도 하지 않는 날이 더 많았지만), 친구의 전화벨이 울리면 바삐 준비하고 카드 챙겨 나가는 날이었다. 등교 시간에 조차 느긋한 네가 그리도 바삐 움직이는 것부터 못마땅한 엄마가 되었다. 머릿속에 굳어진 그 못마땅한 자국은 쉽게 변하지 않았다. 예측된 루틴 속에 머물러 있던 너를 부드럽게 대하는 것에 한계를 느꼈다. 결국 참지 못하고 큰소리 내게 되고, 그에 돌아오는 반응에 또 후회로 자책하며 힘겨워하는 시간들이 반복되었다. 내가 주말을 두려워하게 된 이유가 되었다.
오늘도 비슷한 루틴이 예상되는 일요일이다. 오늘 하루는 어찌 흘러갈까. 예상대로 흘러가게 둘 수는 없다. 작은 변화라도 가능하다면 시도해 보자.
"○○, 오늘은 오전에 영어 좀 하고
이불 꿰매는 거 도와주는 거, 어때?
이불 먼저 할래? 영어 먼저 할래?"
"이불 먼저 할게요~"
녀석은 어릴 때부터 바느질을 좋아했다. 자그맣고 귀여운 손으로 삐뚤빼뚤 시작된 바느질은 녀석에게도 작은 성취를 안겨주었고 그걸 바라보는 난 흐뭇했다. 네가 바느질하는 하는 모습을 난 좋아하게 되었다. 내가 바느질할 때 느끼는 심리적 안정감을 녀석도 느끼겠거니... 하면서 흐뭇한 심정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꼭 공부가 아니더라도 무언가 한 가지에 집중하는 시간을 갖게 해 주고 싶었다. 오늘은 일부러 바느질 거리를 준비해서 녀석에게 건네 보았다. 내가 잠깐 마무리할 수도 있었지만 일부러 남겨둔 것이다. 흔쾌히 녀석이 받아주었다. 너의 마음이 바느질로 조금 더 진정되길 바라는 엄마 마음이었다. 알아주지 못해도 괜찮다.
오늘은 녀석이 나와의 약속을 잘 지켜주었다. 바느질 마치고 중학생 수업을 진행하는 동안 녀석은 약속했던 영어 학습량을 훌륭히 해냈다. 녀석이 결과물을 내게 보여주며 뿌듯해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 그거야~ 엄마가 바라는 것은 '공부'자체를 바랐다기보다 그 행위를 통해 네가 얻게 되는 뿌듯함, 성취감, 만족감 등 긍정의 감정을 충분히 느끼고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찾아가길 바란 것이었어. 너의 밝은 표정에 내 마음도 환해졌다.
녀석은 조금 더 당당하게 내게 말했다.
눈치를 슬쩍 살피며 건네던 그동안의 말과는 분명히 다른 눈빛이었다.
"엄마, 친구들 만나고 와도 돼요?"
(당당한 요구, 너도 괜찮은 느낌이지?)
"그럼~ 근데 너무 늦지 않았으면 좋겠어."
"친구 중에 ♤♤이가 일찍 들어가더라고요. 그때 저도 들어올 수 있을 거예요"
(세부 설명까지 이어지는 대화, 변화가 시작되었다)
조금 더 명확한 시간 약속은 아니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안심이다. 너와 두 세 마디를 넘어 서너 마디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것도 편안한 일상의 대화가 말이야. 날 선 감정이 빠진 대화였다. 이게 이렇게 낯설고 귀한 것이 될 줄이야.
잠깐 나눈 카톡 속에서도 녀석은 내게 "설명"이란 것을 하고 있었다. 단답형 답변이 아니었다. 녀석도 노력을 내게 보여주고 있었다. 난 그 노력을 알고 있고 진심으로 고맙게 여기고 있다.
이따 들어오면 안아줘야겠다.
녀석은 오늘 약속을 지켜서 들어오게 될까?
아니.. 혹시 조금 늦더라도 감정을 쉽게 올리지 않으련다. 그래야 다음이 있을 것이다. 어렵게 찾은 우리의 편안함을 지키기 위해선 나도 양보와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훈육보다 지금은 엄마의 끝없는 지지가 필요할 것이다. 너의 마음이 단단해질 때까지 엄마도 노력할게~
녀석은 귀가 시간이 약간 늦어지자 전화를 해서 날 안심시켜 주었다.
"엄마, 지금 가고 있는 중이에요~"
"그려~오늘 많이 추웠지..."
"좀 춥더라고요~"
"그려, 얼렁 들어오자~"
"네~"
집으로 돌아와 씻고 녀석은 공부방에 들어가 수학 목표량을 마쳤다. 밤 11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난 마음의 안정을 찾았고 더 현명하고 포근한 엄마가 되고 싶어졌다. 예전의 나를 되찾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