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이다. 초등학교 4학년인 작은 아이는 10시 약속 있다며 친구와의 몇 차례 통화 후 집을 나섰다. 요즘 녀석은 주말마다 군에서 운영하는 청소년 수련관으로 출근을 하는데 친구들과의 시간을 즐거워하는 듯 보여 흐뭇하다. 그곳에서 컴퓨터로 게임도 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동영상도 찍어서 유튜브에 올리면서 나름 시간을 알차게(?) 보내고 있다.
남편은 치매 중기로 접어드신 어머님을 뵙고 점심 한 끼 사드리고 오는 것으로 일요일 시간을 보내고 있다. 첫 날, 걷기엔 좀 먼 거리를 걸어서 어머님 좋아하시는 순댓국을 사드리고, 어머님 운동도 시켜드린 것에 나름 뿌듯해하기도 하면서 몇 주 다니더니 근처 식당 한 번씩 도장 깨기 하고는 갈 때마다 '오늘은 뭐 먹지?'를 고민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요는 오늘도 역시 어머님 계신 곳으로 출근했다는 것이다. 메뉴 고민은 그 사람의 것이지 내 고민은 아니란 것이다.
문제는 중1 큰 녀석. 요녀석만이 나의 고민거리가 된지 좀 되었다. 오늘도 10시 가 다 되어 겨우 눈을 뜬 녀석은 내가 10시 수업을 마치고 12시에 나오니 보이질 않는다.
"○○, 어디야?"
"동정 놀이터요~"
"엄마한테 카톡도 안 남기고~!!"
"아, 맞다.. 카톡이 있었지?"
(수업 중이어서 그냥 인사도 않고 나갔다는 뜻이다.)
"그럼 언제 들어올 거야?"
(모레부터 당장 시험인데 나가면 어떻게 하냐는 둥, 더이상의 불필요한 대화는 거두절미하고 용건만 묻는다.)
"저녁 먹기 전까지 갈게요~"
"그럼 5시까지 와~"
"네~"
보통 주말에 놀러 나가면 친구들과 저녁까지 해결하고 8시 즈음 들어오곤 했었는데, 저녁 먹기 전에 오겠다는 말에 반가움이 앞섰다! 귀가 시간을 좀 더 앞당겨서 공부 시간을 확보했어야하나.. 하는 생각은 전화를 끊고 나서야 떠올랐다. 멍충이같으니라구! 평소의 행태에서 조금 벗어난 녀석의 답변에 그만 혼이 나가버렸다.
'평소보다 일찍 들어온다잖아~'
그동안 너무 몰아치기만 했었나.. 하는 생각에 어젯밤에는 가족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녀석이 들을 수 있는 큰 소리로 기분 좋게 한마디 날려줬다.
"우쭈야, 형아한테 엄마가 공부 안 한다고 혼내기만 했잖아. 근데 시험 날짜가 다가올수록 클리어, 클리어~~ 하루하루 벽돌 깨기 하듯이 조금씩 조금씩 목표량을 깨오더라~"
"엄마가 괜히 화냈었네~~~"
"근데 엄마가 화 안 냈어도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옆에서 듣고 있던 문제의 큰 아들님 아주 자신 있게
"네~!!" 해버린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가정'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야~"
어젯밤에 칭찬 한마디 괜히 해줬나...
요 녀석이 12시도 되기 전에 나가서 5시에 온다면...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하면서 보내는 건 아닐까...
그 정도는 여유 부려도 된다고 판단한 걸까...
더 일찍 와서 공부 시간 좀 확보하라고 할까...
별의별 경우의 수로 머릿속을 채우는 사이 녀석을 그냥 확 믿어보기로 했다.
국어도
사회도
도덕도
영어도
과학도
문제집 한 권도 풀어보지도 않고 오로지 교과서만 공부하고 있는 녀석!
문제집이라곤 오로지 수학 문제집..
그것도 지가 좋아하는 딱!한!권 달랑 풀고는 저리도 여유다~
알 수 없는 녀석이라고 늘 생각했었지만 녀석을 끌고 가 우물가의 물을 벌컥벌컥 들이키라고 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나마 교과서라도 챙겨 보았으니,
대충 마무리 잘하고 있다는 긍정의 답변을 들었으니,
난 그냥 기다릴 뿐이다. 결과를 보면 본인도 생각이 달라지겠지.. 할 뿐이다.
그런데 이상하지?
녀석의 표정을 볼수록 나도 안심되는 건 뭐지?
그 표정..
그냥 자신감이라고 해석해 버릴까?
그러고 싶다...
너와 긴 줄다리기의 팽팽한 끈을 놓아버렸다.
내가 너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너의 길은 너만이 개척할 수 있을 것이다.
대신 언제나 도와줄 준비를 하고 지켜보리라.
너무 길고 험하게 돌아오긴 했지만
적당한 거리에서 너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우리..
아마도 그 시간이 서로에게 필요했을 것이다.
그렇게 믿자~
너를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