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 나
결혼을 하면서 그녀와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그녀는 큰아들을 내 옆자리로 내어준 우리 어머님이시다. 결혼이란 관계가 맺어주지 않았다면 결코 가까이 사귀고 싶지 않은 유형이라고 생각하게 된 바로 그 여인이다. 내게 가장 사랑하는 큰 아들을 빼앗겼다고 생각하신 걸까. 결혼 전 인사 드리러 방문했을 때 손님 대접받을 땐 몰랐던 까칠하고 불합리한 모순의 면모가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명절이나 시댁 행사가 있어서 모일 때면 남편에게 꼭 물으셨다.
아침밥은 먹었냐..
안 먹었으면 차려줄 테니 먹어라...
처음 몇 번은 그냥 어미로서의 아들을 향한 걱정스러운 마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반복하여 듣다 보니 어느 때부터는 아침밥도 안 차려주는 며느리에 대한 타박으로 들리기 시작했다. 그런 생각으로 변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먹지 않겠다고 하여 나 혼자만 아침을 먹는 것인데 억울함도 함께 쌓여 갔다.
그곳에서는 야채 써는 거 하나부터 어머님 방식과 맞지 않으면 지적을 당했다. 어머님 주방에서 뭘 도와드리고 싶은 맘이 생기질 않았다. 큰 아이가 태어났을 때는 3살 때까지는 길러주신 다는 걸 몸조리 끝나고 얼마 있다 데리고 가겠다 하니 못마땅한 표현을 대놓고 하셨다. 둘째를 가졌을 때는
"걔가 둘째라고 잘도 맡겨 놓겠다!"
며 서운한 기색을 여과 없이 토해내셨다. 영문도 이유도 납득이 안 되는 화를 언제나 받아내야 했다. 합리적인 이유나 타당한 근거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 맘속에서 존경은 고사하고 따뜻함이나 편안함이 자리 잡을 리가 없었다.
엄마가 일찍부터 뇌졸중으로 병상에 누워 계셔서 대학 졸업하자마자부터 병시중을 했던 나를 유난히 이뻐하셨던 외숙모도 "우리 윤정이, 우리 윤정이"하시며 애틋하고 안타까움을 전하셨고, 가끔 뵙는 당숙모께서는 "우리 윤정이는 똥도 버리기 아깝다"라고 하셨을 정도였다. 결혼 전엔 칭찬만 들어오던 나로선 이런 대우를 받는 것이 당황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내적 자신감으로 충만했던 그때 당당하게 무시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고부'라는 관계에서 오는 묘한 분위기는 점점 나의 상냥함을 빼앗아갔고 꼭 필요한 말 말고는 섞고 싶지 않다는 감정까지 끌고 갔다. 어머님과 두세 마디 이상 섞고 나면 이상하게 기분이 언짢아졌다.
한 번은 시댁에서 내가 좋아하는 깻잎 반찬이 맛있어서 (사실 시댁 음식이 내입에 딱 맞는 건 아니었지만 그나마 먹을만하여) 맛나게 먹으며 맛있다는 칭찬을 버무려 어머님의 기분을 좋게 해 드리고 싶었다. 엄마가 해주던 것과는 다른 방식인데 맛나다고 했더니, 그 당시 누워 계셨던 엄마는 음식 솜씨가 좋았냐고 물으셨다. 엄마가 해주는 것은 뭐든 다 맛있었다고 하니 평생 잊지 못할 서글픈 말을 내 가슴에 꽂아주셨다.
"그런 거 안 배우고 뭐 했냐"는 것이다.
휴우~ 말문이 막힌다는 것은 이럴 때 쓰나 보다. 엄마는 내가 대학 1년 때 1차로 대학 3년 때 2차로 뇌졸중으로 쓰러지셔 못 일어나시고 계신 상황이었다. 학교 다니는 학생으로 그런 걸 배울 기회가 없었다고 항변할 이유조차 몰랐다. 할 필요도 없었다.
하나하나 나열하기에도 민망한 말들이 많은 세월을 거쳐가며 오갔다. 점점 마음의 문은 닫혔고 형식적인 관계만 남은 듯 보였다.
그러다가 아버님께서 먼저 세상을 떠나시는 일을 겪게 되었다. 한평생 아버님께 의지하시던 어머님은 갑자기 상태가 안 좋아지시기 시작했다. 급기야 최근 1~2년 사이 치매 판정을 받으셨고 눈빛은 흐려지셨다. 같은 말을 반복하시고 같은 질문을 반복하신다. 판단력은 흐려지시고 격한 감정은 조절하기 힘드셨다. 이것 만지던 손으로 저거 주무르시고 행주 만지던 손으로 음식 만지시는 것은 여전하시지만 뭘 요리해서 드시는 일에 흥미를 잃으셨다. 그래서 일주일마다 큰 아들이자 나의 옆에 남자가 어머님을 방문하여 상태를 살피고 밥 한 끼 사드리는 일이 시작되었다. 그때마다 난 국 한 가지씩 반찬 한 가지씩, 때론 카레나 닭죽 같이 간단히 데워 드실 수 있는 것을 보내드리는 것으로 최소한의 역할을 하고 있다.
마음에서 떠난 지 오래였지만 안타깝게도 약한 모습을 보게 되니 내 마음도 서서히 변하고 있었다. 이제는 돌봄이 필요하신 분으로 인식되었다. 오랜 기간 맘속에 자리 잡았던 미움과 원망이 언제 사그라들었는지도 모르게 사그라들었다. 그 첫 단추는 카레였다.
아버님 돌아가시고 적적하실까 하여 남편이 시댁을 방문하던 첫 주 난 카레를 준비했다. 남편이 돌아오고 어머님의 전화를 받았는데 카레를 아주 맛있게 드셨다며 따. 뜻. 하. 게. 인사를 건네주셨다. 순간 어머님으로부터 처음 듣는 따뜻한 마음의 소리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이게 무슨 일이지 싶었다.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신 지금. 지난 일요일 어머님과 점심을 먹고 돌아온 남편은 내게 말했다.
"이렇게 맛있는 거 해줘서 윤정이한테 고맙다"고 전해달라고 하셨단다. 짧게 몇 마디 건네는 내 남자의 말속엔 그동안의 모질었던 세월에 대한 남편으로서의 미안함과 고마움이 담겨 있었다. 난 어머님의 마음보다 잘 표현할 줄 모르는 이 남자의 마음을 받은 것에 감사했다.
이렇게라도 서로 마음을 확인할 수 있어서 좋네요. 남편 마음도 어머님 마음도 앞으로 또 어떤 방향으로 변할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모두에게 진심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