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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하루살이 Jun 19. 2024

진심이 아름다움을 배웁니다

책 메모 속의 나

아이들이 자란다. 오래전 그리도 애착을 가지고 버리기 아까워 집 한 자리를 내어주었던 것들과 이제 안녕을 고하기로 했다. 어릴 적 가지고 놀던 로봇들, 학교 일과 시간에 만든 것들 등등.. 녀석들본인들의 공간이 복잡해지자 나의 결정을 따라 주기로 했다. 큰 녀석이 결정하니 작은 녀석은 형 따라 순순히 따라준다. 고마운 일이다.


1년 전까지만 해도 절대 안 된다던 큰 녀석이 이제 좀 자란 결과인 걸까. 뿌듯하기도 하면서, 집이 좁아서 너희들의 추억을 보관할 수 없으니 이리 처분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도 포함된 복잡한 심정이 섞여있다.


이것저것 여기저기 들어있던  몇 가지 아이템만 처리했는데도 가장 큰 용량의 쓰레기봉투가 금세 차올랐다. 이 모든 것에 마음을 두었었는데 어느새 넌 자라고 있었구나.


한 번은 학기 초  <내가 가장 슬펐던 적은?- 장난감을 버렸을 때>라고 적은 글을 보고서 가슴이 철렁했던 적이 있었다.  나름 상의하고 버린 것 같았는데 녀석은 그게 아니었나 보다.  녀석감정이 최대한 다치지 않으면서 녀석의 물건을 어찌 처분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했다.  결국엔 '당분간 그냥 두자'로 가닥을 잡고 때를 기다리기로 했었는데 도저히 올 것 같지 않던 때가 오긴 하는구나.


장식장을 정리하던 중에 책 한 권이 눈에 띄었다.

피천득의 <인연>이다.

언젠가 나의 책 중에서도 너무 오래된 책이나 다시 펼칠 거 같지 않은 책들을 처분했던 기억이 있는데. 남겨진 것을 보니 궁금해졌다. 선물로 받았다거나 담을 또 기약한 약속이거나...

첫 장을 펼쳐 보았다.


아~~~

그때의 그 간절함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그동안 잊고 있었다.

내가 널 얼마나 기다렸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했었는지...

그 짧은 글 속에는 나의 영혼이 숨 쉬고 있었다.

잊고 있던  임신과 출산 과정이 떠올랐다.


다시금 깨닫는다.

진심이라면 어디에서든 어떤 상황이든 빛이 나는 거구나. 쓰레기봉투 앞에서라도.


~ 2011. 12. 7. ~

너를 갖게 되고
다시 이 책이 보고 싶어 졌다.
몇 군데 서점에서 찾지 못하다가
인터넷에서 사게 되었다.
예전에 읽어 보지 못했던
수필도 섞여 있는 듯하다.

사두고는 한동안 펼쳐보지도 못했다.
몸이 허락 질 않았고
나중에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오늘은 평정심으로 돌아온 기분이다.
편안하게 책을 펼쳐본다.

역시~
너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들이다.
소리 내어 읽지 않더라도
너에게 전해진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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