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즐거운 나의 집>은 과연 어디인가
들숨과 함께 노래를 뱉어낸다. 불분명하던 풍경이 천천히 넓어지더니 이내 커다랗고 아름다운 들판으로 나를 데려간다. 그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 한 사람이 있다. 묵직한 다리를 땅에 밀착시키고 나지막하게, 그러나 강하게 힘주어 얘기하는 것 같다. 악기들과 코러스는 그를 감쌌다가 부드럽게 흩어지는 바람, 구름, 빗물과 들풀처럼 느껴진다. 선언과도 같은 몇 개의 문장이 나에게 되묻는다. 우리들의 <즐거운 나의 집>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나는 이제 집으로 갑니다
내가 아니면 불이 꺼져있는
어제 저녁에 설거지 그대로
나는 이제 집으로 갑니다
내가 아니면 창이 열릴 일 없는
오늘 아침에 이부자리 그대로
중학교 때부터 독립을 꿈꿨다. 어쩌면 늘 언니와 같이 방을 썼기 때문일 수도 있고 ‘잠은 집에서’라는 모토를 가진 아버지 덕에 단 한 번도 친구네서 잠을 잘 수 없었던 게 원인일 수도 있다. 친구의 부모님이 허락을 구해본 적도 있지만 아버지는 완강하게 거절했고 밤 11시가 넘도록 무리하게 버텼던 열아홉 살 언니의 시도 역시 실패로 돌아갔다. 늦은 밤 아버지 손에 이끌려 집에 돌아온 언니의 종아리는 다음 날 퉁퉁 부어 있었다. 나는 언제나 나만의 방을 갖고 싶었고 ‘어른’이 되면 당연히 부모님과 떨어져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 가족은 사이가 좋은 편이었지만 나는 가끔 답답했다. 한 사람이 집안의 모든 룰을 정하는 것 역시 점점 불공평해 보였다.
스물네 살에 친구와 함께 신대방역 근처 옥탑방을 구했다. 보증금 300만 원에 월세 30만 원, 방 하나로 된 구조물에 샌드위치 패널과 싸구려 새시로 만든 벽을 덧대어 부엌과 화장실을 급조해 놓은 집이었다. 어렵게 모은 돈에 설레는 마음을 보태어 계약을 완료했다. 그제야 부모님께 이 사실을 어떻게 알려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차일피일 미루다가 상대적으로 편했던 어머니에게 먼저 말을 꺼내자 아버지에게 네가 직접 말하라고 하셨다. 이사 가기 전날, 나는 저녁식사를 마치고 거실에서 TV를 보던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아버지, 저 내일 나갑니다. 친구와 신대방역 근처에 집을 구했어요.”
잠깐 나를 가만히 쳐다보시던 아버지는 다시 TV로 눈길을 돌리며 알았다고 하셨다.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에 아버지는 차로 데려다주신다며 소소한 나의 이삿짐을 날라 주셨다. 운전을 하던 아버지의 옆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나의 독립은 그렇게 고요하게 시작되었다.
나는 이제 집으로
나는 이제 집으로
나의 몸을 누일 집으로
나의 몸을 누
나의 몸을 누일 집으로
나는 이제 집으로
나는 이제 집으로
나는 이제껏 몇 개의 집을 거쳤을까. 기억이 가물가물한 어린 시절과 이 집 저 집 친구들 집을 전전하던 스무 살 시절을 제외하고 나니 총 열세 개의 집이 기억 속에 존재한다. 어떤 집은 휴식이 되어줬고 어떤 집은 사람들로 북적였으며 또 다른 집은 반려동물과의 추억으로 가득했다. 잠만 자고 나가는 생활로 외롭게 만든 집이 있고 여기저기 손보고 단장하며 정성을 들인 집이 있었다. 같이 살던 친구와 크게 싸워 침묵이 흐르던 집, 밖에서 훔쳐보는 서늘한 시선에 불안이 들어찬 집도 있었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곰팡이와 고드름이 번갈아 등장하던 집에서 포근한 햇살에 눈을 뜨게 되는 집으로 이사했던 첫 아침의 감동을 잊지 못한다. 이 모든 집들은 당연하게도 나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고 친구들과 나는 각자의 집을 오가며, 그렇게 서로를 챙기며 살아왔다.
나와 친구들처럼 살아가는 1인 가구의 수가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단다.
2021년 통계청이 발표한 1인 가구의 비율은 31.7%(2020년 조사 기준)에 달한다. 열 명 중 세 명 이상이 혼자 살고 있다는 얘기다. 연령대별 비중은 20대가 19.1%로 가장 많았고 30대가 16.8%로 2순위였다. 1인 가구 구성원들은 전반적인 사회 안전에 대해 25.1%는 불안, 42.5%는 보통이라고 답했고 범죄에 대해서는 42.8%이 불안, 30.6%가 보통이라고 응답했다.
2022년 현재, 대한민국의 인구는 감소하고 있지만 가구 수는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법과 세제는 혈연 가족 중심으로만 돌아간다. 혼자 사는 사람이 이렇게 늘어난다면 이제껏 가족 단위로 해결했던 문제들을 국가나 지역사회가 수행해야 하지 않을까? 정부는 가계 단위가 아니라 개인 단위의 삶의 영역이 확대되고 있음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그에 걸맞은 제도 변화를 연구해야 할 것이다.
2005년 호주제가 폐지되면서 개정된 민법에는 ‘호주’가 빠진 부분에 ‘혼인과 혈연’이 들어섰다. 이를 벗어나는 형태의 가족들은 배타적 차별을 받으며 사회적 보호망 밖으로 쫓겨난 것이다. 여전히 남아있는 부성 우선주의 원칙을 폐기하고 가족의 범위를 사실혼과 비혼·동거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건강한 가정’과 ‘건강하지 않은 가정’을 구분 지을 수 있는 건강가정기본법의 개정과 생활동반자법 제정이 절실하다. 더 이상 결혼이라는 제도 밖에서 서로를 돌보면서 실질적인 가족생활을 하는 이들을 밀어내선 안 된다. 새로운 제언과 이를 실행할만한 정책대응이 없다면 개인 중심 사회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은 점점 커지기만 할 것이다. 저출생 고령화, 노인 빈곤, 1인 가구 대상 범죄의 증가 등은 절대 개인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다.
언젠가부터 나는 얼큰하게 술에 취한 밤이면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을 반복했다. 나의 집에서조차 그 문장을 내뱉었다. 그것은 그날 아침 설거지를 그대로 두고 나왔던 집만 얘기하는 게 아니었다. 어디에 있는지, 어떤 모양인지, 어떤 냄새와 질감 인지도 알 수 없다. 그것은 물질로 실재하는 집만이 아니라 내 한 몸 누일 곳이면서 동시에 안전하고 평등하며 온전히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있는 이상향을 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직장에서, 거리에서, 인간관계 속에서 불안정하고 위태로운 우리들이지만 적어도 그 안에서만큼은 편안하게 숨 쉬며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동시에 나의 고민에만 갇히지 않고 타인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스스럼없이 풀어놓을 수 있는 시간이 되어줄 것이다. 삶을 살아내는 모든 이들에게 그런 구석 하나씩은 꼭 존재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고 바라본다.
*모호 프로젝트 | https://linktr.ee/mohhoproject
(음악가 | Singer-Song Writer | 밴드 '호와호')
2022년 10월 24일, '즐거운 나의 집'을 포함한 정규 앨범 <Sauce, Kite, Lake>가 발매되었습니다. 각종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창원 노동사회교육원, <연대와 소통> 65호(2022년 가을호)에 전게(前揭)된 글입니다.
*브런치 배너사진 : az4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