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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이 Aug 15. 2023

창백한 푸른 점의

점의 점의 점



61억 킬로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촬영한 지구의 사진. 태양 반사광 속에 있는, 파랑색 동그라미 속 희미한 점이 지구이다. - '창백한 푸른 점' 나무위키




나는 꾸준히 아등바등의 아이콘으로 살고 있다.


아등바등의 아이콘이라는 타이틀은


1. 별 게 아닐 일도 확대해석하고 걱정하기

2. 남들보다 뒤처질까봐 전전긍긍하기


의 심리 상태와


1. 몹시 노력하는 것치곤 딱히 잘되지 않기

2. 굉장히 걱정하는 것치곤 그다지 망하지도 않기


의 결과를 모조리 만족해야 얻을 수 있다. 나는 이 조건을 30년이나 충족해 왔다.


그리고 나는

창백한 푸른 점을 보았다.


우주는 넓고

지구 옆에는 달이 있고

금성과 화성이 있고

더 멀리엔 태양도 있고

또 더 멀리엔 깐따삐야도 있다는 것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지만

이 사진을 처음 봤을 땐 좀 놀랐다.


보이저 1호가 포착한 지구는 해변에 널린 모래알보다도 작았다.

그 사진은 내 타이틀에서 두 글자를 지웠고

'등등'은 용케 살아남았다.

손아귀가 아프게 움켜쥐고 있던 삶은 갑자기 '기타 등등'에 편입되었다.


우주에는 깐따삐야가 있고 해왕성이 있고 기타 등등이 있고

지구에는 바위가 있고 능소화가 있고 기타 등등이 있고

동물에는 고래가 있고 얼룩말이 있고 기타 등등이 있고

사람에는,

한국인에는,

오늘 머리도 안 감고 외출한 사람에는,


몇 개의 체를 더 거쳐야 내가 나일지 가늠하다가

그냥 기타 등등의 삶을 인정했다.


위대한 척하는 우리의 몸짓, 스스로 중요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우리의 믿음, 우리가 우주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망상은 저 창백한 파란 불빛 하나만 봐도 그 근거를 잃습니다.


칼 세이건은 말했다.

창백하게 찍혀 있는 하나의 점은 칼 세이건보다 더 많은 말을 했다.


나는 무한의 체로 분류해도 끝나지 않을 만큼 고유했으나

결국에는 창백한 푸른 점의, 점의, 점의 점이었다.




각자의 인생은 저마다 다르나

그러므로 모두 보통의 삶을 산다.

대단해봤자 그렇고, 하찮아봤자 그렇다.


"넌 특별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존재니까."


'나에게는.'이라는 조건을 붙였다면 완벽했을 문장이나

사람들은 자주 그걸 생략해서 전체를 망친다.


특유하므로 특별할 거라는 착각은 세상의 자전축을 자신에게로 끌고 온다.

자전축이 너무 많은 세상은 어지럽게 돈다.  


'위대한 척하는 우리의 몸짓, 스스로 중요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우리의 믿음, 우리가 우주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망상'은 규칙과 도덕을 지근지근 밟고

어쩌다가 다른 사람도 밟는다.

우연이거나, 작정을 했거나.


대안들은 모두 복잡하다.

빠져나갈 구멍, 대체될 희생자와 면피용 발버둥은 숨 쉬듯 제기되고 사장된다.


내가 고유하면 남도 고유하고

내가 평범하면 남도 그러하며

혹시라도 내가 특별하면 남도 그렇다고.

해가 있고 내가 있으면 어쩔 수 없이 그림자가 생기고

그림자가 없는 동안엔 세상이 깜깜할 거라는

당연한 사실과


그걸 도무지 받아들일 생각이 없는 사람들.


지옥이라는 점묘화는 그렇게 완성된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080814550000950?did=NA



https://www.mk.co.kr/news/society/10807600



https://www.donga.com/news/Society/article/all/20230810/120660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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