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했던 모든 그녀들에게

by 조이

결혼식장에서 하염없이 우는 여성을 본 적 있나요?


“야, 쟤 또 운다. 사진 찍자.”


찰칵, 찰칵. 남의 잔칫집에서 눈물, 콧물을 동시에 짜내는 수상한 30대 여성. 울고 있는 피사체를 둘러싼 핸드폰 카메라 렌즈가 몇 번을 깜빡이는 줄도 모르는 채로, 내 얼굴은 온 근육을 써서 눈을 찌푸리고 입꼬리를 한껏 내렸다. 뿌엥 - 친구의 결혼식을 보며 우는 일이 처음은 아니었다. 애초에 여린 성격이라 눈물을 흘리는 일은 오히려 익숙한 편이었다. 그렇지만 환한 웃음으로 축하만 해도 모자랄 날에 통곡은 조금 어색하지 않은가. 방금 누른 셔터에 찍힌,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내 모습을 보고 머쓱한 웃음으로 얼버무린다. 어우 - 나 왜 이러니 주책이다, 하하.


아빠의 손을 잡고 친구가 입장하면 우리 아빠가 떠올랐다. 10년 전, 아니 5년 전만 하더라도 아빠의 손을 잡고 버진로드를 걸어 남편의 손에 넘어가기는 싫다고, 가부장적인 입장 방식은 정말 별로라며 신랑신부 동시입장을 하겠노라 선언하곤 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숱한 결혼식의 입장을 보며 생각이 바뀌었다. 나랑 똑같은 키의 아빠가, 구두를 신어 당신보다 조금 더 커진 나의 손을 잡고, 살아온 대로 깊어진 주름을 따라 웃으며 그 길의 끝에 있는 엄마를 만나 혼주석에 앉는 순간엔 어떤 심정일까. 남들이 많이 선택하는 방식은 역시나 이유가 있는 것이다. 곱게 화장을 하고 한복을 입은 친구의 엄마를 보면 우리 엄마가 더 늙기 전에, 온전한 무릎 관절을 갖고 있을 때 환한 조명이 비추는 그 길을 걷게 하고 싶었다. 하나밖에 없는 자식의 욕심으로 남들 다 하는 거 못 해주는 게 조금은 미안했다.


마침내 손을 잡고 식장의 가장 안쪽에 선 한 쌍의 커플을 보면 놀랍기도, 부럽기도 했다. 어디서 그렇게 본인이랑 잘 어울리는 사람을 만나 저 자리에 이르게 되었는지, 얘기만 들었을 때는 분명 내 친구가 한참 아까웠었는데 환하게 웃는 친구와 그의 남편을 보고 있자니 그 결혼에 수긍이 갔다. 잘생긴 사람만 만나더니 왜 갑자기 덩치만 큰 사람을?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사람을 만나고 싶다더니 왜 갑자기 헤어짐을 고민해 온 오래된 연인을? 직접 보고 나니 속에서 피어나던 물음표가 금세 지워졌다. 나는 어디서 인연을 만날 수 있으려나. 20대 중반의 연애를 마지막으로 연애 시장에서 제법 긴 방황을 해온 터라, 친구들이 한참 결혼하던 서른의 한복판을 지날 땐 자괴감을 종종 느꼈다. 지나간 대통령이 갑작스레 연장해 준 서른을 2년 내내 지나오면서 말이다. 오답 노트를 쓰듯 나라는 문제를 해부해서 결혼이라는 결론에 이르기까지 틀리게 적용된 전제나 공식은 없는지 점검하고, 독신이라는 새로운 가설을 세우는 데에 논리적으로 부족함은 없는지 골몰했다. 그렇게 내 안의 논리가 촘촘해져 갈수록 현실의 연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예민하고 엄격한 사람에게는 쉬이 인연이 들지 않기 때문일까? 이에 따른 서러움도 눈물에 한몫했으리라.


실은, 눈물의 이유를 모르지 않았다. 굳이 이야기하지 않았을 뿐이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친구와 앞으로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는 함께하지 못할 아쉬움, 그 마음이 눈물의 8할이었다. 신부가 신랑과 함께 하객들 앞에서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고 행진하는 길에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들이 비쳤다. 이제는 동거인이 생겨 어려워질 외박, 우리집에 놀러 와 술을 잔뜩 먹고 예정보다 하루 더 자고 가는 일은 어려워지겠지. 우리가 함께한 10대와 20대를 예식장의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꼭꼭 씹어먹었다. 아쉬움은 거기 두고, 친구의 앞날을 오롯이 긍정해주고 싶어서 꾸역꾸역 곱씹었다. 보통의 첫사랑은 우정이라고, 쌓아온 추억이 많을수록 눈물의 길이도 길었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으로 갔던 수련원에서 밤새 떠들다 걸려 복도에서 혼날 때 보았던 친구의 작은 운동화 앞코, 친해지고 싶어서 다짜고짜 앞에 앉아 말을 걸자 당황하며 흔들리던 친구의 눈동자, 짱구 잠옷을 입고 새해 첫날을 함께 보낸 뒤에 먹었던 브런치, 그런 것들과 영영 이별하는 자리였다. 졸업하고 취업하고 일하기 바쁘다고 그간 잘 챙기지도 않다가 유난인 것 같아 왜 우는지는 밝힐 수 없었다. 그러다가도 친구의 부모님께서 어쩌다 내 얼굴을 기억하실 때면, 우리의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을 또 만난 것 같아 울음을 멈출 수도 없었다. 친구를 향해 쏟아지는 축복 속에 혼자서 우리의 추억들과 이별했다.


결혼식이 끝난 뒤에 축하한다는 연락을 남기며 진짜 남기고 싶은 말은 삼켜낸다. ㅡ 우리는 앞으로도 점점 옅어지겠지. 그래도 끊어지지는 않기를 바라. 각자의 자리에서 제 몫을 해내다가 잊히지 않게 종종 만나자. 네가 선택한 가족과 함께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내기를. ㅡ 이제 막 새롭게 출발한 사람에게 덧붙이기엔 어쩐지 실없고 느끼한 말들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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