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다의 겨울잠

사서교사의 기쁨과 슬픔

by 조이

“한 줄 서기 하세요. 순서대로 한 명씩 이야기하세요.”

엄마에게 밥을 달라며 입을 벌리고 기다리는 아기 새들이 잔뜩 모여있다. 아기 새들의 울음소리로 둥지가 복작거린다. 나뭇가지 대신 책들로 둘러싸인 이 둥지는 사랑하는 나의 일터, 초등학교 도서실이다. 오늘도 둥지 내 교통정리가 한창이다. 매주 열다섯 학급의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어린이들은 끊임없이 입을 연다. 선생님이 이야기하는 중이라도 머릿속에 궁금함이 피어오르는 순간 입 밖으로 소리가 새어 나온다. 손을 먼저 들고 선생님과 눈이 마주치면 이야기하는 건데, 손은 물론이고 엉덩이까지 들썩거린다. 그뿐인가. 책을 고르는 시간이 되면 선생님의 눈길을 기다리다 못해 선생님을 둥그렇게 에워싼다. 그 모양이 꼭 동그란 둥지 같다. 둥지의 엄마 새도 먹이를 찾으러 날아오를 때면 이명이 들릴까? 퇴근길에는 에어팟의 노이즈 캔슬링 기능을 켠 채로 눈을 꼭 감아야 한다. 일하는 동안 언어적, 비언어적 자극이 뇌에 과잉 입력되어 비워주는 시간을 가지는 거다. 누구의 표정과 목소리도 읽고 싶지 않으니.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또 왔어요.”

첫 수업부터 유난히 눈에 띄던 장난꾸러기 1학년이 도서실 단골이 되었다. 매일 아침, 늦어도 3교시 전에는 도서실 문을 열고 대출 반납 데스크로 직진해 온다. 컴퓨터 모니터 뒤에 숨어 얼굴을 빼꼼히 내밀고 인사한다. 조금만 놀리면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눈망울을 하고서 입가에는 장난기를 가득 담았다. 도서실이 조금 한적할 때면 나를 몇 번이고 부른다. 선생님, 이 책 재밌어요? 선생님, 책 골라주세요. 선생님, 이 책 읽어봤어요? 저는 읽어봤는데. 쫑알쫑알 몇 분을 떠들다가 책 한 권을 반납하고 또 새로운 책 한 권을 빌려 간다. 문을 나서며 인사한다. 선생님 안녕히 계세요. 저 또 올게요. ‘또’의 기운을 받아 목소리를 가다듬고 수업 공간으로 나설 채비를 한다.


“이번 주 독서 시간에는 뜰에서 북크닉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읽을 책을 준비해 오세요.”

올해 초, 공공도서관에서 야외독서용 북키트를 제작하여 대여해 준다는 소식을 들었다. 키트 구성 용품으로는 돗자리, 캠핑 의자, 담요, 어린이용 도서 몇 권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담고 옮길 폴딩박스였다. 낭만 빼면 시체인 사서교사가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지. 덥지도 춥지도 않은 봄날에 초록으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어야겠다 다짐하고는 북크닉(book+picnic)을 기획했다. 그리고 으레 그렇듯 교사의 건강과 아이들의 행복을 맞바꾸는 시간이 되었다. 하루에 서너 번 아이들을 이끌고 뜰로 나가, 결석한 아이를 대신해 폴딩박스를 옮겨주고, 손이 덜 영근 아이들의 캠핑 의자를 조립해 주다 보니 이틀 만에 몸살이 났다. 아무렴 어떠냐. 밝은 햇살과 맑은 공기 속에서 평온한 미소를 머금고 책을 읽는 어린이들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15분의 행복을 위한 25분의 고통쯤이야. 어떤 마음은 수치화할 수 없으니.


“청소 깨끗하게 해 주세요. 창가도 좀 닦으시고요.”

초등학교로 이직한 후, 건강은 자주 적신호를 맞이한다. 몸살은 한 달에 한 번씩, 수액은 한 학기에 한 번씩 맞는다. 처음에는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인가 걱정하기도 했다. 고등학교에서 일할 때와는 다르게 아주 작은 변수까지 고려하여 수업을 짜야하고, 조금만 목소리 톤이 낮아져도 금세 눈물을 보이는 어린이의 여림도 버거울 때가 적지 않았다. 열심히 일하시는 분들과 함께 근무하게 된 것은 행운이라 생각했지만, 완벽주의에 예민함은 따라붙는 것이기에 선생님들과의 관계도 쉽지 않았다. 문제가 있으면 융통성이나 외부의 도움 없이, 늘 해오던 대로 내부 인력을 갈아서 해결하려는 보수적인 문화도 적응하기 어려웠다. 교사가 학생들만 잘 가르치면 됐지 왜 이리도 보여지는 것에 신경을 써야 하는지, 왜 금요일에 유리창과 창틀을 닦지 않고 퇴근을 했냐고 월요일 아침부터 불려 가 혼나야 하는지, 이해되지 않는 지점이 너무도 많았다. 그럼에도, 몇 년 간의 기간제교사 생활을 거쳐 일과 공부를 병행하며 힘들게 들어온 학교인 만큼 쉽게 떠나고 싶지 않아 이를 악물고 견뎠다. 물론, 내가 이 일을 너무 사랑하기도 했고.


“선생님, 저는 3년 정도 걸렸던 것 같아요. 익숙해지기까지.”

입사 초기에 한 부장님께서 본인도 이 학교에 적응하기까지 3년 정도 걸렸다면서 잘 해내고 있다고 어깨를 두드려주셨다. 본인의 한계를 자주 목격하며 우는 밤이 적지 않았다고, 부족함을 확인받는 시간이 결코 짧지 않았다고. 만 3년이 지난 지금에야 그 말을 이해한다. 억지로 잠들어야 했던 무수한 밤을 지나, 허락하지 않은 눈보라를 맞으며, 끝날 것 같지 않았던 어둠을 지나 받아들이게 됐다, 이 공간을. 지금은 완벽해 보이는 부장님도 한낮을 맞이하려 얼마나 애썼는지 이제는 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남겨두고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한다.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만 같은 일들이 매해 조금씩 달라진다. 어린이와 이야기하는 요령도 생기고, 교내외 문제 제기에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동료 교사도 생겼다. 관리자가 바뀌면서 조직 문화도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 겨우내 긴 꿈을 꾼 판다가 새봄의 아침을 맞이하듯, 밤은 짧아지고 낮은 길어진다. 어둠은 짧아지고 빛은 길어진다. 유난히 추웠던 겨울, 선잠에 긴 꿈을 꿨다.


* 이제니의 시집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 중에서 '음지와 양지의 판다'를 읽고 영감을 받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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