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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간산행을 준비하며 1

플랫폼의 좌충우돌 백두대간 산행 도전기 01

by 플랫폼
백두대간 산행 도전기 연재를 시작하며,

어느날 갑자기 메시아처럼 다가온 백두대간 마루금. 그 길을 내 두발로 직접 걸어보기로 했습니다. 우리 민족의 얼과 정체성과 삶의 이야기가 듬북 담겨있는 그 길을 직접 걸어보지 않고선 나의 정체성 또한 무의미하다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정했습니다. 자연과 한몸이 되어 소통하고 때로는 엎어지고 어떤때는 무너지기도 했었지만 아무래도 좋았습니다. 내 삶에서 최초로 내가 결정해서 행한 일이었으니까요. 방향이 잡히니 처음엔 모든게 순탄해 보였습니다. 꿈을 꾸었더니 내몸도, 마음도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멈춤이 있기 전까지는요. 플랫폼은 과연 이 도전을 성공할수 있을까요.

이 이야기는 23년 5월 5일부터 24년 5월 25일까지 백두대간 마루금길에 숱하게 뿌렸던 수많은 열정과 땀의 흔적을 이야기로 담고자 했습니다. 일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이제 그때 몸소 체험했던 것들을 하나의 에세이로 엮어 내려 합니다. 자, 이제부터 대망의 왁자지껄 도전기를 시작합니다.


내 마음은 어느날부터 늘 산에 있었다. 산이 날 원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완벽한 짝사랑의 심정으로 난 산의 마법에 흠뻑 빠져들고 있었다. 산에 들어서면 왠지 마음이 편안해지고 행복해 질 것만 같았다. 내가 어릴 적 나무땔감하러 올랐던 그런 동네 뒷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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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될 수 있으면 인적이 드문 그런 산이라면 더욱 좋았다. 온종일 걸어도 사람하나 보이지 않는 그런 산길. 왜냐하면 나의 영원한 반쪽인 노랫가락의 힘을 빌리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하였고 산행초보라 다른 산객들에게 민폐를 끼치기 싫어서 이기도 했다. 또한, 숲 속 주인공들과 두런두런 얘기를 주고받으며 나도 당당히 숲의 일원임을 인정받고 싶어서인지도 모른다.


산은 어머니 품속처럼
포근히
날 받아주었다


사실, 10여 년 난 낚시 삼매경에 푹 빠져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금요일 오후만 되면 어느 저수지로 향할까 가 온통 내 머릴 지배하고 있었던 시절. 처음엔 잘 되어가는 듯 보였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 낚시질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이유는 교통사고 때문이었다. 졸음운전 탓이었다. 아니, 전날 과음이 더 큰 원인이었다. 낚시에 심취하느라 숙면을 제대로 취하지 못한 이유이기도. 아지트로 귀가하다 갑자기 의식을 잃어버렸다.


잠에서 깨어보니 병원침대에 덩그러니 누워 애꿎은 천장만 쳐다보고 있었다. 째려보는 형광등 조명에 실눈을 뜬 채 조용히 주위를 살펴보니 반쪽님의 눈초리가 심상치 않아 다시 눈을 감았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지금껏 투자한 수많은 노력과 재화들이 아깝기도 하였지만 그만 둘 수밖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나에게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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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이후가 문제였다. 남는 수많은 시간들을 어찌해야 할지. 유감스럽게도 난 그 즈음 실직상태였었다. 그래서 선택된 건 산이었다. 꿩대신 닭의 심정으로. 다행히 산은 인생 패잔병인 날 잘 받아주었다. 천오백원 김밥 한줄과 생수 한병이면 그날 하루는 모두 해결되었다.


주변에 이름 모를 야생화도 널려 있었다. 갑자기 숲의 모든 생명들이 날 원하는 듯 보였다. 야생화 카페에도, 곤충카페에도 차례로 가입하였다.

산은 정직하였다. 더하기 빼기 정도만 하면 전혀 문제가 없었다. 오른 만큼 꼭 내려오는 수고로움은 있었지만.


그러는 사이, 산과 함께했던 시간들이 전광석화처럼 훌쩍 지나가 버렸다. 금연에도 성공한 건 덤이었다. 동네산을 오르는데도 수행과 고행이 수반되었다.


대간을 가야만하는 이유


그 후론 난 늘 산에 있었다. 육체가 사바세계에 있을 때에도 내 마음은 늘 산을 고집하였다. 산에서 길을 찾고 있었다. 속세에서의 길에 만족하지 못한 채, 늘 산에 기대고 싶었다. 속세의 길과 산에서의 길이 무엇이 다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산은 내가 힘들 때 조건없이 어깨를 내어주었다. 산은 자신의 모든걸 내어주는데 전혀 주저함이 없었다.


2023년 대망의 새해가 밝았다. 대간 마루금의 소식이 궁금해 그 속살을 조금이라도 밟아보기로 했다. 민초들의 삶의 애환과 숱한 역사적 스토리를 간직하고 있는 영남 선비의 고장 함양과 오지중의 오지 장수를 연결하는 육십령 할미봉을 올랐다. 최강 한파를 뚫고 희양산 암봉속의 클라이밍도 몸소 체험해 보았다.


민족의 영산인 태백산 천제단에서 용광로의 쇳물처럼 타오르는 오색찬란한 일출도 보았다. 이젠 시인의 마을이 되어버린 선자령은 날 무심히 맞아주었고 버리미기재의 철통같은 철조망을 바라보면서 나 또한 범법자가 되어야 하는지도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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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 나무들의 두런거리는 소리가 귓가를 맴돈다. 길섶 이름모를 야생화들의 외침이 한없이 애절하게만 다가온다. 마루금의 울부짖음과 속삭임이 동시에 나의 심장속으로 파고든다.


백두대간에 관한 책들도 구입해 여러번 독해해 보았다. 1대간, 1정간, 13정맥이란 우리민족의 고유 인식체계에 대해서도. 일제 강점기 일본인 지리학자 고토분지로에 의해서 철저히 유린된 오천년 지리인식체계에 대해 후손들에게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하는지도 생각해 보았다.


이 시간 이후 차령산맥이나 노령산맥 이런 키워드들은 내 뇌리속에서 철저히 지워버리기로 했다. 오늘도 내일도 난 마루금 곁으로 가야만하는 이유가 명백자명해졌다.



D-DAY는 결정되고
나와 마루금과의 시간만 남다


난, 아직도 첫 걸음마조차도 떼지 않았다. 난 잘 할수 있을까. 비바람이 불어대고 시시때때로 변화무쌍한 대간마루금을 온전히 완주할 순 있는걸까. 왜 마루금을 고집하는 걸까. 친구들에게 떠들고 자랑이라도 하고 싶은걸까.


두동강나 상처투성이인 백두대간 마루금의 이야기라도 직접 들어봐야 하지만, 아무런 대꾸도 메아리조차도 없다. 부질없는 질문같았다. 답이 있을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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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려면, 아직 준비할께 너무나도 많다. 유일한 일은 정보 수집과 기초체력 다지기 정도. 선답자들의 경험담과 산행기를 접하며 한껏 포부를 키우는 중이랄까. 조만간 들어갈 것이다. 시간이 되는 대로,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5월초가 무척 기다려진다. 지리산 주능선이 열리는 그 날. 이제 한달하고도 열흘이 채 남지않았다. 마루금이 원치않는 한 난, 하늘길을 향해 달려갈 것이다.


이어서, 대간산행을 준비하며 2부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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